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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여행1: 칼날 같은 하느님의 말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01 조회수2,844 추천수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 칼날 같은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 만나기 위해선 하느님을 버려야 한다!

 

 

연재를 시작하며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히브 4,12).

 

연재 첫머리부터 무서운 말씀으로 운을 뗀다고 깜짝 놀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참된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읽는 나보다 강하십니다. 나를 꺾어 놓고야 맙니다. 그래야 마땅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런 말씀은 듣기 싫다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느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듣기 싫은데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끄듯이 꺼버릴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런 것은 싫다고, 구미에 맞고 듣기 좋은 말만 골라 읽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지금 바로 성경을 덮고 서점에 가서 훨씬 더 가벼운 책을 고르셔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내 관절과 골수를 가르고 내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드러내는 것이 싫다면, 무엇하러 성경을 읽으십니까?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다른 몇몇 주요 종교들과 달리 계시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찾아낸 하느님도 아니고 열심히 정진하여 발견한 하느님도 아니십니다. 하느님 편에서 먼저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셔서 인간이 하느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탈출 3,6 등)이라고 일컬어지시는 그 하느님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이 혼자 생각해서 알아낼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니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상을 고집하며 매달릴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가 교리를 배운 신자로서 하느님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하지만, 하느님의 신비를 다 알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뒤집어서 말하면, 하느님께는 내가 모르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분명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고 인간의 한계라면 겸손하게 인정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느님이 아닌 내 마음대로 상상해낸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으로 모시고 있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깨뜨려버려야 할 그릇된 하느님 상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말씀을 들려주실 때 하시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느님을 만났던 이들은 하느님에 대해 그들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려야 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수난 예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구약의 이스라엘도 결코 평탄치 않았던 그들의 역사 속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모습에 당황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던 예언자들이 반대받는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을 보아도, 하느님의 말씀은 분명 달콤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심판을 선고해도 회개하지 않고 그렇다고 구원을 선포해도 기뻐할 줄 모르던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말씀에 꺾이기보다 그 말씀을 내 마음에 들게 맞추고 싶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원천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의 눈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어떤 하느님인지 객관적인 진술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호기심에서, 또는 다른 종교에 대한 관심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이렇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창세기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밝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도 성경을 성경으로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곧 신앙의 규범으로 읽는다면 그 성경은 나의 신앙을 규정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 따로, 성경의 하느님 따로일 수 없습니다. 성경의 하느님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하느님이 아니라 그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나를 바꾸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 태도는 다른 책들을 읽는 태도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성경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끼셨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앞으로 느끼게 되실 수도 있겠지만, 성경이 제시하는 기준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요구를 내세웁니다.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드러내는 하느님의 말씀은, 내가 하느님과 달리 생각하고 달리 판단할 때에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회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두려워할 일만도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쌍날칼보다 날카로운 하느님의 말씀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구약 성경의 책들을 읽으려 합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시대 순을 따를 것입니다. 성경의 책들이 형성된 순서보다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의 순서를 따라 창세기부터 시작하고, 지혜문학서들은 후반부에 모아서 다룰 것입니다. 중간에 때로는 성경 진도를 멈추고 한 시대의 역사나 성경 이해에 관련된 한 가지 주제를 다루기도 하겠고, 구약 성경의 책들이 모두 끝난 다음에는 신약 시대가 오기까지의 배경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 여정이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과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 13,12).

 

* 안소근 수녀 - 대전가톨릭대 교수

- 2001년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종신서원

- 2008년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 성서학 박사

- 한국 가톨릭교리신학원 가톨릭신학 연구실장

 

[평화신문, 201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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