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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아가, 노래들의 노래5: 사랑해도 괜찮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3 조회수3,176 추천수0

아가, 노래들의 노래 (5) 사랑해도 괜찮아

 

 

아가 서문(1,2-2,7) 가운데 지난달에는 처음 세 절만 읽었습니다. 이제 나머지 부분을 읽어 봅시다.

 

 

“나… 어여쁘답니다”(1,5)

 

사춘기가 되었는지 봄바람이 불었는지, 꿈꾸듯 연인의 입맞춤을 그리워하는 우리의 주인공 아가씨의 마음이 살랑거립니다. 스스로 자신이 “어여쁘다”(1,5)고 말합니다. 부드러움이 한껏 풍기는 단어입니다. 사랑의 때가 무르익었다는 뜻이지요. 집안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빠들이 방해를 합니다. 오빠들은 가부장제 사회 질서를 대변합니다. 그나마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빠들은 어쩌면 젊은 아가씨가 가장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남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빠는 오빠라서 연인 노릇을 해 주지 않습니다. 집안의 질서를 유지하고 동생을 단속하려고만 합니다. 동생이 연인을 만나러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일을 시킵니다. 동생에게 포도밭을 돌보라고 맡긴 것이지요(16 참조).

 

이렇게 동생이 나돌아 다니지 못하도록 오빠들이 얽어맨다는 것은, 사회가 사랑에 이런저런 제약을 부과한다는 뜻입니다. 오빠들이라고 동생이 평생 처녀로 집안에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오빠들은 이런저런 조건을 붙입니다. 때가 되어 좋은 자리로 시집을 가려면 구설수에 오르지 말아야 하고, 엉뚱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빠들이 시집가라고 할 때까지 동생은 얌전한 숙녀로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그렇게 되던가요? 아닙니다. 오빠들의 강압적 목소리보다 사람을 녹이는 봄바람의 소리가,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소리가 더 컸습니다.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연애를 하거나 혼인하신 분들은 다 이해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데는 외부에서 요구하는 규율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이 아가씨는 포도밭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돌보지 않은 포도밭은 오빠들의 포도밭이 아니라 ‘내’ 포도밭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같은 절 안에서 ‘포도밭’의 의미가 바뀌는 것입니다. 6절의 앞부분에서 포도밭은 자구적 의미의 포도밭, 오빠들이 맡긴 일터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내 포도밭’이라고 할 때의 포도밭은 여성의 몸을 상징합니다. 아가에서 포도, 석류, 정원, 향료, 밭 등은 모두 비슷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달콤한 포도 열매를 맺어 사람을 즐겁게 하고 취하게 하는 포도밭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주어 사랑의 감미로움을 맛보게 하는 여성의 표상입니다. 그러니 내 포도밭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끝내 오빠들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랑을 찾아 나섰다는 뜻입니다. 이제 아가씨는 푸른 들판으로 달려갑니다.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여, 내게 알려 주셔요. 당신이 어디에서 양을 치고 계시는지…”(1,7)

 

아가씨는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가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그저 그를 부르며 찾고 있습니다. 연인의 이름도 없습니다. 어쩌면 아직까지 특별한 연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 내 영혼이 사랑할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의 이름보다 “내 영혼이 사랑하는 이”라는 정의가 더 중요합니다. 그에게 나타나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때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친구들의 목소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 대답이 놀랐습니다. 너의 새끼 염소들을 풀어놓고 그 염소들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1,8 참조). 노루나 들사슴처럼 아가에 나오는 여러 동물이 그렇듯 염소는 전통적으로 사랑을 상징합니다. 염소가 새끼를 많이 낳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새끼 염소들”은 ‘너의 사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친구들이 아가씨에게 연인이 어디 있는지 “그대가 만일 모르고 있다면”이라고 말했을 때, 아가씨는 아마도 자신은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살랑거리는 너의 그 마음을 따라가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마음 안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이 느껴지면 사랑을 하라고, 사랑하고 싶으면 오빠들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체면 때문에, 사회 질서 때문에 그 사랑을 묻어 버리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워 줍니다.

 

아가는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사랑의 의무를 말하지 않고, ‘사랑해도 괜찮아, 사랑에 빠져도 괜찮아’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 특히 어린 시절에 가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에게는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것이 채워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랑해야 할 필요나 욕구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주어야 할 사랑이 자기에게 있는데 그것을 꺼내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 추워 보입니다. 남들은 그런 사람들을 보고 흔히 사랑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고여 있는 사랑을 어떻게 움터 나오게 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받지 못한 사람만큼이나 병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 해 전에 어떤 수녀님이 저에게, ‘너는 일곱 개의 열쇠로 잠겨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껍질이 두꺼운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사랑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사랑하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내주는 것이 너무 위험하게 보였고, 그걸 피해 안전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살 길처럼 보였습니다. 담을 쌓고, 그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 안으로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며 살고 싶었습니다. 평온하게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때 저는 사랑의 부르심이 밖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윤리 규범, 율법과 같았습니다.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본성을 거슬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저에게 사랑은 강요된 것이었고, 저는 그것에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부르심이 밖에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아가를 읽으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사랑이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아가는 죽지 않기 위해 사랑을 가두어 두는 것이 오히려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네 본성에 귀를 기울이고 네 염소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되는 것이라고 저에게 속삭였습니다. 사랑을 거스르면 오히려 죽고 만다고, 사랑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이 제가 꽃을 피우고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여러 해 동안 아가를 읽으면서 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아가가 옳다는 것은 사랑을 억누르려는 시도가 실패를 겪을 때 깨닫게 됩니다. 살기 위해 사랑을 잠재우려는 시도가 죽음을 가져오는 것을 보고 나면, 사랑이 인간의 본성이며 생명의 길임을 알게 됩니다. 아가는 “나의 연인은 내게 몰약 주머니”(1,13)라고 했습니다. 시신을 방부 처리하는 데 사용했던 몰약은 죽음을 물리치는 생명을 상징하고, 몰약 주머니는 부적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사랑을 하면 죽을 것 같지만 바로 그 사랑이 죽음에서 나를 지켜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주오”(2,7)

 

우리 아가씨는 한없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한창 물이 오른, 봉오리가 터지기 직전의 꽃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사랑이 원할 때까지”(2,7) 깨우지 말아 달라고 말합니다. 그 사랑이 원한다면 다른 누구도 사랑을 중단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가는 ‘사랑해도 괜찮아’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말의 바탕에는 창조의 선성(善性)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습니다. 사랑을 주지 않고서 살 수 없는 본성이 인간의 마음에 있다면 하느님께서 주신 본성은 선한 것입니다. 그 본성을 억누르는 ‘오빠들’은 때로 내가 만듭니다. 어떤 이유로 스스로 사랑을 억누르려 할 때, “우리 사랑을 방해하지도 깨우지도 말아 주오”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해야겠습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2년 5월호(통권 434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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