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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효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3,756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효도

 

 

부모의 자식 사랑은 본성적이다. 그러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 없다."는 우리의 속담이 시사하듯, 자식의 부모 사랑 또는 효도는 타고나는 면보다는 후천적으로 보고 배우는 면이 더 강하다.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라는 또 다른 속담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민족이든 자식 사랑은 달리 강조하지 않는 반면에, 효도는 다양한 방식으로 역설하고 가르친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정에서 효의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또 효가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우리는 별로 알고 있지 못하다. 훌륭한 아버지 토비트와 효성스러운 아들 토비아의 이야기 외에는, 효에 대한 이스라엘의 생각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성서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에 관한 계명, 법규, 권고 등은 적잖게 들어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성서의 효를 살펴보기로 한다.

 

성서가 말하는 효의 근본은 십계명의 제4계명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출애 20,12). 이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 또는 그 구성원 개개인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효는 곧 하느님의 계명이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전하는 신명기는 아예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명령하는 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말한다. 효와 불효는 단순히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로 그치지 않는다. 부모를 공경하라고 바로 ’나에게’ 명령하시는 하느님과 직접 관련되는 일이다. 이것이 성서의 효가 지니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이 계명을 일차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사람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자기도 부권(父權)을 행사하는 사람으로서 이제 늙어가는 부모를 합당한 공경심과 함께 섬기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러한 계명을 실천하는 부모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효도를 배우게 된다.

 

부모 공경이 중요함은 이 계명의 위치에서도 잘 드러난다. 십계명은 먼저 하느님께 대한 본분을 규정하고, 그 다음에 이웃에 대한 본분을 말한다. 부모 공경의 계명은 이 이웃에 대한 본분들의 첫머리를 차지한다. 이러한 위치는 효가 대인(對人) 관계의 근본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효가 백행(百行)의 근본이다."라는 동양의 금언과 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신(代神) 관계에서 대인 관계로 넘어가는 다리 구실을 하는 이 넷째 계명은, 또 두 가지 면에서 뒤의 계명들과 다름으로써 그 특성과 중요성이 돋보인다. 먼저, 이 계명만 "…하여라"라는 긍정 명령문이고, 이하의 계명들은 모두 "…해서는 안 된다"라는 금령이다. 이 금령들은 살인이라든가 간음처럼 이웃에게 해서는 안 되는 최소한의 본분만 밝힌다. 그러나 부모에 관한 계명은 폭이 넓다. 곧 "공경"이라는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모든 것을 포괄한다. 부모 공경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제4계명의 특성과 중요성은 여기에만 하느님의 약속이 주어진다는 사실로써도 뒷받침된다.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여기에서 "땅"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들의 목적지인 약속의 땅 가나안을 가리킨다. 약속의 땅은 하느님의 언약이 완전히 실현되는 곳이기 때문에 늘 미래의 땅이다. 그래서 이미 가나안에 들어가 사는 이들도 계속 약속의 땅을 향해 살아간다. 그리고 오래 산다는 것은 단순한 장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신의 뜻에 따라 화목하게 지내는 공동체에게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이다.

 

효와 관련하여 두번째로 중요한 계명은 레위 19,2-3에 나온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저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경외해야 한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이 말씀에 갖가지 계명 또는 법규들이 이어진다.

 

거룩하신 하느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인들은 자기들의 하느님처럼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이 이루어야 하는 대명제이다. 이 대명제를 구현하는 첫걸음이 바로 부모에 대한 경외와 안식일 준수이다. 부모를 경외함은 대인 관계를 대표하는 계명이고, 안식일을 준수함은 대신 관계를 대표하는 계명이다. 이 두 계명이 쌍을 이루어 제시됨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느님의 권위는 물론 부모의 권위도 침범할 수 없이 지고하다는 사실과, 효와 신앙이 "너희" 곧 공동체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라는 사실이다.

 

"경외"는 단순한 두려움에서 시작하여 존경과 애정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이다. 이 개념은 통상 하느님께만 쓰인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가 바로 하느님을 경외함이라는 사실을 구약성서는 부단히 강조한다. 이러한 "경외"가 부모에게 적용됨으로써, 성서가 효를 얼마나 진지하게 강조하는지를 알 수 있다. 레위기의 이 계명이 지니는 또 다른 특성은, 아버지-어머니 순으로 쓰이는 일반적 순서가 바뀌어서 어머니가 먼저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 역순의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에서 어머니가 지니는 위치와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성서의 효 사상은 출애굽기 계명(20,12)의 "공경"과 레위기 계명(19,3)의 "경외"로 종합할 수 있다. 효와 관련된 모세 오경의 다른 법규들은 이 두 계명을 강조하기 위한 것들이다. 그 가운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불효자에 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하는 신명 21,18-21의 규정이다: "어떤 사람에게, 고집이 셀뿐더러 반항만 하며 아버지의 말이나 어머니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부모가 꾸짖어도 듣지 않는 아들이 있을 경우,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를 붙잡고 그가 사는 성읍의 성문으로 원로들에게 데리고 가서, 그들에게 ’이 우리 아들은 고집이 셀뿐더러 반항만 하며 우리 말을 듣지 않는 데다가, 방탕아이고 술꾼입니다.’ 하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그 성읍의 남자들이 모두 그에게 돌을 던져 죽여야 한다. 그렇게 너는 네 가운데에서 악을 치워버려야 한다. 온 이스라엘은 그것을 듣고 두려워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먼저 가장(家長)의 권리가 제한됨을 볼 수 있다. 원래 집안 일은, 심지어 가족을 처형시키는 것까지도 집안 어른의 권한 아래 있었다(창세 38장). 그러나 이제 한 개인의 일시적 감정이나 변덕에 좌우될 수도 있는 중대사가 ’성문의 원로들’, 곧 법정으로 넘겨진다. 또 이 법규에서는 어머니도 아버지와 동등한 자격을 지닌다. 불효 자식에 대한 마지막 조치는 부모가 함께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머니가 동의하지 않으면 아버지 혼자 아들을 고소할 수 없다. 이 법규가 실행된 예는 성서에서 볼 수 없다. 후대의 유다교 랍비들도 이 법에다가 세부 조건들을 덧붙임으로써 그것을 거의 실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 법규의 주목적은, 그것의 실행 여부를 떠나서 불효를 엄중히 경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모세 오경의 다른 계명들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신명 27,6).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악담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출애 21,17; 레위 20,9).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때린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출애 21,15). 저주나 사형을 받는다는 말은 하느님의 백성에게서 잘려나감을 뜻한다. 불효는 하느님께 용납될 수 없는 악덕이다. 그리고 불효 자식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존재이다.

 

구약성서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지혜문학 역시, 위에서 본 법규들과는 다른 어투로, 그러나 똑같이 불효를 경계하고 효를 권장한다. "너를 낳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어머니가 늙었다고 업신여기지 마라"(잠언 23,22). "아버지를 비웃고, 어머니에게 순종하기를 하찮게 여기는 눈은, 개울의 까마귀들이 쪼아내고, 독수리 새끼들이 쪼아먹는다"(잠언 30,17). "아버지와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어둠의 시간에 그의 등불이 꺼진다"(잠언 20,20). "아버지를 구박하고 어머니를 내쫓는 자는, 수치스럽고 파렴치한 자식이다"(잠언 19,26). 그리고 집회서는 이러한 효에 관한 지혜문학의 권고를 종합하면서, 효도할 것을 길게 강조한다(집회 3,1-16).

 

이와 같은 효 사상은 신약성서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예수님께서는 부모 공경을 기피하려는 어떠한 구실도 용납하지 않으신다(마태 15,4; 마르 7,10). 효도는 구약성서에서건 신약성서에서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에페 6,1). 그리고 불효하는 자는 "벌써 믿음을 버린 사람이고 비신자보다도 못한 사람"이다(1디모 5,8).

 

[경향잡지, 1998년 10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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