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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노래들의 노래2: 벗들아, 사랑에 취하여라(아가 5,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399 추천수0

아가, 노래들의 노래 (2) 벗들아, 사랑에 취하여라(아가 5,1)

 

 

어떤 유다교 학자는 아름다운 노래, 아가를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가가 열쇠를 잃어버린 자물쇠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호에서는 과거에 아가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었다고 훑어보았습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 해석의 주류를 이루어온 것은 아가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아니면 그리스도와 교회 또는 그리스도와 영혼의 관계에 적용시키는 우의적 해석이었습니다.

 

 

감각적이고 성적인 사랑의 신성함을 노래한 아가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서부터였습니다. 르네상스와 인본주의, 종교개혁,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적인 것’ 그 자체가 지니는 가치를 서서히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 그리고 역사에 대한 관심과 성경에 대한 비판적 연구 등의 요인들이 평가의 기준을 변화시켰습니다.

 

고대 근동 문화를 잘 알게 된 것도 나름대로 큰 역할을 했습니다. 19세기에 이르러 아가를 당시 서양인들이 새롭게 알게 된 시리아의 혼인 풍습이나 이집트의 연애시와 비교하게 되고, 이에 따라 아가가 이스라엘 땅에서 두 젊은 남녀가 서로를 향하여 뜨거운 마음으로 불렀던 사랑 노래였을 가능성이 점점 더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견보다 더 의미가 깊었던 변화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인간적 사랑의 가치를 새롭게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고대와 중세에도 자구적 의미를 주장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들은 아가가 ‘그런’ 사랑을 노래한다는 사실이 아가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보았지요. 그런데 과연 아가가 남녀의 사랑 노래라면 성경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요? 이제는 그 물음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게 됩니다. 고대와 중세에는 아가를 연애 노래로 부르는 것이 성경의 거룩함을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면, 근대 이후에는 오히려 ‘바로 그’ 사랑, 감각적이고 성적인 사랑의 신성함을 노래하는 데에 바로 이 책의 중요성이 있다고 보게 됩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책이 당당하게 성경의 한 권이 될 수 있다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창조의 선성을 믿는 사람들의 노래

 

이러한 주제는 구약성경의 신학과 인간학에서 온전히 일치합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현대의 아가 해석에 따르면, 창세 1장에 반복되는 이 확신이 아가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에 선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지혜 11,24). 인간의 성(性)도 마찬가지입니다. 꽃이 피고 새가 울 때(아가 2,12 참조) 그 아름다움을 보며 그들을 만드신 하느님을 찬미한다면, 아름다운 인간 남녀의 사랑을 보며 경탄하는 것이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일까요? “하느님께서는 …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바로 이러한 하느님 창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이 아가의 자구적 의미입니다.

 

구약성경 특히 지혜문학에서 성의 위험성을 경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잠언이나 집회서 같은 책을 보면 여자에게 잘못 빠지는 것의 위험을 경계하라고 누누이 경고합니다. 그러나 아가는 그런 두려움을 뛰어넘습니다. 아가의 저자가 철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가는 오히려 위험성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사랑에 목숨을 걸 수 있는 사람, 사랑이 나를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죽음의 물살 같은 그 사랑에 자기 몸을 내맡길 수 있는 사람(아가 8,6-7 참조),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창조의 선성(善性)을 믿는 사람들의 노래입니다. 아가는 창세 3장에서 인간의 범죄로 얼룩진 세상의 사랑이 아니라 창세 2장,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 하며 환성을 지르던 그 순수한 인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가를 ‘창세 2장에 대한 주해’라고 말하는 저자도 있습니다.

 

이 배경에서 아가는 남녀의 사랑을 죄로 여기거나 불결하다고 금하지 않습니다. “먹어라, 벗들아. 마셔라, 사랑에 취하여라”(아가 5,1).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정신 차리고 있으라고 말하지 않고 도리어 그 사랑에 흠뻑 젖으라고 말합니다. 원죄 이전의 티 없이 순수한 인간으로 돌아가,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낙원으로 돌아가, 인간의 죄로 손상된 남녀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뜻하셨던 그 관계대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정복되어 자신을 온전히 상대방에게 내주는 사랑

 

이것이 아가의 일차적 의미라면,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은 여러 가지 해석에 대해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할까요? 그것들을 하나로 이어 주는 끈이 있습니다. 곧 ‘사랑’이라는 주제입니다. 예언자들이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혼인 관계에 비유했고,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와 같다고 말했다면, 그것은 그 관계 안에 부부의 사랑 같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공통점 때문에 아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아가에서 그 면을 크게 부각하지 않지만, 아가의 주인공은 사실 부부입니다(“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아가 4,9). 아가의 주인공인 여인이 자기 연인의 사랑에 정복되어 자신을 온전히 상대방에게 내주는 것이라면,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런 관계에 있고 그래서 아가를 자신의 노래로 부를 수 있습니다.

 

이론상 명확하게 구분해 두자면, 아가는 본래 하느님과 이스라엘 또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읊은 노래가 아닙니다. 아가는 남녀의 사랑, 감각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것이 아가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나 비유가 될 수 있으므로 아가는 그 관계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아가의 저자는 솔로몬이 아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마무리하면서 몇 가지를 덧붙여 둡니다. 아가 1,1에서는 이 책이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저자가 솔론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책에서는 솔로몬에 대해 이야기할 때(3,9; 8,11 등 참조) ‘나는’이라고 하지 않고 ‘솔로몬은’이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8장의 경우는 솔로몬을 은근히 비판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 책에 사용된 언어도 솔로몬 시대의 히브리어가 아닙니다. 일부러 고풍스런 표현을 사용한 예가 있다 해도, 문법적 특성을 보거나 외래어와 같은 새로운 단어를 보아도 이 책은 최소한 유배 이후, 아마도 헬레니즘 시대의 작품으로 생각됩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문화는 국제적이었습니다. 아가에서 이집트 문화의 영향이 많이 나타나는 것 역시, 솔로몬 시대의 흔적이라기보다 헬레니즘 시대에 이루어진 문화 교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여인을 ‘예루살렘처럼 어여쁘다’(아가 6,4 참조)고 말하는 저자는, 자신의 문화적 · 종교적 전통에 강한 긍지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다른 문화와 대화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줄 알았습니다.

 

 

숨은 듯이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지혜 발견

 

그렇다면 이렇게 늦은 시기에 작성된 책을 왜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할까요? 히브리 성경에서는 잠언, 아가, 코헬렛을 솔로몬이 썼다고 말합니다(여기에서 히브리 성경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제2경전을 제외한, 히브리어로 된 유다교의 성경을 가리킵니다). 사실은 그중 어느 것도 실제로 솔로몬이 쓴 것은 아닙니다. 잠언의 경우 오래된 잠언들도 모아놓은 것이니 혹시 일부가 솔로몬 시대부터 전해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 책들을 솔로몬에게 귀속시키는 것은 역사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지혜를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라는 인물로 대표되는 ‘지혜’는, 외견상 구약성경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이스라엘의 고유한 신앙만이 아닌 인류 공통을 위한 가르침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들에게서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왔다”(1열왕 5,14)고도 하지요. 그러나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다른 민족들의 지혜와 구별되는 이스라엘 지혜의 특징은, 바로 그 ‘현세적’ 사물들 안에 숨은 듯이 깃들어 있는 하느님의 지혜를 발견하는 데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가 역시 그런 특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 솔로몬의 책답게 이 책은 사랑과 하느님에 대해 직접 설교하지 않습니다. 감추어진 진리를 알아보는 지혜를 터득하게 될 때 비로소 이 책 안에 들어 있는 신앙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2년 2월호(통권 431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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