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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해성사가 꼭 필요한가요? 대죄 없는 데도 고해성사 보아야 하나요? 카테고리 | 7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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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타한인성당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5 조회수3,623 추천수0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70: 고해성사가 꼭 필요한가요? 

  저는 10년 전 신자인 아내를 만나 혼배성사를 한 후 7년이 지나 세례를 받은 신자입니다. 집사람과 아이들은 신앙심도 강한데 제 신앙생활은 너무 형식적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주일 미사는 꼬박꼬박 참석하면서도 한 번도 고해성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굉장한 부담을 느낍니다. 정말 발길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고해성사가 꼭 필요하나요? 


 

   신부님이 도움 드립니다:  "신앙은 용기를 요구합니다. "

    형제님께서 고해성사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죄의 고백을 같은 인간인 신부님에게 해야 한다는 것 때문일 것입니다. 내 자신의 내면에 감추어 있는 은밀한 죄를 신부님에게 고백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나 형제님에게 제가 가장 먼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일단 용기를 내서 신부님을 찾아가 고해성사를 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마음의 움직임이라든가 느낌, 변화 등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아마 고해성사가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2-23) 


        즉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사도들에게 위임하셨고, 이렇게 위임된 사죄권은 다시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과 그 협력자인 사제들에게 계승된 것입니다. 성서가 말해 주고, 또 교회가 가르치는 고해성사에 대해 어린이처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지요.. 

            

    아마 우리는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라든가 나 혼자만 알고 있으면서 끙끙 앓고 있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을 때, 날아갈 듯한 상쾌함이라든가 후련함을 느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고해성사에서도 신부님에게 내 마음속 깊이 묻어 두었던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후련함이라든가 해방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해성사의 더 큰 효과는 죄로 인해 혼란해진 삶의 여러 관계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가 하느님과 이웃, 그리고 나 자신과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면, 고해성사는 바로 이러한 관계를 다시 올바르게 회복시켜 줌으로써 하느님과 나를 화해시켜 주는 가장 커다란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는 가능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 복잡한 부활이나 성탄 판공성사 시기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용한 시간에 신부님에게 지금까지의 마음 사정을 차근차근 말씀드리고 죄를 고백할 때 용서와 기쁨, 평화의 하느님을 매우 강하게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시고 빨리 신부님을 찾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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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대죄 없는 데도 고해성사 보아야 하나요?

  저는 한 달에 한 번씩 꼴로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봅니다. 그런데 고해성사를 자주 보다 보면 때론 특별히 고백할 죄가 없어 일상적인 실수나 작은 잘못만을 고백하게 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 죄가 아닌 것이 없겠지만 항상 큰 대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은지요?



   신부님이 도움 드립니다:  "잦은 고해성사는 신앙생활에 큰 유익이 됩니다."

    한 달에 반드시 한 번 정도로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하신다니 매우 훌륭한 신앙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죄가 없기에 고해성사를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고해성사는 세례 후 범한 죄에 대해 뉘우치면서 하느님의 용서를 청하는 용서의 성사이며, 이 성사를 통해 우리는 죄로 인해 단절되었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기 때문에 화해의 성사라고도 합니다. 거룩함으로 불림을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죄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모욕이고, 하느님과 맺은 일치를 끓는 것이며, 나아가 교회 공동체의 친교에도 해를 끼치기에 이러한 죄를 멀리 하는 것은 우리 신자들의 지상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고해성사는 이렇듯이 우리 자신의 생활에서 죄를 멀리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는 물론 부분적으로는 죄의 결과인 벌까지도 면제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양심의 평화와 영적 위안을 얻으면서 하느님과 계속적인 친교를 누릴 수 있게 되지요. 이렇듯이 고해성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충실히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큰 신앙의 도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주 고해성사를 보는 것은 그만큼 신앙생활에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는 단 하루의 삶을 반성해도 하느님과 이웃의 관계에서 늘 부족하고 후회스런 느낌을 많이 갖게 되는데 하물며 잦은 고해성사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그만큼 자주 제공할 것이고, 따라서 더욱 완전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매우 유익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짓는 죄들이 주로 반복되는 죄라고 한다면 잦은 고해성사는 오히려 그러한 죄의 반복을 피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다만 잦은 고해성사에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고백한 죄를 하느님께서 분명히 용서하셨다는 믿음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곧 하느님의 용서에 대한 의심 때문에 이미 고백한 죄를 다음의 고해성사에서 또다시 반복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고해성사의 올바른 자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죄가 있다고 생각되면 가능하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고해성사를 받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죄로 인한 하느님과 단절의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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