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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노◆ 인쇄

라틴어 Augustinus

   ① 아우렐리오~(Aurelius A., 354~430). 성인. 히포(Hippo)의 주교. 교회학자. 축일 8월 28일. 북아프리카 타가스테(Tagaste) 출신. 모친 성녀 모니카(St. Monica)가 그리스도교 신자였으므로 그는 신앙의 분위기에서 성장, 카르타고대학에서 수사학(修辭學)을 공부했는데 이 당시 그리스도교를 떠나 정신적 방황을 하였다. 15년간 지속된 방탕생활에서 아데오다투스(Adeodatus)라는 아들을 보게 되었다. 치체로(Cicero)의 ≪Hortensius≫를 읽고 감명받았으며(373년), 마니교를 통해 진리를 얻으려고 9년간이나 시도, 383년에는 수사학 교사로 로마에 갔다. 이듬해 밀라노로 이주, 성 암브로시오와의 해후로, 그의 영향,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성 바울로에 대한 독서를 통해 개종을 결심, 카시치아쿰(Cassiciacum)에서의 침잠 후 387년 부활 전야에 세례받았다. 388년 타가스테에 일종의 수도원을 세우고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규칙을 만들었다. 391년 고향의 연로한 주교 발레리우스(Valerius)에게서 서품, 수도원 생활을 계속하였으나 곧 아프리카 교회문제의 중요인물이 되어 395년 발레리우스의 보좌주교를, 396년부터 사망 때까지는 그 곳 주교를 지냈다.

   그의 탁월성은 그리스도교 진리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에 있다. 사제기간 중 크게 3가지의 이단 즉, Donatus 이단, Pelagius 이단, Manichaeism 문제와 대결, 이를 통해 자신의 신학을 형성하였다. 교회성사, 성사은총 등의 문제와 관련된 교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이를 통해 서양신학이 형성되었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구성원들의 상호 자선행위를 통해 하나를 이루며 그 구성원 때문이 아니라 목적에 의해 신성하다. 교회 안에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모두 있으며 최후의 심판 때까지 악한 자는 남아 있을 것이다. 교회 밖에도 선한 이들이 있지만 죽기 전에 교회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성사의 집행에 있어서의 '합법성'과 '규칙' 사이의 구분을 발전시켰다. 속권을 신국(神國)의 일부로 받아들이나 그것은 진정한 신에 대한 숭배와 정의에 기초를 두고 있는 한에 있어서이며, 이단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의 조력을 인정하나 사형제(死刑制)는 간곡히 금하였다. 후기에는 펠라지오주의 논쟁에 종사, 타락과 원죄, 그리고 예정설(豫定說)에 대한 교의를 발전시켰는데 특히 예정설은 말기의 저서에서 형식을 갖추어 뒷날에 루터 ·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단과의 논쟁을 통한 저서 외에 ≪고백록≫(告白錄, Confessiones, 400?)과 ≪신국론≫(神國論) 등의 대작이 남아있는데, 전자는 개종까지의 자서전이며, 후자는 로마가 알라릭에 의해 함락(410년)된 이후에 씌어진 최초의 역사철학서이다. 방대한 ≪삼위일체에 관하여≫(De Trinitate)와 자신의 문학작품을 정리한 ≪Retractation≫ 등도 전하고 있다. 후대 철학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영향을 실로 지대하여서 중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철학의 전 내용과 서양 신학의 현재의 모습을 결정짓게 하였다.

   ② 캔터베리의~(A. Cantuariensis, ?~604). 성인. 주교. 축일은 5월 27일. ‘영국의 사도’로 불린다. 로마 태생. 로마에 있는 베네딕토회의 성 안드레아 수도원 원장으로 있던 596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명을 받고 앵글로 색슨 민족의 그리스도교화를 위해 30명의 수사와 함께 영국 켄트에 파견되어, 597년 캔터베리 주교, 603년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었다. 결혼 전부터 그리스도 교도였던 켄트왕 에델버트의 비(妃) 베르타의 도움으로 국왕으로부터 특별한 편의를 제공 받아, 전도 수개월만에 그리스도교는 공인(公認)되었다. 국왕을 위시한 많은 국민이 그리스도교도가 되어 결국 켄트는 그리스도교국가가 되었다. 그는 유스토(Justus)를 로체스터주교로 앉혀서 메드웨이 강 서쪽의 전도를, 멜리토(Mellitus)를 런던 주교로 앉혀서 이스트 색슨족의 전도를 각각 맡아보게 하였다. 유해캔터베리에 있는 성 베드로 및 성 바울로 대수도원에 안장되었고, 이 수도원은 후에 성 아우구스티노 대수도원으로 개칭되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