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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 인쇄

한자 上帝

   종교적 존재인간은 누구나 자기 생의 근원인 궁극자에 대한 물음을 갖고 있으며, 그 나름대로 어떤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그런데 이 궁극자에 대한 의미 부여나 관점 및 관계는 사람이나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중국인들 역시 고대로부터 만물의 근원인 궁극적 존재에 대해 깊은 관념을 갖고 있었으며 이 관념은 중국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쳐 왔다. 이 궁극자를 대체로 은대(殷代)에는 상제(上帝), 주대(周代)에는 천(天), 도가(道家)에서는 도(道), 성리학에서는 태극(太極)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 궁극자에 대한 관점도 다양하여 종교적, 윤리적, 철학적 견지 등 학파와 시대에 다라 상이하며, 이로 인해 궁극적 존재의 인격성과 초월성이 중시되는가 하면, 반대로 비인격성이나 내재성이 중시되기도 하고, 혹은 인간과의 관계성이 강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명칭과 관점의 상이는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인의 궁극자 관념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 마찰과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명백한 점은 우주 만물의 궁극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하던가 간에 그 존재를 인정하고, 나름대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또한 그에 대한 관념과 관점은 각 사상의 바탕을 이루는 동시에 그 사상을 특징지어 준다는 것이다.

   1. 고대 중국인의 상제관(上帝觀) : 중국 고대의 갑골문(甲骨文)에 의하면 은(殷)나라(기원전 18-12세기)사람들은 해, 달, 별, 비, 바람, 구름 등 자연을 신(神)으로 공경했으며 또한 그들의 선조들도 사후에 승천하여 신령한 존재로 하늘에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이 자연신(自然神)과 선조신(先祖神)위에 우주 만물의 근원이요 주재자(主宰者)인 절대적 존재가 있다고 믿어 그를 제(帝), 상(上), 또는 상제(上帝)라고 불렀다. 상제는 풍년과 흉년, 전쟁의 승패, 길흉화복 등을 주관하는 인격적(人格的) 초월자로서 자연신과 선조신을 신하로 좌우에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제는 만물과 길흉화복의 주관자이지만 너무나 높고 엄위로운 존재이므로 인간이 감히 직접 관계를 맺고 청할 수 없다고 여겨 그 신하인 자연신과 선조들의 중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호의를 간구하였다. 즉 자연신과 선조신에게 도움을 청하고, 점(占)을 통해 상제의 뜻을 묻고서 그 뜻을 실천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주대(周代)에 와서도 우주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적 최고신(最高神)에 대한 관념은 변함없이 지속되나 그 명칭과 인간과의 관계는 변한다. 주나라 초기에는 절대자의 칭호로 상제(上帝)와 천(天)이 함께 통용되지만 점차 '천'으로 바뀌게 된다. 유교 경전에 의하면 천은 인간과 우주 만물의 근원이요 만유를 주재하는 인격적 신이다. 천하인은 모두 천의 백성으로 한 동포이며, 천은 만민을 사랑하여 덕이 있는 사람에게 천명(天命)을 내려 왕으로 삼고 자신을 대리해서 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왕의 수덕(修德)과 선정(善政)은 천명을 계속 유지하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되니 만일 수양과 정치제대로 하지 못하면 천은 재앙을 내려 경고하고, 그래도 듣지 않으면 천명을 바꾸어 다른 유덕자(有德者)를 왕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이 천명 사상은 더욱 발전하여 하늘(天)의 뜻과 백성의 원의(願意)는 상통하며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점차 윤리와 정치가 강조되게 되었다. 한편 천자(天子)는 수덕과 선정에 힘 쓸 뿐 아니라 천하민을 대표하여 하늘에 직접 정성의 제사를 드려야 하며 하늘은 그 제사를 흠향한다고 믿었다. 하늘에 대한 제사는 천자만이 드릴 수 있으며 제후 · 경 · 대부 등은 천보다 하위 신인 자연신과 인귀(人鬼)에게만 제사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르러 천자의 권위 상실과 정치제도의 붕괴 및 사회의 혼란 등에 따라 천에 대한 관념도 변하게 된다. 천은 여전히 인격적 주재자(主宰者)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으나, 점차 천의 내재성(內在性)이 강조되고 인간의 능력과 노력이 더욱 자각되고 중시되었다. 또한 천이 천자와만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제후나 대부 등과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이들도 천을 대신해서 백성을 다스리고 천명을 받아 폭군을 징벌할 수 있다고 믿었다.

   2. 공자(孔子)의 천 관념과 성리학의 태극(太極) : 공자는 천을, 의지를 갖고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했으며, 천에 대한 경건과 천명에 대한 순응은 그의 삶과 사상 전체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사랑하는 제자 안연(顔淵)이 죽었을 때 "하늘이 나를 버리셨구나!"(≪論語≫先進8)하며 슬피 탄식하면서도 천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순응했으며, 심한 좌절 속에도 "나를 알아줄 분은 저 하늘뿐이구나!"(≪論語≫ 憲問 37)라고 하면서 천에 대한 굳은 신뢰고백하였다. 또한 자신은 50세에 천명을 알았다고 하면서 군자(君子)는 무엇보다도 천명을 두려워하고 받들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런데 공자는 천과의 관계에 있어 종전과는 다른 태도를 취했으니, 천은 천자 · 제후 · 대부 등 귀족 계급 뿐만 아니라 사회계급의 제한 없이 모든 사람과 개별적이고도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고 보았다. 또한 이 천은 단순히 공포나 경이의 대상이거나 인간에게 굴종만을 강요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인간의 덕(德)과 성(性)을 통해 인간 안에 내재(內在)한 존재라는 것이다. 환퇴(桓 )가 그를 죽이려 할 때 "하늘이 나에게 덕을 품부해 주셨는데, 환퇴 제가 나를 어찌하겠느냐?"(≪論語≫ 述而 22)라고 하며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덕을 통한 천과의 일치를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으로부터 덕과 성을 품부답은 인간의 사명과 역할은 인(仁)을 통해 이 덕과 성을 밝히고 극진히 해 나감으로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이루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천의 초월과 내재, 천명과 인간자유, 천도(天道)와 인도(人道)가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과 함께 천에 대한 관념도 변하여 맹자(孟子)의 경우에는 공자와 같이 천을 인격적 절대자인 동시에 인간 안에 내재한 존재로 인식하면서도 어떤 때는 의리(義理)의 천, 또는 운명(運命)의 천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순자(筍子)에 이르러는 천이 인격적인 주재자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단순히 푸른 하늘 또는 자연의 법칙으로 해석되었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에 있어서도 천은 단순히 자연을 의미하며, 대신 도(道)가 천지만물을 생(生)하는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 도는 타자(他者)에 의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며 시작도 끝도 없는 영구한 윤리이며 그 작용은 의지적이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도는 개체를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체 안에 존재하며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도가 있기에 장자는 기와 조각에도 도가 있고, 심지어는 분뇨 속에도 있다고 하였다.

   도가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유교철학적으로 체계화한 송대(宋代) 성리학(性理學)에서는 만물의 근원 내지 궁극적 존재신앙적 또는 윤리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철학적 견지에서 파악하였다. 성리학자들은 '주역'(周易)의 태극(太極) 개념을 발전시켜 태극이 천지 만물의 근원이고 최고원리이며, 그 이상의 어떤 궁극자도 없다[無極而太極]고 한다. 이 태극은 우주 가운데 없는 곳이 없고 존재하지 않는 때가 없으며 각 사람이나 사물마다 하나의 태극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하늘에 달이 하나뿐이지만 강과 호수에 비치어 가는 곳마다 보이나 달이 나뉘어 졌다고 할 수 없는 바와 같이, 태극도 하나뿐이나 만물이 각각 온전한 태극을 품수(稟受)받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태극이 모든 존재의 근거 내지 원리가 된다는 의미에서 '이'(理)라고 규정하며, 천이나 도 역시 '이'로 해석한다. 따라서 만유의 근원인 절대적 궁극처를 주재자로서의 상제보다는 태극 또는 '이'로 파악함으로써 자연히 궁극자에 대한 종교적인 측면은 약화되었다. 그렇다고 상제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니 유교 경전에서 말하는 상제나 천이 만물의 근원이요 궁극적 존재라는 의미에서는 태극과 동일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성리학에서는 궁극자의 인격적이고 주재적인 측면보다는 부동불변(不動不變)의 원리 내지 제일원인(第一原因)이라는 면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궁극자를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형체(形體)로써 말하면 천이요 주재로 말하면 상제요 공용(功用)으로 말하면 신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周易轉義大全≫ 卷一 乾)는 것이다.

   그러면 태극이나 '이'는 형체가 없는 부동자(不動者)인데 어떻게 만물의 생성과 근본이 되는 '이'와 생성의 재료인 음양이기(陰陽二氣)가 묘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이나 사물이 생성될 때에는 반드시 '이'를 품부받아서 그 본성(本性)을 갖추게 되며 기(氣)를 받아 형체를 취하게 된다. 따라서 인간본성은 바로 '이'인 것이다.[性卽理]. 여기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을 자기 안에 있는 천리(天理)를 잘 보존하고 빛내도록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가장 좋은 수양방법은 마음을 늘 경건하게 가지며 천지 만물의 '이'를 투철하게 궁구하는 거경궁리(居敬窮理)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그 이상(理想)인 인극(人極)을 이루어 성인(聖人)이 될 수 있으며 하늘[天]과 땅[地]과 더불어 덕(德)을 합하고 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3. 마태오 리치의 상제 이해와 조선 유학자들의 논평 : 16세기 말엽 중국 선교에 임한 마태오 리치(Matteo Ricci)와 동료 예수회원들은 중국에서 우주 만물의 궁극자를 지칭하는 말이 상제, 천, 도, 태극 등 다양하며 더구나 이 용어들의 의미도 시대나 학파에 따라 다른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신, 즉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섭리하는 인격적 절대자에 해당하는 중국말이 무엇인지를 궁구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천지 만물의 상주(上主)라는 뜻의 천주(天主)가 적합한 용어라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마태오 리치유교 경전을 깊이 연구해 감에 따라 경전에서 말하는 상제는 그리스도교의 신 개념과 일치함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는 ≪천주실의≫(天主實義)에서 상제가 바로 그리스도교의 천주임을 여러 경전을 인용하여 주장하였다. 그러나 천에 대해서는 세분하여 만일 만물의 최고 주재자로 이해한다면 천주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보았다. 또한 도교나 민간 신앙에서 공경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나 주자학에서 말하는 태극 역시 천주와는 상이한 개념이라고 하였다. 태극이나 '이'가 우주만물의 근원이 될 수 없으며, 태극은 자립자(自立者)가 아니라 타자에 의지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의뢰자(依賴者)이며, '이'는 영각(靈覺)이 없으므로 영각적(靈覺的) 존재를 생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성리학철학적 입장과는 달리 그리스도교신앙의 관점에서 궁극적 존재의 주재적(主宰的)이고 인격적인 추월성을 강조하였다.

   선교 정책상 적응주의 입장을 취한 마태오 리치그리스도교의 신을 지칭하는 중국말은 원칙적으로 '천주'이지만 중국인에게 친숙한 '상제' 또는 주재적 의미의 '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허용하였다. 이에 대해 도미니코회와 프란치스코회 선교 사들은 '천주'만 사용할 수 있고 '상제'나 '천'은 그리스도교의 신 개념과 다르므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 용어 문제는 소위 중국 의례논쟁(儀禮論爭)의 한 쟁점이 되어 약 100년간 논란되어 오다가 1715년 교황 글레멘스 11세의 칙서 와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칙서 에 의해 '천주' 이외의 '상제', '천' 등의 용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한편 ≪천주실의≫를 통해 마태오 리치의 상제 해석에 접한 조선 유학자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주자학을 고수하는 전통 유학자들은 천주가 천지를 주재하고 만물을 안양(安養)한다는 점에서는 유교 경전의 상제와 상통한다고 대체로 시인하나, 천주가 만물을 창조하였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며, 상제는 천지가 형성된 후에 비로소 천지간을 주재하므로 천지 만물의 근원은 상제가 아니라 태극이라고 반박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서학(西學)을 신봉하던 학자들은 마태오 리치의 상제관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벽(李檗)은 ≪성교요지≫(聖敎要旨)에서 천주교 교리를 요약 설명하면서 당시 유학자들에게 친숙하지 않던 '천주'보다는 '상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정하상(丁夏祥) 역시 ≪상재상서≫(上梓相書)에서 만물의 주재자가 있음은 누구나 알 수 있으며 옛 성현들도 만물의 주재자인 '상제', '천'을 받들어 섬겼다고 역설하면서, "천주는 만물의 대부모(大父母)요 대주재(大主宰)이므로 옛 성현들도 극진히 섬겼는데 지금 사람들은 무슨 까닭에 모독하고 능욕하는가?"라고 천주에 대한 불신앙을 책망하였다. 한편 정약용(丁若鏞)은 마태오 리치의 상제 이해를 받아들이면서 근본 유교의 정신에서 상제와 천의 관념을 재조명하였다.

   4. 정약용의 상제관 : 서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공자의 근본사상에서 유교를 재해석한 정약용은 우주만물의 근원에 대해 신앙적 입장에서 인격적 주재자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유교 경전에서의 상제는 비할 수 없이 위대하고 존귀한 존재로 만유(萬有)의 유일한 근원이요 신령한 지혜를 갖고서 만물을 주재하는 인격적 절대자이며, 천신(天神)은 상제의 신하로서 그의 명을 받아 만유를 보살피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에 대해서는 푸른 창공을 지칭하는 유형(有形)의 천과 신령한 주재자를 의미하는 무형(無形)의 천으로 구별하여 무형의 주재적인 천은 상제와 동일한 존재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리학의 태극이나 '이'는 만유의 근원 및 주재자가 될 수 없으니 태극과 음양(陰陽) 위에 상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제는 밝고 신령한 지혜를 갖고서 인간 위에 임재(臨在)해 굽어보기에 인간은 상제의 굽어살핌을 알고 깨달아 삼가고 두려워하며 마음을 바르게 하고 행위를 진실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상제를 아는 것이 수신(修身)의 근본이 되며 천을 안 후에야 능히 참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상제 섬김을 통해 인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어 "두렵고 삼가는 마음으로 상제를 정성껏 섬긴다면 인을 이룰 수 있으나 헛되이 태극을 조숭하고 '이'로써 천을 삼는다면 인을 이룰 수 없으니 다만 천 섬김에 힘 쓸 뿐이다."(自撰墓誌銘 集中本)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일상(日常)의 인륜지사(人倫之事)를 도외시하고 상제를 섬기는 신앙적 차원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니, 효제충신(孝悌忠信)으로 천을 섬기는 근본을 삼음으로써 윤리와 신앙, 사회생활과 종교생활을 연결, 일관(一貫)시켰다. 더욱이 군자(君子)의 배움은 부모 섬김에서 시작하여 천 섬김에서 완성된다고 함으로써 부모에 대한 효도와 상제에 대한 효도가 궁극적으로 하나임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정약용의 상제관은 앞으로의 유교그리스도교의 만남과 그리스도교토착화에 빛을 던져주고 있다. (崔基福)

   [참고문헌] 胡厚宣, 甲骨學商史論叢, 初集(上), 臺北1972 / 李杜, 中西哲學思想中的天道與上帝, 臺北 1980 / Ping-Ti Ho, The Cradle of the East, Hong Kong 1975 / 馮友蘭, 中國哲學史, 上海 1935/ 李瑪竇, 天主實義 / K.S. Latourette,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in China, Taipei 1973 / 朴鍾鴻, 韓國思想史論攷 儒學編, 서울 1977 / 李乙浩, 茶山經濟學思想硏究, 서울 1973 / 이성배, 유교그리스도교, 왜관 1979 / 琴章泰, 東西交涉과 近代韓國思想의 趨利에 關한 硏究, 成均館大學校 博士學位請求論文, 서울 1978.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