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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물] 성서의 세계: 올리브나무와 기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809 추천수1

성서의 세계 : 올리브나무와 기름

 

 

가나안 땅과 올리브 나무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을 드시고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 밖 올리브 산 중턱에 있는 게세마니라는 정원에 가신다(마태 26,36; 마르 14,32; 요한 18,1). ’게세마니’는 확실하지 않지만 '(올리브) 기름 짜는 확'이라는 뜻이다. 올리브 산은 올리브 나무가 많아서 지금도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올리브 나무들이 있는 곳에는 기름을 짜는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시기 전에 깊이 고뇌하시며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하신 곳에는, 이렇게 올리브 나무들과 그 기름을 짜는 확이 있었던 것이다.

 

올리브 나무는 이 올리브 산만이 아니라 성서의 땅 전체에서 많이 재배되었다(신명 28,40 참조). 사실 가나안 땅은 기후와 토양이 올리브 재배에 아주 알맞은 곳이었다. 그래서 올리브는 밀을 필두로 한 곡식과 포도와 함께 가나안 땅의 세 가지 주요 농산물이었다(신명 11,15; 2열왕 18,32; 예레 40,10 참조). 터키가 원산지인 올리브 나무는 기원전 3000년부터 재배되기 시작한다. 이 나무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의 나무이다. 그곳에서는 여름이 건기이고 겨울이 우기이다. 한반도는 그 반대여서, 우리 나라에서는 올리브가 아직 재배된 적이 없고 열매와 기름도 최근에 와서야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올리브 나무와 기름이 낯설게 여겨진다.

 

그러나 성서를 읽다 보면, 올리브 기름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었음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엘리야는 가뭄이 들었을 때 주님의 명에 따라 사렙다로 간다. 그곳의 가난한 과부는 돈도 식량도 다 떨어졌다. 그래서 빵을 청하는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한다. "다만 항아리에 밀가루 한 줌과 단지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 땔감을 두어 개 주워다가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제 아들과 함께 그것이나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1열왕 17,8-13). 물이 없으면 밥을 짓지 못하듯 기름이 없이는 빵을 만들지 못하였던 것이다(2열왕 4,2도 참조). 이러한 기름은 곡식과 포도주와 함께, 왕궁의 곳집에 저장된 식량으로 특별히 언급되기도 한다(2역대 32,28. 그리고 2열왕 20,13; 2역대 11,11도 참조).

 

 

올리브 기름의 일반적 용도

 

올리브 나무는 상록수로서 키가 10미터를 넘지 않는다. 아무데서나 잘 자랄뿐더러, 포도나무와 달리 재배하는 데에 일손도 많이 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초록이었다가 마지막에는 검정색으로 변하는 열매는, 5-6월에 여물기 시작하여 9월에 완전히 익는다. 열매는 10월에 나무를 흔들거나 막대기로 떨어서 거두었다(이사 17,6; 24,13). 그리고 맷돌을 굴려서, 또는 절구나 확에서 찧거나 발로 밟고 바위로 눌러 기름을 짰다. 그렇게 짠 기름은 일반적으로 단지에(1열왕 17,12), 양이 적을 경우에는 뿔에 담아 썼다(1사무 16,1). 특별히 비싼 기름은 설화석고로 만든 단지에 보관하기도 하였다(마태 26,7 참조).

 

올리브에서 짠 기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먼저 올리브를 찧어서 흘러내린 기름 가운데에서 맨 윗쪽의 가볍고 맑은 부분을 특별히 "찧어서 짠 기름"이라고 부른다(출애 29,40; 민수 28,5; 1열왕 5,25). 종교적인 용도에는 이 "순수한 기름"만 사용할 수 있었다(출애 27,20; 레위 24,2). 나머지 부분은 일상 생활에서 썼다.

 

현재 지중해변의 나라들에서는 올리브 열매를 식용으로 먹지만, 성서 시대의 사람들은 순전히 기름을 짜는 데에만 이용하였다. 올리브 기름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에 직접적으로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빵을 굽거나 다른 여러 가지 요리를 하는 데에 쓰였다(민수 11,8 참조). 그래서 유딧은 적진으로 가면서 자기가 먹을 식량을 다 준비하는데, 거기에는 올리브 기름도 들어있었다(유딧 10,5).

 

가나안 땅은 여름과 그 전후에 매우 덥고 건조하여 피부가 메마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른 화장품이 없던 그 옛날에는 특히 목욕한 뒤에 올리브 기름을 몸에 발랐다(2사무 12,20; 룻 3,3). 먼길을 걷고 난 뒤에도 몸에 기름을 발라주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원기가 회복되었다.

 

옛날 사람들도 잔치와 같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옷치레를 하고 몸단장을 하였다. 여기에는 올리브 기름에다 향료를 첨가한 향유도 쓰였다. 전도서의 저자는 "네 옷은 항상 깨끗하고 / 네 머리에는 향유가 모자라지 않게 하여라." 하고 권고한다(9,8. 그리고 시편 23,5; 104,15; 아모 6,6 참조). 그리고 잔치에 아주 특별한 손님이 도착하면 주인이 그의 머리에 직접 기름을 발라줄 수도 있었다(루가 7,46). 이와 관련해서는 우리 나라 대부분의 어른들이 머리에 포마드를 번드르르하게 바르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기름을 바름은 화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중(喪中)에는 금지되었다(2사무 14,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금식할 때에 남에게 보이려고 애처로운 표정을 짓지 말고, 아예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권고하신다(마태 6,16-18).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보면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는다는 말이 나온다(루가 10,34). 술은 상처를 소독하고 기름은 아픔을 눅이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이사 1,6). 그런데 기름은 단순한 의약품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환자에게 베푸시는 도움을 나타내는 표징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었다(마르 6,13). 또 야고보서의 저자는 교회 원로들에게 아픈 이를 찾아가서 기름을 붓고 기도해 주라고 권유한다(야고 5,14). 현재의 병자성사는 이러한 성서의 전통과 권유에 따른 것이다.

 

기름은 또한 연료로도 쓰였다. 등잔은 보통 작았기 때문에, 불을 오래 켤 경우에는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다른 그릇에 기름을 여분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마태 25,1-13). 그리고 올리브 기름은 방패에도 발랐다(2사무 1,21; 이사 21,5). 가죽으로 된 방패를 손질하는 것으로, 또 전투 직전에는 적군의 화살이나 창이 닿으면 미끄러지게 하려는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올리브 기름의 종교적 용도

 

성막이나 성전에는 늘 등불을 켜놓아야 했다. 위에서 말한 올리브를 "찧어서 짠 기름"은 먼저 이 등잔에 사용되었다(출애 27,20; 레위 24,2).

 

성전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제물을 바쳤다. 한 번의 제물은 어린 숫양 한 마리에, 고운 곡식가루 약 4.5리터,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 각각 1.9리터 가량으로 이루어진다(출애 29,40). 동물이 주를 이루는 이러한 번제물말고 곡식만 바치는 곡식제물도 있는데, 이것을 준비할 때에는 반드시 기름도 곁들여야 한다(레위 2,4-8). 아주 옛날에는 신주(神酒)를 따르고 기름을 붓는 것만으로도 제사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창세 35,14).

 

성소에는 이 밖에도 특별히 제작된 기름이 있었다. 올리브 기름에다 여러 가지 향료를 배합하는데,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서 이 배합법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곧 "거룩한 성별 기름"이다(출애 30,23-25.32). 우선 이 기름을 성막이나 성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제단을 비롯한 모든 기물에 부어서 축성한다(출애 40,9; 레위 8,10. 그리고 창세 28,18 참조). 그러면 이것들은 거룩한 것 곧 하느님께만 속한 것이 되어, 다른 데에는 쓸 수 없게 된다. 사제들이 예식을 거행할 때에 입는 옷 곧 제의(祭衣)도 그렇게 한다. 대사제와 사제들의 머리에도 성별 기름을 부어 그들을 거룩한 사람들, 곧 하느님을 위한 사람들로 성별한다(출애 29,7; 레위 8,30; 21,10).

 

이스라엘에서 임금은 근본적으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라고 선택하신 사람이다. 그래서 임금으로 결정되거나 등극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일이 예식의 핵심을 이룬다. 하느님을 대신하는 예언자나 사제가 임금이 되는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면서, "내가 너에게 기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임금으로 세운다." 하고 말한다(2열왕 9,6). 이로써 기름 부음은 하느님의 선택을 상징한다. 그리고 선택을 받음으로 사명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하느님의 힘을 받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3이사야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하고 노래한다(이사 61,1. 그리고 다윗과 관련된 1사무 16,13 참조).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 임금들이 이렇게 기름 부음을 받아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원래 명칭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였다(1사무 16,6; 애가 4,20 등). ’기름부음받은이’는 히브리 말로 ’마쉬아’인데, 이것이 나중에는 ’제2의 다윗’ 곧 다윗의 후손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에게 결정적인 구원을 가져다줄 구세주를 가리키는 명칭이 된다. 이 ’마쉬아’가 신약성서의 그리스 말에서는 두 가지로 표기된다. 곧 소리를 옮겨 ’메시아스’라고도 쓰고, 뜻을 옮겨 ’크리스도토스’라고도 쓴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를 전통적으로 ’메시아’, 그리고 ’그리스도’로 옮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이’ 그 자체이시다. 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컫는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된 이들이다(세례와 견진성사 때에 사제가 지원자들에게 올리브 기름을 바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 ’작은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하는 이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곧 "그리스도의 향기"인 것이다(2고린 2,15).

 

[경향잡지, 2000년 9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번역담당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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