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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나지르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9 조회수5,269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나지르인

 

 

삼손-나지르인(人)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 ‘판관 시대’라고 부르던 때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들이 어렵사리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는 하였지만, 아직 정식으로 나라를 세우기 전으로, 열두 지파가 느슨한 종교적쇓정치적 연합체를 이루고 있었을 따름이다. 당시, 지중해 해안 지방에는 불레셋인들이 여러 도시 국가를 형성하여 살고 있었다. 이들은 철기 문명이 발달하여 그렇지 못한 이스라엘인들을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면서 그들을 곧잘 못살게 굴었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단 지파에서 삼손이라는 호걸이 태어난다(판관 13―16장). 그는 하느님께서 직접 점지해 주신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배기 전에 천사가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보라. 너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지만,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조심하여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먹지 마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 될 것이다. 그가 이스라엘을 불레셋인들의 손에서 구원해 내기 시작할 것이다”(13,3-5).

 

사자를 새끼 염소인 양 찢어 죽일 정도로(14,5-6) 힘이 장사인 삼손은 불레셋 여자에게 장가를 든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삼손이 불레셋인들과 싸우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14,4). 우여곡절 끝에 아내까지 잃은 삼손은 불레셋인들과 원수 사이가 된다. 삼손에게 계속해서 피해를 입은 불레셋인들은, 그와 내연 관계에 있는 불레셋 여자 들릴라를 구슬러 그의 힘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내게 한다. 삼손은 들릴라가 줄곧 졸라대는 바람에 결국 비밀을 밝히게 된다.

 

“내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본 적이 없소.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기 때문이라오. 내 머리털을 깎아버리면 내 힘이 빠져나가 버릴 것이오. 그러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처럼 된다오”(16,17).

 

들릴라는 삼손을 자기 무릎에 뉘여 잠들게 하고서는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을 깎게 한다. 삼손은 과연 힘이 빠져 불레셋인들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

 

옛 사람들의 방식으로 서술된 이 삼손 이야기에서, 구약성서 시대 초기부터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한 제도를 보게 된다. 곧 “하느님께 바쳐진 나지르인”이라는 것이다(판관 13,5.7; 16,17). 이를 직역하면 “하느님의 나지르”이다. 히브리 말을 소리나는 대로 옮긴 “나지르”는 ‘가려내다, 성별하다, 바치다, 봉헌하다’를 뜻하는 ‘나자르’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그래서 “나지르”는 속(俗)의 세계에서 뽑혀 성(聖)의 세계에 속하게 된 사람, 그렇게 하여 하느님께 바쳐진 곧 성별된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하느님께만 속한 ‘거룩한 사람들’이다. “나지르”라는 말만으로도 사람을 가리키지만, 우리말에서는 알아듣기 쉽게 하려고 “인”을 덧붙인다(개신교에서는 “나실인” 또는 “나실 사람”이라고 표기한다).

 

아모스 예언자는 야훼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주님) 너희 자손들 가운데에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세우고 / 너희 젊은이들 가운데에서 어떤 이들은 나지르인으로 세웠다. / … 그런데 너희는 나지르인들에게 술을 먹이고 / 예언자들에게 ‘예언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였다”(아모 2,11-12). 하느님께서 뽑아 세우신 사람들이 사명을 수행하지 못하게 막고 또 그들이 정해진 대로 살아가지 못하게 방해함으로써, 하느님 자신을 거스르는 죄를 짓는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꾸짖는 것이다.

 

나지르인 제도는 이천 년 넘게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그 사이에 여러 가지로 변화하였지만 그 자세한 경과는 알지 못한다. 아무튼 삼손 이야기나 아모스의 신탁에서 볼 수 있듯이, 나지르인은 본디 하느님 쪽에서 선택한 사람이다. 예언자와 비슷하게, 하느님의 신비로운 은사를 입고 나지르인이 되어 “주님의 영”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판관 13,25; 14,19; 15,14). 삼손처럼 태어나기 전부터 나지르인이 되기도 한다.

 

나지르인은 금욕과 고행의 생활을 하도록 뽑힌 사람은 아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으로서, 한평생 그분께만 충성을 바치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봉헌과 충성의 표지로 죽을 때까지 머리를 깎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사람의 생명 또는 힘을 상징한다고 여긴 것으로 이해된다. 머리를 자르지 않음으로써 자기의 신분을, 자기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지르인은 또한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 때로는 나지르인이 될 아기를 밴 어머니도 출산할 때까지 술을 멀리해야 한다. 태어날 아기가 특별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요즈음 말로 하면 일종의 태교라고 할 수 있다. 나지르인들에 대한 금주의 배경과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들은 어떤 면에서 사제들보다도 더 큰 절제 생활을 해야만 하였다.

 

사무엘은 나지르인이라고 직접 불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가 실질적으로 사무엘을 두고 나지르인 서약을 하고(1사무 1,11), 그는 또 그 서약에 따라 살아간다. 이렇게 볼 때에 사무엘은 예언자와 사제이면서 동시에 나지르인이었다.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

 

민수기 6장 1-21절을 보면 나지르인에 관한 법이 길게 정리되어 있다. 예로부터 내려온 관습을 단일화하고 법제화한 것이다. 이로써 이 제도가 세월이 흐르면서 크게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누구나 나지르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하느님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부르심에 따라 자기의 선택 그리고 의지와 관계없이 나지르인이 되었다. 이제는 남녀 구분 없이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려고만 하면 나지르인이 될 수 있다. 그에 따라, 전에는 한 번 나지르인이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했지만 이제는 일정 기간만 그렇게 생활하게 된다. 기한은 서약할 때에 정하는데, 후대의 유다교 전통에 따르면 기한을 정하지 않았을 때에는 삼십 일만 하게 되어있다.

 

민수기 법에 따르면 나지르인으로서 지켜야 할 지침도 세밀히 또 전보다 더 엄격히 규정되어 있다. 첫째, 모든 종류의 술을 삼가야 한다. 팔레스티나 땅에서는 술을 주로 포도로 만드는데, 심지어 날포도도 건포도도 먹어서는 안된다. 둘째,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된다. 봉헌 기한이 차면 머리카락을 잘라 제물과 함께 불에 태워야 한다. 셋째, 어떠한 경우에도 죽은 이에게 다가가서는 안된다. 부모나 형제가 죽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성서의 사람들은 (다른 여러 민족과 마찬가지로) 시체를 부정(不淨)한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부정은 하느님께 제사를 바친다거나 그분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부정하게 된 사람은 정해진 시일이 흐른 뒤에 일정한 의식을 거행해야 다시 정결(淨潔)해진다. 그래서 나지르인은 부정한 상태로 지낸 시일만큼 봉헌 기간을 늘려야 한다.

 

이렇게 엄격한 정결 규정은 본디 대사제에게 적용되는 것이다(레위 2,1-11). 그리고 옛날의 나지르인, 곧 삼손에게서는 이 법규가 지켜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판관 14,19; 15,15-16). 이는 나지르인에 관한 법이 사제들에 관한 법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판관 14,19; 15,15-16). 아무튼 나지르인은 이러한 규정들을 준수하여 자기들이 하느님께 봉헌된 “거룩한 사람”임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나지르인 법’의 거의 절반을 서약 종결 의식에 관한 규정이 차지한다(민수 6,13-21). 이는 나지르인이라는 신분보다 그 신분을 끝낼 때의 제물 봉헌 의식이 점차 더 중시되었음을 드러낸다. 사실 이 의식을 거행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인 성전이 더렵혀졌을 때에는 나지르인 서약도 끝내지 못하였다(1마카 3,49-50). 그리고 나지르인에게 서약 종결 제물을 마련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경우, 그를 도와주는 것을 공로가 되는 선행으로 여겼다(사도 21,24).

 

흥미로운 사실은 바오로 사도도 두 번에 걸쳐 나지르인 제도와 관련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18장 18절에, 바오로가 하느님께 서약한 일 때문에 겐크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이 나지르인 규정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선교 여행과 관련하여, 나지르인 서약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는, 신자 네 사람이 나지르인 서약을 종결하는 의식의 비용을 대기도 한다(사도 21,23-24). 이는 물론 바오로도 율법을 준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예루살렘 교회 원로들이 제안한 것이기는 하지만, 바오로 자신도 나지르인 서약에 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따른 것이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하느님께서 아들을 점지해 주시면 그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한다(1사무 1,11). 성서의 서원은 일차적으로 이런 식의 조건부로 이루어진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주시면 자기도 무엇을 바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을 처음부터 유치하다거나 계산적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청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청하면서 자기도 그 보답으로 무엇인가 내놓고 싶어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나지르인 서약은 이러한 서원과 달리 아무 조건 없이 자기 자신을 한평생 또는 한시적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제도이다.

 

[경향잡지, 2002년 6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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