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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집념과 믿음의 가나안 여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5,193 추천수1

[성서의 인물] 집념과 믿음의 가나안 여인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에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예수님의 일행이 띠로와 시돈 지방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 지방에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숨이 넘어가듯 다급한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달려왔다. 당시에는 메시아를 부를 때 다윗의 자손이라고도 불렀다. 그녀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소문을 듣고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치 아무 소리도 못들은 듯 아무런 대꾸도 않으시고 가던 길을 계속 가셨다. 그녀는 자신의 소리가 마치 개 짖는 소리로 밖에 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것보다 더 불쾌한 것이 있을까. 그러나 그 여인은 예수님의 일행을 따르며 더 큰소리로 예수님께 계속 간청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군중에 휩싸여 있으면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 여인은 나중에는 큰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댔다. 마치 악에 받혀 울부짖는 것 같았다. 그러자 보다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을 드렸다.

 

"저 여자가 미쳤나? 바로 뒤에서 귀청이 떨어지게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니 스승님, 너무 시끄럽고 귀찮으니 집으로 확 쫓아보낼까요?" 그제야 예수님은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나는 잃어버린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여기 온 것이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이번에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다.

 

"주님, 저를 제발 도와주세요. 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은 냉정하고 단호했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개나 돼지처럼 생각했다. 이스라엘 사람은 자신들은 하느님의 선민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이고 이방인은 주인도 없이 먹이를 찾아 다니며 살고 있는 개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빵을 받을 권리가 있는 자식에게 주지 않고 개들에게 준다는 것은 확실히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그녀는 강아지라는 말을 듣고도 전혀 불쾌한 표정이 없이 더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주님,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그제야 예수님께서 미소를 환하게 지으며 말씀하셨다. "여인아! 네 믿음이 정말로 크고 장하도다. 모든 게 네 소원대로 이루어 질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인의 딸은 귀신으로부터 해방되어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참된 믿음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곳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또한 시련은 때때로 사람의 영혼에 유익하기도 하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냉담한 태도와 모욕적인 답변을 들었다. 보통사람 같으면 낙담하고 그냥 물러났거나 해도 너무 한다고 하면서 욕을 하며 돌아섰을 법하다.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정반대였다. 예수님의 거절이 강해질수록 더 간절하고 적극적으로 청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분명히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녀의 불굴의 인내심은 온갖 수모를 극복하여 소망한 것을 끝내 이룰 수 있게 했다. 예수님이나 제자들도 모두 처음에 가나안 여인에게서 몰인정하게 대했다.

 

그러나 냉혹한 묵살과 부정한 대답이 그녀의 집념과 인내를 꺾지는 못했다. 사실 모든 인간적인 희망을 잃어버린 뒤에 주님만을 희망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다.

 

절망적인 암흑 속에서도 계속 믿고 구하는 신앙, 이것이 바로 큰 신앙이다. 가나안 여인은 주님의 말씀을 따지지 않고 "주님 말씀이 옳습니다."라고 응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부인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했던 것이다. 또한 가나안 여인은 주님 앞에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지혜는 놀라운 힘이 된다.

 

그녀는 은총의 부스러기라도 얻으려고 계속해서 겸손 되이 간청하였다. 믿음의 기도는 응답과 운동력이 있다. 기도는 하느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된다. 낙심은 금물이다. 하느님은 반드시 끝까지 구하는 자에게 응답을 주신다. 가나안 여인은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더 열정적이고 진지하게 임했다. 신앙인이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다.

 

기도는 바로 신앙의 가장 중요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가나안 여인은 우리에게 어떻게 기도하고 청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이제는 따지지도 말고, 낙담도 말고 그저 계속해서 겸손 되이 청하자.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이다.

 

[평화신문, 2002년 1월 13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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