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사전

검색
※ 단어, 외국어, 관련어, 문장으로 검색하세요. 예)부활,사순 시기, liturgy, Missa, 천사와 악마, 종부성사, 그리스도의 탄생,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등

◆성결교◆ 인쇄

한자 聖潔敎

   개신교의 한 교파. 한국 성결교회의 모체(母體)는 미국에서 창립된 동양선교회(Oriental Missionary Society, 약칭 O.M.S.)이다. 카우먼(C.E. Cowman)과 킬볼룬(E.A. Kilbolune)이 극동지방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한 이 선교회는 1901년부터 일본 도쿄(東京)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福音傳道館)을 창설하고 감리교(監理敎) 창시자인 웨슬레(J. Wesley)의 신앙정신에 입각하여 중생(重生) · 성결 · 신유(信癒) · 재림(再臨)의 사중복음(四重福音)을 강조, 도쿄 성서학원을 설립, 교역자(敎役者)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비교파적 선교회 형태를 유지하다가 1907년 한국 선교가 시작되면서 점차 독립된 교회조직을 가진 하나의 교파로 발전하게 되었다. 창립자 카우먼은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으로 무디신학교를 졸업한 전직 전신회사 이사장이었다.

   1. 연혁 ①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시대(1907∼1920년) : 동양선교회는 복음전파만을 목적으로 일본에서 설립된 단체로서 처음에는 교회가 아닌 전도관 전도를 그 특징으로 하였다. 그러나 많은 교인이 모임에 따라 교회가 형성되자, 신학교를 세워 교역자를 양성하기 시작, 하나의 교파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로써 동양선교회는 미(美) 본국의 교파 배경도 없이 하나의 선교회로 성장, 일본과 한국에 교회를 형성, 이어 중국·인도, 그리고 현재는 남미와 유럽에까지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한국성결교회는 1907년 일본 도쿄에서 동양선교회 소속인 도쿄 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상준(金相濬), 정빈(鄭彬) 두 전도자가 귀국, 서울 종로(鍾路) 일대에서 전도사업을 시작, 무교동(武橋洞) 전도관을 세움으로써 첫발을 내디뎠다. 1910년 미국 선교본부에서 파송된 영국인 토머스(J. Thomas) 목사가 한국 동양선교회 초대감독으로 부임, 무교동 전도관에 세워진 성서학원 원장으로 남녀교역자를 양성하기 시작하였다. 1913년에는 아현(阿峴)교회가 설립되었다.

   ②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시대(1921∼1945년) : 1921년 킬볼룬 동양선교회 총리가 서울에 주재, 충정로에 성결교회본부 및 성서학원 건물의 준공을 계기로 교회는 획기적 발전의 전기를 맞이하였다. 교세의 성장에 따라 1924년 교역자회를 조직, 최초의 해외선교사로 이원근(李元根) 전도사를 간도(間島)의 용정(龍井)에 파견, 1929년에는 제1회 연회(年會)를 개최, 교회헌법을 발표함으로써 조직상으로도 정식 교단의 발족을 보게 되었다. 1933년에는 제1회 총회를 개최, 박현명(朴炫明)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일제는 말기에 접어들자 특히 성결교회가 강조하는 재림신앙이 그들의 국체에 위배된다 하여 교회의 말살을 획책, 선교사를 추방, 1943년에는 성결교회를 해산시켰다. 이 기간 중에 성결교회에서는 박봉진(朴鳳鎭) 목사, 정태희(鄭泰熙) 장로, 김지봉(金芝鳳) 집사 등이 일제의 고문으로 인해 순교하였다.

   ③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시대(1845∼현재) : 8.15 광복과 더불어 강단과 교회를 떠나 있던 교역자들과 교인들이 다시 모여 교회재건운동이 활기차게 전개되어, 1945년 9월 재건총회가 소집되었다. 의장에 천세광(千世光) 목사, 부의장에 김유연(金有淵) 목사가 선출되었다. 또한 성서학원에서 발전한 경성신학교를 서울신학교로 개칭, 교장에 이건(李鍵) 목사, 명예교장에 이명직 목사를 추대, 70여명 학생으로 개교하였다. 1950년 6.25 동란이 일어나자 성결교회가 공산당 및 북괴군에 의해 입은 피해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서울신학교 교장 이건 목사를 비롯하여 최석모 · 김유연 · 박형규 · 유세근 목사 등이 납치당했고, 그밖에 155명의 교인 순교했으며, 수많은 교회가 파괴되었다. 휴전 후 세계 기독교구제회(World Relief Council, 약칭 WRC)를 비롯한 여러 선교부의 원조와 유엔군의 자재지원은 파괴되었던 교회재건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

   1960년대 전반기(前半期)에 있었던 교회 분리사건으로 성결교회는 또다시 격동기를 맞이하였다. 기독교연합사업을 교회발전의 열쇠로 보고 형성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와 기독교의 복음수호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복음동지회(NAE)의 양분된 결성은 한국개신교교회의 각 교파의 분열을 자극시켜, 성결교회도 교단분열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분열의 혼란 속에서도 본연의 입장을 지켜온 교회와 중립 입장을 고수해온 교회가 주축이 되어 교단합동의 기운이 일었다. 1965년을 정점으로 하는 제1차 합동노력과, 1973년에 시작된 제2차 합동노력이 있었으나 그 동안 누적된 두 교단 사이의 입장의 차이로 완전한 합동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두 교단은 각각 교회부흥과 발전을 추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교리 : 사도신경을 교리신조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데,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가 특별히 표방하는 교리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다. ② 신 · 구약 성경은 전체가 하느님영감으로 쓰여진 유일한 경전이며 기독교인의 생화표준이 됨을 믿는다. ③ 인간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써 거듭나고 거룩해지며 하느님의 치유하심을 믿는다. ④ 기독교인은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됨을 믿는다. ⑤ 믿는 자에게는 소망이고 불신자에게는 심판예수 그리스도재림을 믿는다.

   3. 교단 협력기관 및 산하기관 ① 협력기관 : 국내 기관으로는 한국 기독교지도자협의회, 대한 성서공회, 대한 기독교서회, 대한 기독교교육협회 등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편 국제기관으로는 동양선교회를 비롯하여 아시아 남태평양지역 성결교회 연맹, 세계복음화 국제협의회, 기독교 성결연합회 등과의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② 산하기관 ㉮ 해외선교부 : △ 미국 선교부에는 뉴욕 · 시카고 · 샌프란시스코 등에 9명의 선교사파견, △ 캐나다 선교부에는 토론토에 2명의 선교사파견, △ 브라질 선교부에는 상파울로에 1명의 선교사파견, △ 일본 선교부에는 도쿄와 히로시마(廣島)에 3명의 선교사파견, △ 인도네시아 선교부에는 2명의 선교사파견. ㉯ 교육기관 : 서울신학대학(경기도 부천시 소사동 101), 숭의종합고등학교(전남 광주시 학동 750), 신의여자중학교(광주시 광천동), 덕산중학교(충북 제천군 덕산면 도전리) 등을 운영. ㉰ 출판기관 : 총회기구 안에 출판부를 두고 정기간행물을 비롯한 서적출판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중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계간(季刊) 신학잡지 <활천>을 비롯하여 <어린이 성경공부>, <구역예배공과> 등을 발행, 현재 전국의 교세는 34만여명(1979년도 종교편람)이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