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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덕◆ 인쇄

한자 完德
영어 spiritual perfection

   신자생활에 적용되는 완덕의 개념은 성서에 근거한다.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48)고 권고하였다. 일반적으로 인간생활에 적용되는 ‘완전’의 용어를 고대에 바바리안들은 용기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몇몇 그리스 철학자들은 완전을 인간속에 있는 신성(神性)의 자각으로 보는 신지학(神知學, theosophy)에서도 보여진다. 그리스도교 내부에서도 완덕을 순교까지 할 수 있는 용기로 보거나, 완덕의 본질이 참회고행에 있다는 견해도 있다. 정적주의(靜寂主義, Quietism)는 완덕에 이르는 인간의 노력을 부인하고 완전한 수동성에 완덕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애덕(愛德)을 완덕의 형식적인 요소로 주장한다. 이는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 그 사람안에 계신다"(1요한 4:16)는 성서에 근거한다. 성 바울로애덕이 완덕의 끈(골로 3:14)임을 확신하였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완덕을 두 차원에서 설명함으로써 완덕의 개념을 확실히 하였다. 즉, 첫 번째 완덕은, 전체에서 기인하여 모든 부분들로 완성되는 전체 형식으로서의 완덕이다. 세례를 통하여 회복된 성화은총(聖火恩寵)을 가졌을 때 신자로서 본질적으로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완덕은 작용으로 성취되는 것, 즉 목적으로서의 완덕을 말한다. 이것은 모든 덕과 성령의 열매들을 필요로 한다. 애덕은 이 완덕의 근원이 된다. 신자생활의 완덕은 근본적으로 애덕,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있는 것이다. 완덕의 끈이며 율법의 완성(로마 13:10)인 애덕은 모든 성화수단을 지배하고 목적을 달성케 한다. 애덕하느님과의 초자연적 친교를 가능케 한다. 그러나 이 애덕은 단순히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실제적인 사랑을 뜻한다. 현세에서 신자는 모든 활동을 하느님 사랑에서부터 행한다.

   완덕은 하느님사랑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노력 정도에 따라 도달하는 단계에 차이가 난다. 즉, 인간이 완덕에 이르는 첫째 단계는 초보자로, 애덕을 직접적으로 거스리는 모든 것 즉, 대죄(大罪)를 피하는 단계이다. 두 번째는 진보자로, 완전히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인간애착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을 제거하려는 단계이다. 세 번째는 완덕자로, 하느님과 일치하는 단계이다. 완덕은 하느님과 합일하는 것으로 마쳐지지만 이 마지막 단계에서도 완덕은 상대적이다. 하느님사랑하는데 한계란 없다.

   완덕은 신자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목표로서 명령되어진 것이며, 신자생활을 위한 모든 지침에 기본적으로 존재한다. 즉 사랑에 반대되는 것을 행하지 않게 하는 계명의 준수로 가장 낮은 단계의 완덕에 나아간다. 그러나 두 번째는, 사랑의 실제적 실행에 근본적으로 장애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라는 권고를 지킴으로써 가능하다. 이는 그리스도가 완덕의 길을 제시한 복음삼덕(福音三德) 즉 청빈 · 정결 · 순명의 권고이다.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완덕의 높은 단계에 이를 수 없지만 권고는 명령과는 달리 자유롭다. 수도자들은 자유롭게 이 권고를 받아들여 이를 다 이루기 위해 서원(誓願)을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신자들이 어떤 생활조건이나 신분에 있든지 성부(聖父)께서 완전하심과 같이 자기 신분에 고유한 완덕을 추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의무가 있음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교회헌장 11,42).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