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 시편19편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카테고리 | 천주교
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25 조회수289 추천수0 신고

아래는 시편 해설서를 올리니 참고로 보세요.

 

 

시편 19편 [지휘자에게. 시편. 다윗] 

 

1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 줍니다.

낮은 낮에게 그 말을 전하고 밤은 밤에게 그 일을 알려 줍니다. 

3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들리지 않아도 

4 그 소리 구석구석 울려 퍼지고 온 세상 땅 끝까지 번져 갑니다.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쳐 주시니 

5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이 신나게 치닫는 용사와 같이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 하늘 저 끝으로 돌아 가고 그 뜨거움을 벗어날 자 없사옵니다. 

7 야훼의 법은 이지러짐이 없어 사람에게 생기를 돌려 주고 야훼의 법도는 변함이 없어 어리석은 자도 깨우쳐 준다. 

8 야훼의 분부는 그릇됨이 없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야훼의 계명은 맑아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9 야훼의 말씀은 순수하여 영원토록 흔들리지 아니하고 야훼의 법령은 참되어 옳지 않은 것이 없다. 

10 금보다, 순금덩이보다 더 좋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욱 달다. 

11 당신 종이 그 말씀으로 깨우침받고 그대로 살면 후한 상을 받겠거늘 

12 뉘 있어 제 허물을 다 알리이까? 모르고 짓는 죄일랑 말끔히 씻어 주소서. 

13 일부러 범죄할까, 이 몸 막아 주시고 그 손아귀에 잡힐까, 날 지켜 주소서. 그제야 이 몸은 대역죄 씻고 온전히 깨끗하게 되리이다. 

14 내 바위, 내 구원자이신 야훼여, 내 생각과 내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

 <공동번역성서>

 

1.이 시편의 표제는 다윗을 저자로 돌리고 있지만, 외형적으로 볼 때, 한 시편에 두 개의 서로 다른 주제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은 이 시편이 두 개의 독립적인 시가 한 개의 시로 편집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이 시편은 전반부에서 자연을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을 말하고 있으며(19:1-6), 후반부에서는 율법을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을 말하고 있다(19:7-14).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사상, 주제, 시의 운율,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호칭 등에 대하여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만을 가지고 이 시편을 편집된 것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시편은 “하느님의 계시”라는 주제 아래, 두 개의 서로 다른 차이들이 하모니(Harmony)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편의 저자가다윗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2.이 시편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사용하시는 두 가지 수단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신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가장 크고 놀라운 은혜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고, 그로 인하여 끝없는 어두움의 심연 속에 끝없이 방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계시를 가장 큰 은혜로 알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실 때, 어떤 수단들을 사용하시는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 자연과 율법을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우리는 편의상 전자를 일반 계시라 부르고 후자를 특별 계시라 부른다.

하느님은 이와 같이 두 가지 수단들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은혜의 수단들을 가까이 할 때, 하느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자라갈 수 있지만, 멀리 한다면 무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살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의 두 가지 은혜의 수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①첫째 우리는 일반 계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일반 계시란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것을 수단으로 하여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식을 말한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속삭이고 창공은 그 훌륭한 솜씨를 일러 줍니다.”(19:1).

여기 “하늘”과 “창공”은 사람의 지식으로 측량할 수 없이 무한히 큰 것을 표현한 언어로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가?”를 나타내 주기 위하여 사용한 상징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하느님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모두를 창조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시간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자연 계시란 자연(보이는 세계)과 역사(시간) 그리고 의식(보이지 않는 세계, 양심 등) 등을 통하여 하느님을 계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우리가 이 시편을 통하여 주목해 보아야 할 것은 전반부에서 일반 계시를 말하고 있을 때 하느님에 대한 호칭을 לא이라고 부르고 있고, 후반부에서 특별 계시를 언급하고 있을 때는 הוהי로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느님의 호칭을 לא로 부를 때 일반적으로 능력과 권위 등 하느님의 속성에 관한 것들을 나타내고 있지만, הוהי로 부를 때는 권고와 의지 등 하느님의 인격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일반계시는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특별 계시는 하느님의 인격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전반부에서 “선포하다(19:1)”, “말하다(19:2)”와 같은 언어들은 일반 계시를 통하여 하느님을 계시하는 행위를 표현하고 있다.

여기 동사 “선포하다(רפס,19:2)”가 피엘 어간으로 사용 될 때 이것은 “다시 세다”라는 뜻으로 반복적으로 수를 세는 행위를 말하며 이와 같은 의미에 추가적으로 “말하다, 선포하다, 보여주다”의 뜻을 갖는다.

언어적 표현에 의하면 일반 계시는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하느님의 영광과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반복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는 의미다.

다음으로 “말하다(עבנ,19:3)”는 “흐르다”, “분출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언어다. 이것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하느님의 말씀의 가르침이 매일매일 계속 된다는 그 풍부성을 가리키고 있다.

이와 같은 언어들은 우리가 하느님의 창조세계에 살고 있는 한, 매일 그분에 대한 계시의 말씀을 들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그 소리 구석구석 울려 퍼지고 온 세상 땅 끝까지 번져 갑니다.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쳐 주시니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이 신나게 치닫는 용사와 같이 ”(19:4-5) 이와 같이 하느님의 계시는 우리 가운데 풍부하며 지속적이다.

구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도 일반 계시를 통하여 나타내 보이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동일한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로마1:20)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느님을 알 수 없다고 한다면 그리고 하느님의 임재 가운데 살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우리의 부주의함 때문이다. 우리의 사려 깊지 못한 생각이 하느님의 계시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였을 뿐이다.

 

②둘째 우리는 특별 계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별 계시는 하느님의 속성과 인격,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 등을 나타내 보여 주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해 주고 구원의 길을 알게 해 준다.

7-9절에서 특별 계시로서 율법이 우리 가운데서 어떤 일을 하는가? 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다. 먼저 특별 계시에 대한 표현들을 주목해 보는 것은 특별 계시를 이해 하는 일에 도움을 줄 것이다.

여기에서 특별 계시를 율법(הרות), 증거(תודע), 교훈(דוקפ), 계명(הוצמ), 경외하는 도(הארי), 규례(טפשׁמ) 등으로 표현했다.

이것은 특별 계시의 내용이 때로는 율법으로, 때로는 하느님에 대한 증거와 교훈으로, 그리고 하느님의 명령이나 규례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이와 같은 특별 계시들이 우리 가운데서 어떤 일들을 하는가? 특별 계시는 우리를 침체로부터 회복시켜 준다.

영적 침체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 온다. 그러므로 침체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에 대한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이다.

특별 계시는 우리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계시해 줌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 준다. 특별 계시는 우리를 지혜롭게 한다.

참된 지혜란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행할 일을 가르쳐 준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복된 삶을 위하여 마땅히 행하여야할 일들을 말씀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하여 교훈을 받고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받는 사람은 가장 지혜롭게 살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사람들은 완전에 이를 수 있다. 특별 계시는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우리는 나쁜 소식을 들을 때 기뻐할 수 없고, 좋은 소식을 들을 때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 계시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에게 복된 소식을 전해 준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께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로마8:32) 이와 같은 말씀 보다 더 우리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말씀이 세상에 있을까?

그러므로 하느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법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만사가 순조롭고 무엇 하나 꺼릴 것이 없사옵니다.(시편119,165)”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이 책에 있는 법이 네 입에서 떠나지 않게 밤낮으로 되새기며 거기에 적혀 있는 것을 어김없이 성심껏 실천하여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네 앞길이 열려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라."(여호1:8)라고 말씀하셨다.

 
3.하느님의 백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다. 하느님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살 수 있고 또한 그로 인하여 구원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 시편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느님을 아는 길을 보여 주고 있다. 다윗이 보여준 대로 우리가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하느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눈만 뜨면 어디서든지 하느님을 볼 수 있고, 숨을 쉬는 동안은 언제든지 계시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계시의 말씀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윗은 자연을 통해서 하느님의 영광을 보았고 또한 그의 손으로 하신 큰 일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특별한 말씀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보았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다윗이 얼마나 하느님을 알기에 힘썼는가를 말해 준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알기에 힘써야 한다. 시편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님을 알기에 힘써왔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느님, 이 몸은 애타게 당신을 찾습니다. 하느님, 생명을 주시는 나의 하느님, 당신이 그리워 목이 탑니다. 언제나 임 계신 데 이르러 당신의 얼굴을 뵈오리이까?"(시편42:1-2)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알기에 너무 무관심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 삶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아는 일에 시간을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삶 가운데서 하느님을 신뢰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묵상 없이 말씀을 듣고, 생각 없이 사물을 대하기 때문에 하느님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또한 하느님을 신뢰하는 삶을 생활화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실패가 곧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우리 삶의 실패를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예언자 호세아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야훼를 알자 힘써 야훼를 알자(호세6:3)”  하느님을 아는 일에 시간을 내자.

모든 환경에서 하느님을 신뢰하는 삶을 생활화하자. 내 바위, 내 구원자이신 야훼여, 내 생각과 내 말이 언제나 당신 마음에 들게 하소서.”(19:15)이와 같은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자.

 

 

 작으마한 도움이라도 되기를 빕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