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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인쇄

한자 人間
라틴어 homo
영어 human being

   1. 서론 :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력과 인간에 대한 자연의 능력의 한계는 어느 정도인가? 우리가 목표로 나아가는 곳은 어디인가? 이런 문제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나타난다”(헉슬리). 인간에 대한 연구를 인간학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으나 현대에 와서 이 말은 주로 다음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① 물질적이고 신체적 측면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신체적 인간학, ② 인간의 역사기원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하는 민속지리학적 문화적 인간학, ③ 인간의 궁극 원리를 찾는 관점에서 인간을 연구하는 인간학이다. 생물학적 인간학에서는 해부학적 인간학, 생리학적 인간학, 정신적 인간학, 심리학적 인간학, 사회 문화적 인간학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하느님의 계시에 입각한 신학적 인간학도 인간학의 한 분야이다.

   2. 철학적 인간학 : “철학의 모든 근본적 문제들은 결국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이 전체 존재세상과 하느님 안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하는 질문으로 요약할 수 있다”(막스 셀러). 그러나 인간실존(實存)에 관한 연구는 인간을 탐색하는 자 자신이 또한 동시에 대상이 된다는 데서 어려움이 있다. 인간 자신이 인간을 문제로 제기하기 때문에 인간 자신을 객관적으로 떼어 놓고 볼 수 있는 관점이 없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문제는 인간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답이 내려지고, 인간에 대한 문제는 다양한 관점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해답이 주어지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학자들이 본 인간을 나열하면, 마르크스의 경제적 인간, 프로이드의 본능적 인간, 키르케고르의 불안한 인간, 블로흐(Bloch)의 유토피아적 인간, 하이데거의 실존의 인간, 리쾨르(Ricoeur)의 오류의 인간, 가다메르(Gadamer)의 해석학적 인간, 마르셀(Marcel)의 문제의 인간, 겔렌(Gehlen)의 문화적 인간, 루크만(Luckmann)의 종교적 인간 등이다.

   인간 연구의 근원적 방법을 제시한다면, 현상학적 방법과 초월론적 방법으로 생각할 수가 있다. 현상학적 방법에서는 인간 존재와 관련된 모든 소여(所與)들을 수집하고, 초월론적 방법은 이 소여들의 궁극적 의미를 찾고 이 소여들에게 의미를 주고 가능성을 주는 깊은 이유를 찾고자 한다. 경험에서 직접 주어지는 인간 현상들은 먼저 인간이 육체적 존재로서 성장하고 운동하고 감각하는 존재이며, 무엇을 지향하고 원하고 말을 하며, 사고하고 일하며, 문화를 창조하고 여가를 즐기는 인간이다. 그러나 이 많은 현상들 중 어느 하나도 인간을 모두 설명하지 못하며, 인간 자체는 이런 현상들을 차례로 넘어 더 높은 차원의 현상에로 향한다. 인간에게는 자기가 자기로 넘어가는 자아 초월적 현상이 있다. 공간과 시간, 물질과 역사의 한계를 넘어가는 인간의 자아 초월현상은 영원하고 비연장적(非延長的)이고 비물질적인 무한한 영(靈)의 수평을 향한 도약이다. 이러한 인간의 자아 초월형상에서 인간은 육체와는 다른 존재론적 구성 요소인 영혼 혹은 정신, 영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성서학적 인간 ① 구약 : 인간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영과 육의 합성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육체’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구원의 희망은 “육체의 부활이었다”(이사 26:19, 다니 12:2-3, 2마카 7:14 참조). 인간의 육체성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기초가 된다. 구약의 인간 실존은 다른 인간들과 공존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공존관계는 하느님과 같은 일차적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인간 각자는 하느님의 초월성 앞에 동등하고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레위 19:9-18 · 34, 25:35-38). 인간의 공존관계와 의존관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성적(性的) 관계에서다. 남자와 여자로 창조된 인간은 남녀 사랑의 관계에서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인간 본성은 곧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정치적이다. 그리고 공존과 의존관계에서 인간은 책임을 가진 존재요, 하느님의 뜻에 응답하는 존재이다. 구약에 의하면 인간은 역시 죄많은 존재이다. 인간은 교만으로 가득차서 하느님의 부르심이나 이웃의 부르짖음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자들이다. 죄가 세상에 번져가지만(창세 3-11) 주님용서해주시는 영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는 존재이다.

   ② 신약 : 신약에서도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별 한다든지, 지성과 의지로 구별하는 등 인간에 대한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이해는 없다. 인간 존재역사적 실존으로서 제한된 존재요 죄에 물든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회개해야 하는 존재이다. 마음과 정신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인들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우리는 구원에 이른다. 바울로 사도는 인간 실존의 육체적 조건을 강조한다. 인간은 육체(soma)이다. 그러나 죄로 인해 우리는 소외된 세력 즉 하느님께 반항하는 육(sarx)의 지배하에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과 성령의 능력에 희망을 가진 인간이다. 사도 요한에 의하면 우리가 인간임을 우리 마음과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하느님에 의해 즉 은총에 의해 사는 것을 말한다. 죄많은 우리 자신들과 세계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면 멸망하고 말았겠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으로 우리는 살아가게 되었다.

   4. 신학적 인간화 : 인간 실존의 문제는 교의신학 문제 중 하나가 아니라 “전체 교의신학의 문제로 봐야 한다”(칼 라너).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신학적 인간학의 ‘관점’은 하느님이 실재(實在)하신 다는 확신이다. 실재적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 각자의 의식과 인식과 윤리행위의 원리이시다. 비록 하느님의 현존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나, 인간 실존의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 사람들이나, 인간 실존의 신적 원리를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은 원리가 되신다.

   우리 인간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아는 인격들이다. 즉 우리는 인식을 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인식하는 것도 알며, 인식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가지 학문의 관점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반성을 할 기회를 갖기 전에 있는 현상으로서, 곧 우리가 인간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와 반성을 하기 전에 우리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험적 인식(a priori Knowledge)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인간에 대해 가지는 선험적 인식에는 ‘초자연적 실준’이라는 신앙의 빛을 갖게 된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아는 자아 인식의 원리와 능력으로서 처음부터 우리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인식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인격적 주체로서 또는 인간 존재로서 참으로 의식하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인간에겐 선험적인 하느님의 인식이 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인간은 피조물이고 제한되어 있으며, 금이 간 피조물이긴 하나 하느님의 의해 역사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현존(은총)과 접촉하고 있는 인격으로서의 존재이다. 인간 각자에게는 하느님 현존(은총)의 빛으로 인격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근본적 능력이 있고, 또한 인간 성신을 알 수 있는 근본적 능력이 있고, 또한 인간 성장과 완성의 궁극 대상으로서 하느님을 아는 근본적 능력이 있다. 순수 자연이란 가정적인 것이다. 즉 은총과 분리되어 있는 인간 존재 혹은 하느님에 대한 근본적 능력[중세 스콜라 신학에서 말하는 ‘순종적 가능유’(順從的 可能有, Potentia obedientialis)나, 현대의 초월론적 토마스주의자들이 말하는 ‘초자연적 실존’]이 없는 순수 자연의 상태에 있는 인간이란 가정적(hypothetically)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혹은 역사적으로는 이러한 능력없이 인간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은 은총 안에서 하느님의 자아통교와의 관계없이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신학적 인간학은 그리스도론을 외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들 중에 많은 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해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그리스도와는 별도로 우리 인간 자신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분을 인간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학은 그리스도론만을 추종할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론과 항상 관계를 가져야 한다.

   5. 인간에 대한 교회의 공식 가르침 : ① 하느님은 물질계만이 아니라 정신계를 합친 전체 세계의 창조주이시고, 섭리를 총해 이 세계를 현존시키고 계시다. ②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모두 다 좋은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하느님 창조에서 최고봉에 있다. ③ 인간의 신적 본성은 그 인격이 하느님과 내밀한 관계를 가지는 데서 나오는 것으로, 이것이 인간이 자신 안에 자신을 넘어가는 원리에 의해 실존한다는 인간의 초월적 차원이다. 그래서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 ④ 그러면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에게로 향하고 있는 사회적 실존이다. ⑤ 인간 조건은 역시 분열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함과 죄에 떨어지고, 스스로가 제한된 피조물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이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불안을 느끼게 한다. ⑥그러면서도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우리 자신과 우리 환경을 지배하도록 불림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은총에 의해 특히 예수 그리스도은총에 의해 그렇게 할 힘을 받고 있다. ⑦ 죽음이란 인간 실존의 끝이 아니다. 생명이란 변하는 것으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영광을 받도록 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에서 가르치는 인간은 ①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이것은 교부들의 사상이다), 하느님을 알고 사랑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하느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12항 창세 1:26, 지혜 2:23, 벤 시라 17:3-10, 시편 8:5-6). ② 그러나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외로운 존재로 창조하시지 않으시고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그래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12항). ③ “인간은 숭고한 부르심과 심각한 비참을 경험한다”(13항). ④ 그러나 인간은 우리 자신의 육체나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피조물 세계를 경멸하지 못한다. 비록 이들이 고통과 불안의 원천이 될지라도 그렇게 못한다. 인간은 자기들의 내면적 특성 때문에 인간 이외의 피조물을 능가한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 안에 현존하시고, 우리가 거기 계시는 그분을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14항). ⑤ “양심에 충실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결합되어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를 따라서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야기되는 여러 가지 윤리문제들을 해결하게 된다”(16항). ⑥ 맹목적인 내적 충동이나, 단순한 외적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 선에로 향할 수 가 있다. 그러나 우리 자유는 죄로 손상되었기에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고, 이에 따라 전체 피조물이 완전 개화하게 된다. ⑦ 죽음에 직면해서 인간 실존의 수수께끼는 매우 명확해진다. 기술이 우리 죽음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다. 생물학적 생명 연장이란 인간 정신에 부여된 고차원적 생명을 만족 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18항). ⑧ “어떠한 상상(想像)도 죽음 앞에서는 맥없어지지만 하느님의 계시를 들은 교회는 인간이 지상 불행의 한계를 넘어서 행복한 목적을 위하여 하느님께 창조되었음을 가르친다”(18항).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인간 구원자>(1978)라는 회칙에서 구원의 빛에 비추어서 인간 품위와 자유에 대해 긍정적으로 선언하신다. <자비로우신 하느님>(1980) 회칙에서는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인간 상호간의 자비로운 인간 관계를 확립하는 것이 인간 완성이라고 가르치신다. 또한 <노동하는 인간>(1981)에서 인간은 자기 노동으로 하느님 창조사업에 참여하여 자기완성을 가져온다고 가르친다. (朴石熙)

   [참고문헌] M. Baily, Biblical Man and Some Formulae of Christian Teaching, IrTheol Q., 1960 / M.J. Adler, What Man Has Made of Man, New York 1937 / N.A. Luyten, La Condition corporelle de l'homme, Friburg 1957 / R. Guardini, Freedom, Grace and Destiny, tr. J. Murray, New York 1961.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