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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성서의 해: 요한 묵시록 –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11-21 조회수6,691 추천수0

[2020년 사목교서 ‘성서의 해Ⅱ’ 특집] 요한 묵시록 –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오늘 우리는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묵시록」을 살펴보려 합니다. 책 이름에 ‘요한’이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저자가 자신을 요한으로 소개하기 때문입니다(묵시 1,1.4.9; 22,8). 오랜 전통은 이 저자를 사도 요한으로 지목하지만, 오늘날 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묵시록’이란 명칭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묵시”(1,1)라는 표현에서 유래합니다. 우리말로 계시 또는 묵시로 번역되고 있는 그리스 단어 ‘아포칼립시스’(ἀποκάλυψις)는 ‘감추어진 무엇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지니는데요, 이 책은 그동안 사람들에게 감춰져 있던 신비들, 특히 종말과 관련된 사건들을 계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주로 ‘환시’(幻視)를 통해 그러한 계시를 전달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당대의 독자들과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다양한 표상과 상징을 이용하여 마치 그림을 그리듯 자신이 목격한 것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배경에 놓여 있지 않은 이들, 특히 후대의 독자들에게는 그러한 상징들이 생소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역사 속에서 「요한 묵시록」은 마치 세상 종말이 어떻게 전개될지 구체적으로 기록된 책으로 간주되기도 하였고, 어떤 이들은 이 책에 기록된 다양한 상징과 숫자들[예를 들어, 144,000(묵시 7,4) 또는 666(묵시 13,18)과 같은 숫자들]을 자기들 멋대로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점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들은 「요한 묵시록」의 문학적 성격과 집필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이 책과 비슷한 유형을 유다인들의 묵시 문학(BC 200 - AD 100)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사실 이러한 문학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현세의 억압과 고통의 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극적인 개입을 고대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때가 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괴롭히는 원수들을 반드시 응징하시고 이스라엘에 구원을 안겨주시리라!’ 따라서 유다 묵시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과장된 표현과 상징들은 당대의 독자들로 하여금 하느님 구원이 반드시 실현될 것임을 확신시키고 위로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장치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의 저자-독자가 속한 공동체(소아시아 지역)도 이와 비슷한 배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책은 로마 제국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데(95년경), 이 무렵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극심한 박해가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거대한 로마 제국의 결속을 위해서 여러 속주 지역에 황제 숭배를 강요하였고,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이 주관하는 예절이나 황제 숭배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박해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죠. 저자는 로마 제국을 비롯하여 그 혜택을 누리던 사회 전체,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위협하는 이들을 사탄과 악의 세력으로 규정합니다. 「요한 묵시록」에 이원론적 사상이 짙게 드러나는 이유는 저자의 관점에서 두 질서의 대립적 관계가 너무도 명확했기 때문입니다(하느님↔사탄). 그래서 요한 묵시록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자들과 그러한 위협에 굴복한 이들은 반드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지만(묵시 16-18장),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로 충실하게 신앙을 지키는 모든 이들은 구원을 얻어(7장) 천상 예루살렘(21장)의 시민이 될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러한 집필 배경과 집필 목적에 대한 이해가 전제될 때, 묵시록에 담긴 상징과 사건들의 의미 파악에 올바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주님께서 거두실 최종적 승리에 대한 확신 속에서 현재를 재해석하도록 안내합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신앙적으로 위기에 놓인 모든 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하면서 현재의 어려움에 굴복하지 말고 굳건히 신앙을 유지하도록 격려하는 책, 그것이 신약성경의 마지막 문헌인 「요한 묵시록」입니다.

 

이로써 신약성경을 탐색하는 여정을 모두 마치게 되었습니다. 스물여섯 번의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더 알차고 유익한 내용을 전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과 송구함이 밀려옵니다. 부족했던 저의 글들이 여러분들의 성경 읽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희망해 봅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더 자주 성경을 가까이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하느님의 말씀은 늘 우리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생명의 말씀으로 살아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2020년 11월 22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인천주보 3면, 정천 사도 요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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