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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바오로를 버린 피겔로(피겔로스) (2티모 1,15-18)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3,450 추천수0

[성서의 인물] 바오로를 버린 피겔로(2디모 1,15-18)

 

 

바오로 사도는 아들과 같이 아끼는 디모테오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썼다. 사도 바오로는 디모테오의 굳은 신앙심과 충실성에 대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는 말을 우선적으로 썼다. 그리고 신앙고백에 대한 격려를 하면서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복음을 위해 하느님의 고난을 나눌 것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시아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바오로를 버린 것에 대해 인간적인 섭섭함을 토로했다.

 

"디모테오, 그대도 알겠지만 아시아에 있는 자들이 모두 나를 버렸습니다. 그 중에는 피겔로와 헤르모게네가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크게 믿었는데 오히려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를 중심으로 짧지 않은 3년 동안이나 아시아에 대한 전교에 모든 정성을 기울였었다. 그런데 아시아의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의 어려움을 못 본 체하고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해 마음의 상처를 받았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피겔로는 바오로 사도의 큰 신망을 받았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사도 바오로가 특히 믿었던 피겔로의 배신은 사도 바오로에게 큰 인간적인 상처와 부담을 안겨주었다. 보통 원수나 적의 공격보다 가까운 동료의 배신이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과 상처를 안겨준다. 그런데 보통 우리의 삶에서도 배신 행위는 가까운 사람에 의해 자행되기 마련이다. 로마의 황제 카이사르가 시해 현장에서 죽어가면서 "부르투스여, 너마저…"라고 절규했던 것처럼 동료나 친구의 배신이 얼마나 인간적인 상처가 되는지는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사도 바오로가 디모테오에게 두 번째 편지를 보낼 무렵에는(A.D 66년경) 로마 황제 네로에 의해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가 가해지던 암울한 시기였다. 사도 바오로가 세 차례에 걸쳐 선교 여행을 감행했을 당시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사도 바오로의 협조자와 후원자로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었다. 사람들은 복음 선포와 많은 기적을 체험하면서 하느님이 과연 살아 계시며, 복음이야말로 참된 진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로마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박해와 탄압이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미치게 되자 열심히 신앙 생활했던 많은 신앙인들이 고난과 죽음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는 일들이 곳곳에서 생겨났다. 혹독한 박해 동안 수많은 신자들이 감옥에 갇혔다.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무수한 고초를 겪고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일부는 원형 경기장에 끌려가 굶주린 맹수의 밥으로 최후를 마쳐야만 했다. 따라서 당시에 그리스도를 믿었다는 것은 곧 죽음을 각오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는 박해의 고통과 수난이 두려워서 신앙을 버리는 이들이 속속 생겨났다. 이러한 배교 현상은 사도 바오로 주변에서도 일어났던 것이다. 즉 사도 바오로와 함께 동고동락했던 바오로의 협조자들이 바오로를 버리고 세상 속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그들은 환경의 변화에 너무도 쉽게 굴복했던 지조 없는 신앙인이었던 것이다.

 

아시아 출신 피겔로도 참 신앙의 깊은 맛을 알기도 전에 신앙을 포기했던 인물이라 하겠다. 그는 참 신앙은 오히려 환난과 고통 속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 공동체는 오히려 환난과 박해를 통해 자신들의 신앙을 더 발전시켰다.

 

사도 바오로에게 등을 돌리고 마침내 세상으로 나갔던 바오로의 협조자 피겔로는 에페소 교회 출신이었던 것 같다. 사실 에페소 교회는 사도 바오로가 제3차 선교 여행 중 무려 3년간(A.D 53~56)에 걸쳐 온 정열을 기울여 세웠던 교회였다. 이 에페소 교회는 사도 바오로가 사목자로서 그 어느 곳보다 더 큰 애정과 열심을 쏟아 부었던 곳이었다. 에페소 교회 출신이었던 피겔로는 사도 바오로로부터 수많은 사랑과 애정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피겔로는 이 사랑에 대해 배신으로 보답함으로써 사도 바오로의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던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자신이 여러 번에 걸쳐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고 피와 땀과 눈물로 세운 아시아의 교회를 생각하며, 그 곳의 많은 신자들의 배교를 가슴 아파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바오로가 피겔로의 이름을 거명한 것은 그의 배교가 인간적으로 매우 서운한 일일 뿐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매우 충격적이고 큰 상처를 안긴 사건임을 시사하고 있다. 아마도 피겔로는 에페소 교회 등지에서 활동한 열심한 봉사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로마의 박해가 본격화되자 자신의 교회의 지위와 봉사의 자리를 박차고 세상으로 발길을 옮기고 말았다.

 

이러한 행위는 함께 신앙 생활하는 신자들에게도 여간 큰 상처가 아니었다.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방해하는 악한 세력의 강력한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거룩한 계획이 중단되거나 포기되지는 않는다. 진정한 친구 사이의 우정도 고난과 고통 속에서 진가가 드러나는 것처럼 참 신앙과 거짓 신앙도 박해 때 뚜렷이 구별되기 마련이다. 실로 참 신앙인은 시련과 고난의 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더욱 황금 같이 빛나게 만드는 귀한 경험으로 삼는 사람이다.

 

[평화신문, 2002년 4월 7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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