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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성경과 신들11: 바람이 분다, 고대 근동 바람신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4-15 조회수2,100 추천수0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1) 바람이 분다, 고대 근동 바람신

신화적 표현 그러나 신이 아닌 '바람'


바람은 히브리어로 '루아흐'다. 루아흐는 '하느님의 숨결', 또는 '하느님의 영'으로 옮길 수 있다. 같은 낱말이 '숨'도 되고 '영'도 되고 '바람'도 되는 것이다. 바람은 가변적 성질을 지녔다.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넓은 지역을 종횡무진 휩쓸고 다닌다. 떠돌아다니는 바람은 허무나 불안을, 비를 뿌리는 바람은 풍요를, 약하고 부드러운 바람은 상쾌함을, 태풍같이 거센 바람은 파괴를 상징한다.

다양한 종교에서 바람은 중요한 상징성을 지니며, 때로는 '인격신'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나라 단군신화에도 비와 구름과 바람을 상징하는 세 개의 신 우사(雨師)와 운사(雲師), 풍백(風伯)이 등장한다. 이 신들은 농경사회를 이뤘던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신이었다. 바람신은 바다를 생활 터전으로 삼는 해양민족에게 모든 것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

세계 여러 언어에서 '바람'과 '불다'의 어근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특히 발음 소리가 그렇다. 우리말의 '바람'과 '불다'의 공통 자음은 'ㅂ'과 'ㄹ'이다. 입술소리 'ㅂ'과 치음의 공명음인 'ㄹ'의 순서다. '불다'를 뜻하는 영어 '블로우(blow)'나 독일어 '블라젠(blasen)'도 자음의 순서가 'b'과 'l'로 같다. 한자 '풍(風, p-ng)'의 우리말 발음과 중국어 발음 '펭(fe˘ng, f-ng)' 또한 같은 계통의 자음으로 구성된다. 이는 바람을 처음 배우는 아기 말인 '푸웅'(또는 뿌우-)처럼 입술을 모아 세차게 부는 음성어에서 자연스레 유래했을 것이다.


바람의 존재

구약성경의 무대인 팔레스티나는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다. 팔레스티나는 바다와 육지가 접하고 산악지대와 강이 겹쳐 있는 지형을 갖췄다. 규칙적으로 부는 바람은 습기를 머금어 이슬을 맺게 하고, 농사에 도움을 주는 이로운 존재였다. 겨울이면 규칙적 바람은 잦아들지만, 때때로 지중해에서 폭풍이 몰려와 비를 뿌려준다. 강풍을 동반하거나 눈이 내리기도 한다. 한편 봄과 가을에는 동쪽 광야에서 먼지를 동반한 덥고 건조한 바람이 분다. 메마른 바람은 작물에 좋지 않으며, 인간에게도 파괴의 존재다.

물이 귀했던 고대 근동 지역에서 잎사귀에 맺히는 영롱한 이슬은 풍요의 전조였다. 구약성경에서 '하늘의 이슬'은 풍요를 묘사하는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모세는 유언으로 남긴 아름다운 시에서 하느님 말씀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고 표현했다. 메마른 팔레스티나 땅에서 비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슬 또한 금방 증발돼 버리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비나 소나기처럼 풍요의 근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알렸다.


고대 근동의 바람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 유적에서 바람은 공통적으로 사람의 몸에 다양한 짐승의 머리가 붙은 모습, 또는 짐승의 몸에 양의 머리가 하나 또는 여러 개 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날개를 달고 머리마다 깃털이 꽂혀 있는 게 특징이다. 날개와 깃털은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도는 바람의 속성을, 머리가 여럿인 것은 바람의 예측 불가능성을 상징한 것이다.

그리스어로 바람 신을 '아네모이'라고 한다. 아네모이는 넷이었다. 겨울을 일으키는 북풍 '보레아스'부터 여름을 일으키는 남풍 '노토스'와 동풍 '에우로스', 서풍 '제퓌로스' 등이다. 네 신은 석양의 신 아스트라이오스와 새벽녘의 신 에오스 사이에서 나온 자식인데, 제우스는 이 넷의 양육을 바람 신인 아일로스에게 맡긴다. 아일로스는 어린 바람 신 넷을 모아 섬에서 기른다. 그리스인들은 바람이 바다 쪽 섬에서 불어오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 듯하다.

한편 그리스어 '프네우마'는 본디 '숨'을 뜻했다. 원래는 호흡을 뜻했지만, 나중에는 우주 삼라만상에 깃든 '영(靈)'을 뜻하게 됐다. 히브리어 구약성경에선 바람과 숨이 모두 '루아흐'라는 하나의 낱말로 표현됐다. 그리스어에는 이처럼 바람과 관련한 단어가 많다.

이집트와 그리스 등에서 바람은 분명 인격신의 모습을 띠었지만, 구약성경에서는 인격신의 특성이 거의 사라진다. 구약성경에는 바람이 신으로서 경배받는 구절이 없다. 고대 이스라엘의 신학자들은 바람신도 탈신화했다. 하지만 바람의 독특한 신화적 모티프는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물 위에 당신의 거처를 세우시는 분. 구름을 당신 수레로 삼으시고 바람(루아흐) 날개 타고 다니시는 분"(시편 104,3).

"커룹 위에 올라 날아가시고 바람(루아흐) 날개 타고 나타나셨네"(2사무 22,11; 시편 18,11).

이처럼 구약성경에는 바람에 '날개'가 달렸다고 표현하는 곳이 나온다. 신화의 언어로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바람은 절대 신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평화신문, 2013년 4월 14일, 정리=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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