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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과월절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8 조회수5,529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과월절

 

 

예수님과 과월절

 

요셉과 마리아는 해마다 과월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는, 처음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갔다가 사흘 동안 잃어버리기도 한다. 예수님 역시 공생활을 하시면서, 과월절이 가까워지면 여느 유다인처럼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요한 2,13; 11,55). 공관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이 순례 기간에 예루살렘으로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음식을 드신다(마태 26,17.19; 마르 14,12.16; 루가 22,8.13). 그러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다. 과월절 식사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 된 것이다.

 

예수님 당시 과월절은 이 축일에 바로 이어지는 무교절, 그리고 주간절과 초막절과 함께 유다인들의 순례 대축제였다. 성인 남자들은 원칙적으로 예루살렘에 가서 성전을 중심으로 이 축제를 거행해야 하였다. 물론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의 경우처럼, 부인과 어린이도 가장을 따라갈 수 있었다. 예수님 시대에 예루살렘에는 약 55,000명의 주민이 살았던 것으로 계산된다. 그런데 순례 축제 때에는 지방과 외국에서 십만 명 이상의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별로 넓지 않은 예루살렘에 주민보다 배 이상 되는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축제의 분위기를 지금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과월절의 특징은 특별한 음식을 마련하여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것이다. 먼저 가족이나 친지 등으로 열 명 가량 되는 조를 짠다. 그리고 일년 된 숫양이나 숫염소를 마련하여 성전으로 끌고 가서 일정한 격식에 따라 그것을 잡는다. 사제들은 짐승의 피를 받아다가 번제 제단에 뿌리고, 짐승의 가장 좋은 부위로 여겼던 굳기름을 제물로 태워 바친다. 나머지 부분은 자기 조가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가서 음식 준비를 한다. 순례 기간 중에 숙식은 예루살렘 성 밖에서 할 수 있지만(마르 11,11 참조), 과월절 음식은 성 안에서 먹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도 미리 성 안에 방을 하나 얻어놓으신다(마르 14,12-16 등). 성전에서 가져온 짐승은 뼈가 부서지지 않도록 나무 꼬챙이에 꽂아 구워 먹는다.

 

식사는 당시의 일반적인 그리스·로마 방식을 따른다. 곧 식탁을 중심으로 팔걸이가 없는 긴 안락의자 같은 것을 놓고서, 그 위에 왼쪽 팔에 기대어 비스듬히 누운 상태에서 음식을 먹는다. 이러한 과월절 식사는 편안하고 느긋한 잔치 분위기였지만, 엄격한 격식과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이 식사 중에는 과월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정한 양식도 있었다. 곧 식사를 함께하는 가정의 아들이나 아들 구실을 하기로 지정된 사람이, 왜 이렇게 특별한 식사를 하는지 묻는다. 그러면 가장 또는 가장 구실을 하는 이가 이집트 탈출 이야기를 되새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드신 최후 만찬의 배경을 이루는 과월절 식사는, 이렇게 그리스도교의 성사(聖事)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이스라엘인과 과월절

 

예수님 시대의 이러한 과월절 모습을, 구약성서에서 과월절을 가장 자세히 규정하는 출애굽기 12장과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서로 다름을 볼 수 있다. 예컨대, 과월절을 지내는 곳이 출애굽기에서는 각 가정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과월절 음식도 곧바로 여행길을 떠날 차림을 하고 서둘러 먹게 되어있다. 천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과월절의 근본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부차적인 면들은 바뀌었음을 뜻한다.

 

이 출애굽기 12장에 따르면, 과월절은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 탈출과 관련된다. 이집트 왕이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자 하느님께서 마지막으로 이집트의 모든 맏아들과 맏배를 치신다. 이 열번째 재앙이 벌어지는 날 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당장 길을 떠날 채비를 갖춘 채 과월절을 지낸다. 우선 일년 된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흠 없는 것을 골라두었다가 그 날, 곧 지금의 3-4월에 해당하는 음력 달의 열나흗날 저녁 어스름에 잡는다. 피는 따로 받아 그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른다. 고기는 통째 구워, 탈출의 급함을 뜻하는 누룩 없는 빵과 종살이의 쓰라림을 가리키는 쓴 나물을 곁들여 먹는다. 그날 밤으로 다 먹고 혹시 아침까지 남는 것은 불에 태운다. 그리고 이것을 먹을 때에는 허리끈을 매고 신을 신고 한 손에는 여행용 지팡이를 짚는다. 집에 짐승의 피를 바르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이집트의 맏아들과 맏배를 치실 때에 그 피의 표지를 보고 그 집은 거르고 지나가신다는 것이다.

 

이 식사와 음식(후대에는 일부를 하느님께 봉헌하고 나머지를 사람들이 먹는 희생제물)을 히브리 말로 ‘페사흐’라고 한다. 예수님 시대의 일상어였던 아람 말로는 ‘파스하’, 신약성서가 쓰인 그리스 말로는 ‘파스카’라고 한다. 축제와 축제의 중심이 되는 제물이 같은 이름으로 불린 것이다. 출애굽기에서는 히브리 말 ‘페사흐’를 ‘한 쪽 발로 뛰다/뛰어넘다, 건너가다, 넘어가다, 지나다, 면해주다’ 등의 뜻을 지닌 ‘파사’ 동사와 관련지어 설명한다(출애 12,13.23.27).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인들이 있는 집을 ‘건너 뛰시어’, 그들에게 해가 가지 않게 하시고 마침내 그들을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나라 가톨릭교에서는 이 축일을 ‘지날 과(過)’와 ‘넘을 월(越)’을 써서 ‘과월절’이라 하고, 개신교에서는 ‘넘을 유(逾)’를 써서 ‘유월절’이라 한다. 서양에서는 대부분 히브리 말에서 유래하는 낱말을 자기 나라 말 사정에 따라 음역하고, 영어에서는 우리 나라처럼 ‘Passover’라고 번역하여 사용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어려운 한자말인 ‘과월’이나 ‘유월’을 버리고 ‘넘이절’로 하자는 의견이 있다.

 

과월절의 원형은 본디 이스라엘인들이 반유목 생활을 하던 시대부터 지내던 축제였다. 당시의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봄, 여름 목초지로 이동하기 직전에 가축의 맏물을 봉헌하며 지내던 봄축제였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광야로 나가 하느님께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이스라엘 사람들을 내보내달라고 요청하는데(출애 5,1; 7,26; 8,16.21-25), 이 제사가 바로 그 축제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에는, 농경민들의 봄축제인 무교절을 받아들여 과월절과 함께 지내게 된다(출애 12,15-20). 무교절은 보리 수확을 시작할 때 묵은 해의 것은 다 버리고 순전히 햇곡식으로만 만든 빵을 먹는 축제이다. 과월절은 하룻밤만 지내나 무교절은 이레 동안 지속된다.

 

이렇게 유목 생활의 과월절과 농경 생활의 무교절이 이집트 탈출과 연계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단순한 연례 축제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축일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과월절을 무교절과 함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축제, 갱신과 새로운 시작을 뜻하는 축제, 종살이에서 자유로 넘어감을,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감을 기념하고, 또 이러한 구원을 베푸신 하느님께서 마침내 완전한 해방과 구원을 베푸실 것을 고대하는 축제로 지내게 된다.

 

이러한 과월절은 본디 각 가정에서 가족을 중심으로 지내는 축제였다. 그러다가 기원전 8세기 말엽 이후, 종교 의식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집중되면서(신명 12장), 과월절도 성전을 중심으로 지내는 축제가 된다(신명 16,1-8). 기원전 5세기 말엽 유배 이후의 시대에는, 성전에서 특별한 시편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희생제물을 잡고 일부를 제물로 바친 다음, 가족이나 친지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거룩한 만찬’ 중에 여러 의식과 더불어 그 고기를 먹는 것으로 과월절이 굳혀지게 된다.

 

 

그리스도인과 과월절

 

예수님께서는 과월절-무교절 기간에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다. 루가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과월절 식사 곧 최후의 만찬 때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너희와 이 과월절 음식을 함께 나누려고 얼마나 별러왔는지 모른다. 잘 들어두어라. 나는 과월절 음식의 본뜻이 하느님 나라에서 성취되기까지는 이 과월절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루가 22,15-16).

 

이렇게 예수님의 수난과 함께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과월절 양들을 잡던 시간에 십자가에 못박히신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분께서(요한 1,30) 과월절 양처럼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다. 그리고 성전의 제단 위에서 바쳐진 과월절 양처럼,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해방과 구원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제물로 하느님께 바치신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과월절 양으로서 희생되셨다.”고 말한다(1고린 5,7).

 

미사 때마다 사제가 되풀이하듯이,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과월절 음식을 드시면서 당신의 몸과 피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말씀대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과월절 양이시고 성체성사가 과월절 식사가 된다. 이러한 신약의 과월절도 구약의 과월절처럼 일차적으로 기념의 성격을 지닌다(“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1고린 11,25). 그러나 이 성사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과거에 일어난 일회적인 하느님의 구원을 현재에 재현시킨다. 그리고 이 성찬에 동참하는 이들을 완전한 해방과 구원으로 이끌어준다(루가 22,16; 1고린 11,26 참조).

 

[경향잡지, 2001년 4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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