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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 성서 동물의 세계: 염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5 조회수4,786 추천수1
파일첨부 성서동물_염소.hwp [387]  

성서 동물의 세계 : 염소(Capra hircus)

 

 

히브리인에게 소와 양 다음으로 소중한 것은 염소였다. 그러므로 성서에도 가축으로 염소가 자주 등장하게 된다. 먼저 각각의 원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Ez - 대체로 암산양을 가리킨다. "3년된 암염소"(창세 15,9), "1년된 암염소"(민수 15,27) 등이 그것이다. 갓난 새끼염소(gedi)에 비해 염소 같아 진 것을 말한다. 출애굽기 35,26의 "재간이 뛰어난 모든 여자가 숫염소 털실을 자았다."라는 말씀이 있다. '털'이라는 글자는 원문에 없지만 보충한 것이다. 다윗을 도망치게 한 다윗의 아내 미갈은 남편의 침상에 우상을 취하여 눕히고 염소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입혀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는 기사가 있다(1사무 19,13-16).

 

(2) Attud - 숫염소를 가리킨다. "너희는 바빌론에서 빠져 나오너라. 바빌론 땅을 떠나거라. 양떼를 이끄는 숫염소처럼 앞장서서 나오너라"(예레 50,8) "나는 내 백성을 인도한다는 목자들에게 화를 쏟고 앞서 가는 숫염소들을 치리라"(즈가 10,3)는 말씀에서 숫염소는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묘사하고 있다. "저 땅 밑 저승은 너를 맞기 위하여 들떠 있고 한 때 세상을 주름잡던 자들의 망령을 모두 깨우며 모든 민족의 왕들을 그 보좌에서 일어나게 하는 구나"(이사 14,9)도 비슷한 비유이다. '왕'으로 번역한 원어는 '숫염소’를 의미한다.

 

(3) Tsaphis - 이 말도 숫염소를 가리킨다. 다니엘 8,21에 "숫염소는 그리스요, 두 눈 사이에 돋은 큰 뿔은 그 첫 임금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 '숫염소'가 Tsaphir이다.

 

(4) Sair - '사납다' 또는 '털이 많다’는 뜻을 지닌 말로 털이 탐스럽게 난 짐승, 특히 숫염소를 가리키게 되었을 것이다. 염소를 라틴어로 hircus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의미에서라고 한다. 야곱이 "보시다시피 형 에사오는 털이 많고 저는 이렇게 털이 없습니다."(창세 27,11)이라는 구절의 '털이 많은'도 Sair와 관련된 말이다. "너희가 속죄제물로 바칠 숫염소 한 마리"(레위9,3;9,15;10,16;신명15,2;4;27;29,10등)라는 기사의 '숫염소’도 Sair를 가리킨다.

 

다만 에돔의 멸망을 예고한 "털이 북슬북슬한 염소귀신이 제 또래를 부르며"(이사 34,14)라는 구절은 궁전이 황폐하고 괴물이 그곳에서 날뛴다는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의 제물을 염소귀신들에게 잡아 바치면서 그 귀신들을 따라 음행을 저지르지 못한다."(레위 17,7)의 '염소귀신'은 앞에 인용한 이사야 34,14의 '염소귀신’와 원어가 같다. 그리고 2역대 11,15을 보면 "사제들을 따로 세워 산당에서 숫염소와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을 섬기게 하였다"는 말씀이 있다. 여로보암 왕이 염소와 송아지의 우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머리와 발을 가진 판(pan)의 신과 같은 염소의 신을 섬겼다.

 

레위기 16,7-10절에 이런 말씀이 쓰여 있다. 아론은 "그리고 숫염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만남의 장막 문간, 야훼 앞에 세워 놓고 숫염소 두 마리 가운데서 제비를 뽑아, 한 마리는 야훼께 바치고 다른 한 마리는 아자젤에게 보내야 한다. 아론은 야훼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를 끌어다가 속죄제를 드리고 아자젤의 몫으로 뽑힌 숫염소는 산채로 야훼 앞에 세워 두었다가 속죄제물로 삼아 빈들에 있는 아자젤에게 보내야 한다".

 

사람들의 죄를 몸에 짊어지고 무리에서 놓여나 광야로 달려가는 염소의 모습을 훈트(W. H. Hunt)는 그 대작 [The scapegoat]라는 제목으로 그렸다. 오직 한 마리의 놓여난 염소가 사해의 거치른 바닷가에 서 있다. 멀리 에돔의 산들이 보인다. 때는 저녁 그 보라빛 하늘도 곧 어둠으로 바뀔 것이다. 무거운 죄를 진 자의 고민이 화가의 마음을 통하여 화폭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인은 염소 한 마리는 하느님께 바치고 또 한 마리는 하느님 앞에서 죄를 들씌워 아자젤이 있는 죄가 득실거리는 곳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외경인 에녹서에 보면 아자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삼은 하느님의 아들들"(창세 6,2)의 한 사람이 되어 있다.

 

(5) Tayish - 뿔로 받거나 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숫염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30,35; 잠언30,31; 2역대17,11에 나와 있다. 잠언에서(30, 31) "양떼를 거느리고 가는 숫염소"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숫염소가 무리를 인도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만큼 숫염소는 용기도 있고 생김도 훌륭하다.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염소는 보통 염소(Capra hircus)를 가리킨다. 그것은 페르시아의 야생 염소(C. oegagrus)에서 왔다고 한다. 집에서 기르는 염소 중에서 팔레스타인에 가장 많은 것은 시리아 염소(C. mambrica)이다. 보통 염소보다 크고 긴 검은 털이 나 있고, 커다란 귀가 아래로 드리워져 있다.

 

또 하나 팔레스타인의 북부지방에서 기르고 있는 염소를 앙고라염소(C. Angorensis)라고 한다. 흰 긴 털이 나 있다. 염소는 기르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변종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염소에게 알맞은 환경은 산지이다. 풀이 많은 들에는 양이 잘 자라고 관목이 무성한 언덕에서는 염소가 잘 자란다. 염소는 해변가나 호숫가의 풀은 물기가 많아 좋아하지 않는다. 헤브론에서 레바논에 이르는 서팔레스타인의 중부가 염소를 기르기에 적합하여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염소를 키우고 있다. 그곳에서는 양과 염소를 같은 목자가 키우고 있다. 양은 사철쑥 같은 지상의 풀을 먹고 염소는 조금 높은 구릉 지대에서 관목의 어린 싹을 즐겨 먹는다. 그리고 저녁때 우리에도 양과 염소는 따로 들어간다.

 

"새끼양으로는 옷을 지어 입고 숫양은 팔아서 밭을 사고 염소 젖은 넉넉해서 식구와 함께 먹고 계집종들까지 먹여 살릴 수 있다."(잠언 27,26-27). 염소의 젖은 날 것으로 먹기도 하고 응고시켜 버터나 치즈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털은 직물의 원료가 된다. "성막 위에 씌울 천막은 염소털로 짠 피륙으로 열한 폭이 되게 만들라."(출애 26,7)것도 그 한 예이다.

 

염소의 고기, 특히 새끼염소의 고기는 맛있다. "양떼들한테 가서 살진 염소 새끼 두 마리만 끌어 오너라. 내가 그것으로 아버지 구미에 맞게 잘 요리해 줄 터이니"(창세 27,9)라고 리브가는 야곱에게 말했다. 기드온은 자기에게 사명을 알려 준 야훼의 천사에게 염소 새끼의 고기와 국을 대접했다(판관 6,19). 천사가 마노아 부부에게 자식을 갖게 한다고 말했을 때 마노아는 천사에게 "새끼 염소를 한 마리 잡아 올리겠으니 좀 기다려 주십시오"(판관 13,15)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의 평야에 있는 아랍인의 집을 손님이 찾아가면 주인은 지금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염소 새끼 요리를 대접할 터이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이때 기다리지 않고 그 집에서 떠나면 실례가 된다. 염소새끼의 고기는 잡아서 곧 요리하면 새끼양의 고기와 맛이 비슷하여 잘 분간할 수 없다. 양은 털을 깎아야 하므로 새끼를 함부로 잡지 않는다. 제사 때나 그밖에 특별한 경우라야 잡는다. 그러므로 저 탕자의 비유에서 형은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루가 15,29-30)라고 화를 내었다.

 

염소의 가죽은 물과 젖, 포도주 등을 넣는 주머니를 만든다. "나 비록 연기 속의 가죽부대처럼 되었사오나 나는 당신의 뜻을 아니 잊으오리다."(시편 119,83). 이것은 그을고 시들어 낡은 술 주머니처럼 되었으나 그런 고난 속에서도 야훼를 극진히 섬긴 한 신앙인의 자세를 말한 것이다.

 

여호수아 9장에 보면 기브온 주민이 멀리서 "그들은 너덜너덜한 부대와 터져서 기운 헌 가죽 술부대를 나귀에 싣고"(9,4), 여호수아에게 와서 화해를 청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 전체는 기브온인을 살린 내막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만 해어지고 찢어진 가죽 부대를 깁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낡은 가죽부대는 탄력이 없어서 찢어지기 쉽다.

 

가죽 부대를 만드는 방법은 매우 조잡하다. 염소의 머리와 사지를 절단하고 목에서 아래로 꼭 끼는 장갑을 뒤집어 당기는 것처럼 벗긴다. 이때 복부와 그밖에  금이 가지 않게 한다. 다음에는 사지와 꼬리 부분의 구멍을 꿰맨다. 가죽을 모두 손질하여 목 부분에 가죽 끈을 달고 그 끝으로 부대를 열기도 하고 죄기도 한다.

 

유대인의 율법에는 "숫염소 새끼를 제 어미의 젖으로 삶으면 안 된다."(출애34,26;신명14,21)고 되어 있다. 이것은 이교도의 습성이기 때문에 금했다는 주장도 들리지만 그렇지 않고 이것은 인정의 발로일 것이다.

 

야생염소(C. oegagrus)는 소아시아나 페르시아에 살고 있다. 야생 염소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yael은 '올라간다'는 뜻을 갖고 있다. 시나이 반도나 팔레스타인에는 시나이염소(C. sinaitica)라는 이름의 산양이 살고 있다. 알프스 등지에서 살고 있는 아이벡스(C. ibex)의 지방종(地方種)이라고 할 수 있으며 좋은 뿔을 갖고 있다.

 

아라비아에는 이 야생 염소가 많으며 여덟 마리 혹은 열 마리가 작은 무리를 지어 살고 있다. 그리고 먹이를 먹을 때에는 동료에게 망을 보게 한다. 팔레스타인에는 이런 종류의 염소가 별로 많이 살고 있지 않다. 엔게디 근처에서 요즈음에도 야생 염소를 볼 수 있다. Gedi는 염소새끼를 뜻하며 엔게디는 '새끼양의 샘'이라는 뜻이다.

 

사무엘상 24,1-3에 "다윗은 거기에서 떠나 엔게디 근방의 험준한 곳에 올라가 머물렀다. 사울은 불레셋군을 쫓아낸 다음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온 이스라엘에서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 일당을 찾아 들염소바위 동편으로 갔다"라는 말씀이 있다. 엔게디가 염소와 관련이 있는 땅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엔게디(염소의 샘)'와 '들염소 바위’가 이를 뒷받침 한다. "산양이 언제 새끼를 낳는지 너는 아느냐?"(욥기 39,1). 또는 "높은 산은 산양들의 차지"(시편 104,18). 그리고 앞에서 나온 '들염소 바위' '산양' '들염소’는 모두가 야생의 염소를 의미한다. 그리고 모두 바위나 산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야생 염소의 생태이다.

 

"사랑스러운 네 암노루, 귀여운 네 암사슴, 언제나 그 가슴에 파묻혀 늘 그의 사랑으로 만족하여라"(잠언 5,19)의 '암사슴'은 '들염소’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인에게 패하여 도망치려고 했던 적장 시스라를 죽인 부인의 이름을 야엘이라고 하는데(판관 4,17) 야엘이란 '들염소'를 의미한다.

 

이처럼 들염소를 yael이라고 하고, 사슴을 ayryal이라고 하며 양을 ayil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히브리인은 염소, 영양, 사슴, 양을 비슷한 동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또 하나 akko라는 것이 신명기 14, 5의 네 번째에 나온다. 영역성서는 ibex 즉 들염소로 되어 있으나 우리말 성서는 '산염소'로 나와 있다.

 

야생의 염소 즉 ibex의 그림은 아시리아 등지에 남아 있다. 그리고 야생의 염소를 사냥하는 그림도 있다. 오른손에 보리 이삭을, 오니손에 들염소를 들고 있는 엄한 신의 그림도 전해지고 있다. 가나안에서도 옛날에는 염소를 경배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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