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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과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067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과부

 

 

"아, 백성들로 붐비던 도성이 외로이 앉아있구나. 뭇나라 가운데서 뛰어나던 도성이 과부처럼 되고 말았구나"(애가 1,1).

 

기원전 587년 여름,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엄청난 재앙을 겪는다. 수도 예루살렘이 외적의 손에 함락되어 파괴되고, 하나뿐인 하느님의 성전도 불에 타 허물어지고 만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거룩하고 영화로운 도성, 그러나 이제는 참혹한 폐허 더미로 변해버린 예루살렘을, 애가의 저자는 "과부"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대재앙에 빠진 자기들의 신세를 이렇게 한탄한다. "저희는 아비 없는 고아들이 되고 저희의 어미는 과부처럼 되었나이다. 저희의 물을 돈 내고 마셔야 하고 저희의 땔감도 값을 치르고 들여야 하나이다. 저희는 목에 멍에를 맨 채 심하게 내몰려 기운이 다 빠졌건만 숨돌리기조차 허락되지 않나이다"(애가 5,3-5).

 

성서의 ’과부’는 대부분의 경우에 단순히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라는 민법적 신분만을 뜻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부자들과 어떤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궤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넣었으니 생활비를 모두 바친 셈이다"(마르 12,41-44). 이 구절과 위에서 인용한 애가 5,3-5에서처럼, 성서의 ’과부’는 먼저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 남편이나 장성한 아들 같이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이가 없는 여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루가 복음서에 나오는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18,1-8)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법적 보호자나 후원자가 없는 여자를 일컫는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미망인은 소박한 ’과부옷’을 입는다(창세 38,14.19; 유딧 8,5; 10,3). ’과부 생활’에 관한 세부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딧이 삼 년 넘게 애도 기간을 지냈다는 것은(유딧 8,4), 그가 부유하였다는 것과 함께(유딧 8,7), 특수한 경우로 여겨진다.

 

과부가 된 여자에게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먼저 아들이 없으면 고인의 형제와 수숙혼(嫂叔婚)을 할 수 있다(경향잡지 1998년 3월호 참조). 친정으로 돌아가서 살거나, 아직 젊고 지참금이 충분하면 재혼할 수도, 과부로 살아갈 수도 있다. 특히 아들이 있다면 대체로 마지막 가능성을 선택하였을 것이다. 남편이 남긴 재산이 있으면 아들이 클 때까지 미망인이 그것을 맡아 관리한다. 그러다가 아들이 다 크면 재산권을 물려받고, 대신에 어머니를 돌볼 의무도 진다.

 

이렇게 성서에서 말하는 ’과부’는 대부분, 집 한 칸과 때로는 얼마간의 땅뙈기를 소유하기도 하지만,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보호자 없이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젊은 여인이다(1열왕 17,8-16 참조). 이러한 과부는 특히 고아와 이방인과 함께 사회의 하층 계급, 빈곤층을 이룬다. 그래서 구약성서에서는 과부가 대부분의 경우에 다른 하층민들과 함께 언급된다. 곧 출애 22,21.23; 신명 10,18; 이사 9,16 등에서는 고아와 함께, 즈가 7,10(신명 27,19; 말라 3,5) 등에서는 고아와 이방인과 가난한 이와 함께, 신명 14,29; 26,12-13(16,11.14; 24,17.19-21; 예레 7,6; 에제 22,7) 등에서는 고아와 이방인과 토지를 따로 소유할 수 없던 레위인과 함께 나온다.

 

이들과 함께 과부는, 공동체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배려의 주체로 먼저 임금을 생각할 수 있다. 사실 고대 근동의 군주들은 나름대로 과부를 비롯한 약자들을 보호하는 일을 자기들의 직무로 삼았다. 예컨대 기원전 1700년대에 법전을 편찬하여 이후 세계의 법 사상과 법 제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함무라비는, "강자가 약자에게 옳지 않은 일을 못하게 하고, 집 없는 소녀와 재정적 뒷받침이 없는 과부에게 올바른 것을 베풀기 위하여" 법전을 편찬하였다고 밝힌다. 구약성서에는 (고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과부를 돌보아야 하는 임금의 직분을 이처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구절이 없다. 그러나 이상적인 임금을 노래하는 시편 72를 보면, 과부를 보살피는 일이 이스라엘에서도 통치자의 본분이었음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임금)가 백성 가운데 가련한 이들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며"(4절),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그가 구원하기 때문이옵니다. 그는 약한 이와 불쌍한 이를 가엾이 여기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주나이다"(12-13절).

 

고대 근동에서는 흔히, 임금은 그 나라의 주신(主神)을 대리하여 통치한다고 생각하였다. 과부를 비롯한 약자들을 보살피는 직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이러한 일에서도 자기들의 하느님께서는 이민족들의 신들과 전혀 다르다는 점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다. 바룩서에 따르면, 예레미야 예언자는 바빌론으로 유배 간 동포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는 이 편지에서, 이제는 멸망한 자기들의 유다 왕국보다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월등히 우월한 바빌론인들이 섬기는 신들은, "과부에게 자선을 베풀지 못하고, 고아를 잘 돌보아주지도 못하는" 거짓 신들이라고 단언한다(바룩 6,37). 이러한 자각에 따라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들의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고(시편 146,9), 또 그분께서는 "고아들의 아버지, 과부들의 보호자"이시며(시편 68,6),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빵과 옷을 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신명 10,18).

 

이러한 고백이 율법서(출애 22,21-23; 신명 14,28-29; 16,11.14; 24,17.19-21; 26,12-13; 27,19), 예언서(이사 1,17.23; 10,2; 예레 7,6; 22,3; 에제 22,7.25; 말라 3,5), 성문서(욥 22,9; 24,3.21; 29,13; 31,16; 잠언 15,25)에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과부들의 보호자"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백성이 과부들에게 쏟아야 하는 특별한 관심과 사랑은 고아들의 경우와 근본적으로 같다. 그래서 고아에 대한 지난달의 글이 과부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여기에서는 그 내용을 되풀이하는 대신, 기원후 12세기의 유명한 유다인 학자 마이모니데스가 고아와 과부에 대한 구약성서와 탈무드의 가르침을 종합한 바를 살펴보기로 한다.

 

"과부들과 고아들을 대할 때에는 누구나 몸가짐에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이 몹시 억눌리고 정신이 쇠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들이 부유하다 하더라도, 설령 왕후와 왕자들이라 하더라도, ’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도 억눌러서는 안된다.’라고 쓰여있는 것처럼(출애 22,21), 우리는 그들과 관련하여 명백한 명령을 받았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반드시 친절하게 말해야 한다. 변함없이 예의를 지켜,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시킨다거나 무정한 말로 그들의 감정을 해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그들의 재산을 자기의 재산보다 더 잘 돌보아야 한다. 그들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화나게 한다든지, 그들을 괴롭히거나 학대한다든지, 금전적인 손해를 입힐 경우에는 누구나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그들을 때리거나 저주하는 자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한 범죄에 대해서 매질이 가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에 따른 벌은 ’그러면 나는 분노를 터뜨려 너희를 칼로 죽이리라.’는 토라의 말씀에(출애 22,23) 분명히 밝혀져 있다. ’네가 그들(=과부와 고아)을 억눌러 그들이 나(=하느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라고 쓰여있듯이(출애 22,22), 당신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께서 과부들과 고아들과 계약을 맺으셨으므로, 그들이 폭력 때문에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의 전통은 신약성서에도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신심이 깊은 척하면서도 뒤로는 힘없는 과부들을 약탈하는 지도자들을 단죄하신다(마르 12,40; 루가 20,45). 그리고 외아들을 잃은 과부를 위로하시고 그 아들을 다시 살려주신다(루가 7,11-17).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과부를 비롯하여 억압받는 이들과 착취당하는 이들의 진정한 보호자이심을 드러내신다.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는 과부들을 특별히 돌볼뿐더러(사도 6,1; 1디모 5,16 참조), 곤경 중에 있는 과부들과 고아들을 찾아보는 일이 하느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일이라고 강조한다(야고 1,27).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큰 특징은 과부들이 하나의 단체를 이루어 일정한 직무를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1디모 5,3-16). 물론 이 단체에 가입하는 데에는 조건이 있었다. 재혼한 적이 없고 돌보아야 할 가족이 없으며, 선행을 하여 다른 이들에게 인정을 받고, 풍부한 인생 경험을 갖출뿐더러 육체적 세속적 유혹에 초월할 수 있는 일종의 보장으로서 예순 살이 넘어야 한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도와 교회 그리고 그 구성원들을 위한 기도가 주된 업무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젊은 여자들이 결혼 생활과 가정 생활을 잘하도록 인도하고, 성직자들의 자선 활동과 사목 방문에도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과부단(寡婦團)’의 전통이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지만, 초기 공동체에서는 과부들도 수혜자의 처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회와 함께 복음을 선포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였다.

 

[경향잡지, 1999년 1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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