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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안식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8 조회수3,518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안식년(安息年)

 

 

우리 삶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는 주일(週日) 제도는 구약성서에서 유래한다. 성서의 사람들은 일곱 날을 시간의 한 단위로 삼아, 그 끝 날을 특별한 날 곧 “주님의 안식일”(레위 23,38) 또는 “주님을 위한 거룩한 안식의 날”이라고 불렀다(출애 31,15). 이 날은 종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 심지어 집짐승까지 일을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쉬면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또 당신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신 주님을 생각하며 거룩하게 지냈다.

 

이러한 안식일의 연장선상에서, 칠 년이 또 다른 시간 단위로 제정된다. 칠 년의 끝 해를 ‘안식의 해’로, 하느님과 자연과 이웃과 관련하여 특별한 해로 지내는 것이다. 이러한 안식년 제도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근거와 목적이 뚜렷한 이 칠 년 주기가 매우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만의 고유한 종교적 · 사회적 · 경제적 제도임은 확실하다.

 

 

땅을 놀리는 해

 

“너는 여섯 해 동안 땅에 씨를 뿌리고 그 소출을 거두어들여라. 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땅을 놀리고 묵혀서, 네 백성 가운데 가난한 이들이 먹게 하고, 거기에서 남는 것은 들짐승이 먹게 해야 한다. 네 포도밭과 올리브밭도 그렇게 해야 한다.”

 

농사를 지어서도 안되고 저절로 난 소출을 거두어들여서도 안된다는 이 출애굽기 23,10-11이, 안식년과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첫 규정이라고 여겨진다. 이 구절에서는 안식년 대신에 그냥 “일곱째 해”라는 명칭이 쓰인다. 이것이 신명기 15,9에서는, 이 때에 빚을 삭쳐주는 것과 관련하여 “탕감의 해”라고 불린다. 그리고 레위기 25,5에 마침내 “안식년”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출애굽기의 이 규정은 이른바 ‘계약의 책’(출애 20,22 23,33)에 들어있다.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과 관련된 법규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규정은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존재 근거가 되는 하느님과의 계약 정신을 일상생활에서 구체화하는 법규 가운데 하나이다. 안식년은 이렇게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이끄시는 하느님과 직결된다. 이러한 사실은, 출애굽기의 안식년 규정을 이어받아 더욱 자세히 강조하는 레위기의 법전에 더 명백히 드러난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으로 너희가 들어가면, 그 땅도 주님의 안식을 지켜야 한다.…일곱째 해는…땅을 위한 안식의 해, 곧 주님의 안식년이다…”(레위 25,2-7).

 

땅의 주인은 주님이시다(레위 25,23 참조). 그분께서 당신의 땅을 백성에게 나누어주시어 임시로 쓰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안식년에 이러한 믿음을 적극적으로 고백해야 한다. 이 한 해 동안 땅에 대한 소유권과 경작권을 내놓고, 원주인이신 하느님의 안배에 의탁해야 한다. 이는 하느님의 주권과 소유권을 인정한다는 순전히 종교적 행위만이 아니다. 하느님만을 상대한다는 이른바 순수 종교적 행위는 있을 수 없다. 계약은 하느님과 한 개인이 아니라, 하느님과 백성 사이에 맺어진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이 백성을 구성하는 이들 사이의 관계를 내포하고, 또 인간 관계로 구체화해야 한다. 안식일 규정도 마찬가지이다. 땅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함으로써, 자기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땅을 가지지 못한 이들과 하느님 앞에서 똑같음을 고백하며, 그 포기 또는 무소유의 열매를 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빚을 삭쳐주는 해

 

“너는 일곱 해마다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 … 이웃에게 빚을 준 모든 사람은 자기가 꾸어준 것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 주님의 탕감령이 선포되었으므로, 자기 이웃이나 동족에게 독촉해서는 안된다”(신명 15,1-2).

 

이 규정은 분명하지 않은 점을 지니고 있다. 빚을 줄 때에 저당 잡아놓은 부동산이나 동산만 돌려주는 것인지, 저당물만이 아니라 빚까지 탕감해 주는 것인지, 그리고 채무 지불을 이 한 해 동안만 정지시켜 주는 것인지, 지난 6년 동안 진 모든 빚을 삭쳐주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옛날 유다교 랍비들이 해석하는 대로, 위의 성서 본문은 빚을 완전히 탕감해 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규정을 실천에 옮기는 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명기의 이 안식년 규정의 유래와 뜻은 분명하다. 위에서 본 출애굽기의 규정은 대부분의 사람이 농사를 지어 사는 농경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왕정이 들어서고 도시가 발달하면서, 땅과 직접 관련없는 갖가지 생계가 생겨난다. 신명기의 이 규정은 출애굽기의 것을 새로운 경제 상황에 적용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법규의 뜻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연대와 자비이다. “그 땅에서 가난한 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의 땅에 있는 궁핍하고 가난한 동족에게 너의 손을 활짝 펴주라고 너에게 명령하는 것이다”(신명 15,11). 가난한 이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은 결국, 이처럼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는 본디 가난한 이가 없어야 한다(신명 15,5). 그래서 빚 탕감처럼 빈곤한 사람을 돕는 일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바라시는 이러한 이상을 그분과 함께 적극적으로 실현시켜 나아가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를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차원에서 실행하는 것이다.

 

 

종을 풀어주는 해

 

“너의 동족 히브리 남자나 여자가 너에게 팔려와서, 여섯 해 동안 너의 종으로 일할 경우, 일곱째 해에는 그를 자유로이 놓아주어야 한다. 네가 그를 자유로이 놓아줄 때, 그를 빈손으로 놓아주어서는 안 된다. 너는 그에게 너의 양떼와 타작 마당과 술틀에서 넉넉히 내주어야 한다. 주 너의 하느님께서 너에게 복을 내리신 것을 그에게도 주어야 하는 것이다. 너는 네가 이집트 땅에서 종이었다는 것과 주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구해내신 것을 기억하여라”(신명 15,12-15).

 

같은 규정이 출애굽기 21,2-3에도 좀더 간단한 형태로 나온다. 이 법규는 땅을 묵히는 것과 빚을 삭쳐주는 것과 달리 미리 지정된 안식년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자신을 종으로 판 사람은 안식년과 관계없이 여섯 해 동안 종으로 일을 한다. 그리고 남을 종으로 사들인 사람은 일곱 째 해에, 그가 자립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선물을 들려 그를 자유로이 놓아주어야 한다. 안식년 기간 안에 실행되지는 않지만, 바로 안식년의 정신에 따라 종을 풀어주는 것이다. 결국 안식년이라는 시간 자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웃을 위하는 행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이 법규에서도 드러난다.

 

종을 풀어주는 이 규정에는 예외가 있다. 종이 된 사람이 자유의 몸으로 나갈 것인지, 아니면 계속해서 종으로 주인 집에서 살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종의 신세를 벗어난다 하여도 살아갈 방도가 마땅하지 않을 수 있다. 거기에다 주인과 그 식구들이 잘 해주어 그들과 정이 들었을 경우, “저는 주인님에게서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선언할 수 있다. 그러면 주인은 그를 대문으로 데려다가 그의 귀를 문에 대고 송곳으로 뚫는다. 이로써 그는 그 집안의 ‘종신 종’이 된다. 종이기는 하지만 일정한 법적 신분을 지닌 사람으로 생계와 안전을 보장받게 된다(출애 21,5-6; 신명 15,16-17).

 

 

안식년 규정의 실천

 

그렇다면 구약성서 시대에 이러한 안식년 규정이 어느 만큼 지켜졌는가? 율법서 이외의 역사서 같은 곳에서는 안식년이 언급되지 않아, 이와 관련된 이스라엘인들의 실정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시작된 유배 이후에 편집된 레위기 26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렇게 땅이 황폐해지고 너희가 원수들의 땅에 있는 동안, 땅은 비로소 제 안식년들을 줄곧 누리게 되리라. 그 때에야 비로소 땅은 쉬면서 자기의 안식년들을 누리리라”(34절). 이로써, 유배 이전에도 농지를 놀리는 것을 중심으로 한 안식년 규정이 엄연히 있었음과 그럼에도 사람들이 제대로 지키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예레 25,11; 29,10과 2역대 36,21도 참조).

 

유배 이후에는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의 노력으로 안식년 규정이 다시 강조된다(느헤 10,32). 그리하여 마카베오 하권 6,49.53과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 등에 따르면, 예수님의 탄생 전후 시대, 때로는 전쟁이 빈발하던 어려운 때에도 이 규정이 상대적으로 엄격히 지켜진다. 그리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제나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에는 안식년 동안 조공이 면제되기도 한다.

 

신약성서에는 안식년이 한 번도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에 들르셨다가 안식일에 회당에 가시어, 이사 61,1-2를 봉독하신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 4,18-19). “은혜로운 해”는 매 일곱 번째 안식년, 곧 안식년을 더욱 거룩하고 성대하게 지내는 희년을 뜻한다(레위 25,8-22). 이 이른바 ‘나자렛 선언’은 예수님의 활동 기획서와 같은 구실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년·희년이라는 특정 시간과 관계없이 이 성년(聖年)의 뜻을 실현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항상 이 안식년의 정신, 가난한 이들에게 “손을 활짝 펴주는”(신명 15,11)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1년 2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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