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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선포한 갈라디아서(갈라티아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2 조회수4,758 추천수0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선포한 갈라디아서

 

 

1. 수신인

 

갈라디아 부족은 원래 켈트족으로 기원전 3세기에 갈리아(Gallien)를 떠나서 소아시아 중심부에 정착하였다. 갈라디아 부족의 지역적 특성은 지중해에서 흑해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지만, 좁은 의미로는 로마의 행정구역인 갈라디아 행정지구를 뜻하기도 한다. 갈라디아는 희랍 및 로마 문화를 받아들여 희랍어를 사용하였고, 따라서 바울로가 선교하는 데 언어의 장벽이 없었다.

 

갈라디아서의 수신인은 갈라디아의 교회들(1,2)이다. 바울로는 그의 2차 및 3차 여행 때 두 번 갈라디아 부족이 사는 지방을 방문하였다(사도 16,6; 18,23). 따라서 수신인은 갈라디아 지방에서 흩어져 있는 교회의 구성원들이라고 볼 수 있다.

 

 

2. 집필 장소 및 연대 - 초대교회의 증언

 

갈라 4장 13절에 의하면, 바울로가 두 번 수신인들을 방문했다고 한다. 두 번의 방문은 바울로의 2차와 3차 선교 여행을 의미한다. 3차 여행 때 그는 갈라디아 지방을 돌아서 에페소로 가서 3년간 그곳에 머물렀다(사도 19,21). 에페소에 머물면서 그는 갈라디아서를 집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면 집필연대는 55-56년경이라고 볼 수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갈라디아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58년경에 고린토에서 집필한 로마서보다 먼저 저술되었기에 58년 이전에 집필되었다.

 

 

3. 집필 동기

 

갈라디아서에서 바울로는 자기 신학의 중심 과제인 율법과 자유의 문제를 다루었다. 바울로의 커다란 중심사상은 "그리스도는 율법의 종지부"(로마 10,4)라고 말할 수 있다. 교회는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바울로의 이런 가르침에 따라서 율법에서 해방된 생활을 했다. 그러나 유대 보수 그리스도인들이(2,4) 갈라디아 교회에 와서 유대인들의 율법을 갈라디아 신자들 역시 완전히 준수하지 않으면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그릇된 가르침을 퍼트렸다. 인간은 신앙으로서가 아니라, 할례와 율법 준수로써 의화(義化)된다(2,15-16;3,12)는 수구파들은 갈라디아 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인 바울로의 약점을 찾아 공격했다(4,14-15; 1,11-12). 바울로는 이 반대자들을 신랄하게 공격해서 말하길, 교란시키는 작자들(1,7), 선동하는 무리들(5,12)이라고 하면서, 할례를 갖고 자랑하는 무리들은 "그것을(?) 아주 베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됩니다"라는 지독히 비꼬는 말을 한다(5,12).

 

즉 바울로가 세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 온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할례와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가르치면서 바울로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었다. 신자들은 이들에게 현혹되었다. 이에 바울로는 자신을 참된 사도로 변호하고, '다른 복음'에 맞서 복음의 진리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갈라디아 지역에 퍼진 왜곡된 복음으로 말미암아 유대계 그리스도인과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분열되는 것을 막고,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릇된 가르침을 전하는 반대자들과 이들에게 현혹된 갈라디아 교회의 신자들을 참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이끌고자 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는 바울로의 모든 서간 가운데서 제일 도전적이다. 그는 대단히 격양해서 유대 보수파 그리스도인들을 사정없이 공격하고, 또한 갈라디아의 신자들이 그처럼 빨리 바울로의 가르침을 버리다시피 하고 이설에 귀를 기울인 것을 책망한다(1,6). 바울로는 이처럼 도전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동시에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도 바울로가 얼마나 갈라디아 신자들을 사랑하고 그 때문에 고심하는지 역력히 나타난다.

 

 

4. 내용

 

갈라디아서는 모두 6장이다. 반대자들에 대한 바울로의 격정적인 변호와 논쟁을 통해 구약의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 및 복음의 진리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내용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켜서는 안 됩니다(1,1-2,21)

 

바울로는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복음의 진리를 바로 세우고자 했다. 갈라디아 교회에 완고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2,4;거짓 형제들)이 들어와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전하지 않는 바울로의 사도직을 의심하고 있었다. 바울로 자신은 하느님께 직접 불림을 받아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다른 사도들에게 인정받았음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전에 교회 내에 할례 문제가 생겨 사도들이 예루살렘에 모여 이방인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했던 것을 상기시키고,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이방인과의 식사를 피했던 베드로를 나무라면서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 대한신앙으로 의롭게 됨을 일깨운다.

 

*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입니다(3,1-4,31)

 

그릇된 복음에 현혹된 갈라디아 교회의 신자들을 꾸짖으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율법이 있기 이전에 의인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된 축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민족에게까지 이르게 되었음을 밝히면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안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이 하나이며, 하느님의 아들들임을 일깨워 준다. 또한 하갈과 사라의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은 이미 해방되었으므로 율법의 노예라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말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상속자로서 살아갈 것을 촉구한다.

 

* 자유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5,1-6,18)

 

갈라디아인들을 현혹케 한 거짓 교사들은 심판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영을 따라 걷도록 권고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해방하셨기에 이제는 할례나 비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동하는 신앙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육을 따른 삶과 영을 따른 삶의 열매들을 제시하여 영을 따라 걷는 이들에게는 율법이 필요 없음을 일깨우면서 영을 따라 형제적 사랑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촉구한다.

 

 

5. 신학-율법과 복음에 대한 문제

 

갈라디아서는 율법의 종교와 은총의 종교가 대립되고 있다. 요즘 우리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바울로의 선교활동 시기에는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그리스도만이 율법의 종지부라는 바울로의 혁명적 사상은(로마 10,4)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로서는 도저히 소화되기 힘든 사상이었고 여타 유대인들에게는 모욕이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이스라엘의 선민적 사고, 긍지, 질서, 유산의 바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율법과 복음의 문제는 바울로 자신에게도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그 역시 율법은 좋고 거룩하다고 한다(로마 7,12). 그리고 율법을 완전히 지키는 사람은 생명을 얻는다고 했다(갈라 3,10). 그러나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 아래에서는 인간은 예외없이 죄인이라는 것이다. 율법은 이것 저것을 지키라고 요구는 하면서도 지키도록 도와주지는 않기에, 결국 인간을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 넣는다는 것이다. 율법은 외적 질서뿐이기에 내적 힘으로써 그 실천을 가능케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계명은 외적 법률조항이 아니고 사랑의 실천이라고 했다(5,6).

 

율법을 실천함으로써 구원을 얻어 보려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써 구원에 도달하려는 것이며, 스스로 자기를 높이려는 것이다(갈라 6,13; 1고린 1,29). 이것은 인간의 자기 도취 존엄 망상증이다. 복음은 이와는 반대로 선언한다: 참된 구원은 그리스도의 업적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우리에게 선사하신 무상적 은총이다(3,13-14). 인간은 이 하느님의 구원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3,2), 사랑으로 실천해야 한다(5,6).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주신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5,1).

 

초대교회와 유대교 사이의 격렬한 논쟁을 기록한 갈라디아는 역사 문헌으로의 대단한 가치를 갖고 있으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영속적인 가치를 주고 있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낡은 율법은 종결되었다는 바울로의 사상을 오늘날 교회 역시 귀담아들어, 교회가 법을 체계로 전락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율법에서 해방된 자유는 하느님과 남을 섬기는, 말하자면 봉사하는 자유이다(갈라 5,13-14; 6,2).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갈라 5,13-14).

 

[인천가톨릭대학교 김일회 신부님께서 신학교 홈페이지 신학강좌 - 성서신학 자료실에 올려주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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