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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학◆ 인쇄

한자 敎父學
라틴어 patrologia
영어 patristics

   1. 교부학의 개념과 대상

   ① 개념 : 교부학이란 교부들에 관한 학문이다. 그것은 신앙을 기초로 하여 하느님께 대하여,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인간에 대하여 논한 교부들의 사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신학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연구대상의 저자와 작품 및 시대적 배경의 동일성 때문에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문학의 일부분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교부학은 복음신앙의 빛을 따라 이루어진 증언과 함께 그 상호간의 밀착도를 신학-교의적 측면에서 관찰, 연구하고 있을 뿐, 결코 문학사적 관점에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이와같은 신학-교의적 관점 때문에 교부학은 정통교회의 주창자나 옹호자뿐 아니라 이단학설의 주창자들도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그 연구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진리수호자들인 교부들의 신학사상과 초세기 인물들의 정통학설에 대한 고찰과 연구야말로 교부학의 일차적이요 주된 작업이다.

   '교부학'(patrologia)이란 용어는 루터파 신학자 요한 게르하르트(J. Gerhard)에 의하여 1653년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개념과 의미는 이미 초세기 저자들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19세기까지는 '교부학'이란 용어가 주로 중세까지의 일종의 그리스도교 문학사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그 후 점차적으로 그 대상 시기가 초세기로 한정되기 시작하면서 그 내용 또한 구체화하게 되었다.

   예로니모(Hieronymus, +420)가 이해한 교부학의 개념은 초대교회 문학사와 동일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비(非)가톨릭 저자들을 구별치 않고 인용 소개하고 있다. 사실 초대교회는 비가톨릭의 저자들과 함께 동일한 문화권 속에서 생활하면서 철학, 문학의 많은 요소 즉 어휘와 함께 사상면에 있어서도 이들에게 짙은 영향과 많은 암시를 받아왔다. 그 구체적 실례를 우리는 신론(神論) 특히 그리스도론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설명 그리고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그리스 철학의 많은 용어를 빌어왔기 때문이다[+는 사망 연도 표기]

   ② 대상 : 교부학은 초대교회 저술가들의 생애와 작품 그리고 내용 등을 연구하여 그 개인사상 및 시대적 사상조류의 종합을 꾀하고 있다.

   ㉮ 생애 : 정통교회의 확립에 공헌한 주인공들인 경우에는 그 가르친 학설 내용의 무게와 유익성 때문에 그 생애 자체가 연구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이런한 연구는 그의 개성과 인품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 작품이 쓰여진 동기와 배경을 보다 생생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

   ㉯ 저서 : 작품은 역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우선 그 작품의 진정성(眞正性, authenticitas)이 증명되어야 한다. 사실 많은 학자들이 문헌비판 및 고증을 통하여 진정성 여부의 결론을 제공해 주고 있다.

   ㉰ 학설 : 저자기 주창한 학설과 교리를 연구하면서 그것이 전후대(前後代) 교부나 저술가들과 맺는 관계를 살펴야 한다. 따라서 그 내용이 저자 자신의 독창적인 것인가 아니면 종속적인 것인가, 그 농도는 어떠한가, 또는 그것이 외톨이의 사상이나 학설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고 후대 영향을 주었다면 어느 정도일까, 그 전승된 내용의 가치는 무엇인가 등의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그 신학-교의적 비중과 의미를 찾아낸다.

   그리고 또한 쟁점이 된 사상과 내용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소홀히 취급되고 잊혀졌던 점들을 재고찰하여 신학사(神學史)를 위한 재평가 자료를 제공한다. 또한 어느 학설이나 주장이 교도권(敎導權)에 의하여 단죄 및 배척을 받은 경우, 그 배경을 다시 검토하여 신앙의 보다 깊은 이해를 도모하기도 한다.

   이와같은 이유로써 교부학은 실증신학(實證神學, theologia positiva)이며 동시에 역사신학(theologia historia)의 부문에 속한다. 한편 교부신학(theologia patristica)이란 표현은 17세기경 성서신학, 스콜라신학, 이론신학, 상징신학 등과 구별짓기 위하여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후에는 교의사(敎義史, historia dogmatum)로 발전되었다. 교의사는 교부뿐 아니라 예전(禮典) 및 공의회록(公議會錄) 등 교의와 연관을 맺고 있는 그 모든 내용을 검토하여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핀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부학은 그 한정된 대상과 내용으로 교부신학 내지 교의사를 위한 입문서(入門書)라고 간주할 수 있다. 개인의 작품이 아닌 공동체 및 집단의 산물인 내용들, 예컨대 예전 문헌, 공의회 기록, 순교록, 성인행적, 수도원 규칙, 신경 및 비문 등은 교부학에 있어서 제2차적 대상이며, 교부들의 저서 및 사상내용이 제1차적 대상이되고 있다.

   2. 교부와 그 권위

   ① 교부 : 이는 성서상으로나 교회사적 측면에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초대교회 공동체가 그의 주교, 스승, 학자들에게 부여한 칭호로서 사랑과 존경을 나타낸 표현이다(예 : 부자관계, 2베드 5:13, 1고린 4:15-17, 1디모 1:2, 2디모 2:2, 디도 2:4, 교부들의 증언 : 이레네오 <반 이단론> Ⅳ:41:4,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양탄자> Ⅰ:1:3 참조). 3세기부터는 '아버지'란 칭호의 사용이 확장되면서 목자주교들에게도 이 칭호가 주어졌으며 4~5세기 아우구스티노 시대에 와서는 예로니모가 지닌 신학적 권위 때문에 이 교부의 칭호가 확대 적용되기도 한다.

   ② 교부의 조건 및 4대 교부 : 교부란 칭호를 부여받기 위하여는 보통 다음의 네가지 조건이 요청된다. ㉮ 교리의 정통성(doctrina orthodoxa), ㉯ 모범된 생활(sanctitas vitae), ㉰ 교회의 인준(approbatio ecclesiastica), ㉱ 고대성(古代性, antiquitas).

   그런데 교회학자(Doctor Ecclesiae)란 칭호는 꼭 교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학자란 고대성이 결여된 경우에도 뛰어난 인품과 특히 그가 이룬 신학적 공로에 따라 교회가 부여하는 일종의 명예적 칭호이기도 하다(예 : 파도바의 안토니오, 대(大) 알베르토, 토마스 아퀴나스, 보나벤투라 등). 800년경에 분도회 수사 요한은 암브로시오(Ambrosius, +397), 예로니모, 아우구스티노, 대 그레고리오(Gregorius Magnus, +604)를 4대 교부라 하여 그들을 “낙원에서 흘러온 네 줄기의 강”이라고 칭송하였다.

   1290년대에 와서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은 이들을 서방교회의 4대 교부로 공식 선언하였다. 한편 동방에서는 대 바실리오(Basilius Magnus, +379),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Gregorius Nazianzenus, +c.390),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407) 등 3교부를 공교부(公敎父, Patres Oecumenici)로 추대하였다. 그런데 여기에다 라틴교회에서는 아타나시오(Athanasius, +373)를 첨가하여 공경하였다. 그리고 성 비오 5세는 1568년 이들에게 교회박사란 칭호를 부여하여 성무일도(Breviarium)에 삽입하였다. 따라서 동서방교회 각 4명의 교부를 합하여 8대 교부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외에 교회학자란 칭호를 받은 초대교부들도 또한 몇 분 있으니 서방 교회에서는 프와티에(Poitiers)의 힐라리오(Hilarius, +367), 베드로 크리솔로고(Petrus Chrisologus, +c.450), 대 레오(Leo Magnus, +461), 세빌랴의 이시도로(Isidorus, +636)이며 동방교회에서는 에프렘(Ephraem, +373), 아타나시오, 바실리오, 예루살렘의 치릴로(Cyrillus Hierosolymitanus, +386),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Cyrillus Alexandrinus, +444) 등이다[+c.의 c는 circa, 즉 '무렵'의 뜻].

   ③ 교부들의 일치된 의견(unanimis consensus Patrum) : 교부들의 권위는 그 문체나 학설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신앙의 올바른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교부 개개인은 교회의 성전(聖傳, Traditio)을 이루는 구성요소는 되지만 결코 성전 자체는 아니다. 어쨌든 성전의 한 몫이며 구성요소인 각 교부의 권위는 그가 주창한 학설의 내용이 교회의 가르침이나 다른 학자들의 주장, 또는 자신의 성덕신앙에 일치되는 정도에 따라 비례된다. 따라서 그 권위를 크게 하는 요소는 물리적 양(量)이 아니라 윤리적 질(質)이다.

   3. 교부학의 기원(起源)

   '교부학'이란 명시적 표현은 비록 최근에 사용된 어휘이기는 하지만 그 개념은 훨씬 오래 전, 즉 초대교회 문학사에서 이미 발견되고 있다.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Eusevius Caesariensis, +339)는 그의 저서≪교회사≫(Historia eccl.)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한 사람들과 함께 오류를 범한 저술가들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교부학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그러나 신학사적 관점에서 볼 때 예로니모의 ≪명인록≫(De Viribus Illustribus)이 좀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비록 에우세비오의 ≪교회사≫와 ≪역대기≫에 종속되었다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체계와 종합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니모는 392년 베들레헴에서 로마 집정관 덱스테르(Dexter)의 청에 의하여 ≪명인록≫을 저술하였다. 이 작품은 2세기 초엽에 씌여진 같은 제목의 수에토니오(Suetonius)의 작품과 위에 열거 한 에우세비오의 두 작품을 모형으로 하여 사도 베드로로부터 392년 당대까지 135명의 인물들을 열거,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는 유태인인 필로(Philo, +c.54), 플라비오 요셉(Flavius Josephus, +95) 및 로마철학자 세네카(Seneca, +65) 등 비 그리스도교 저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와 같이 가톨릭 및 비가톨릭 저자들을 구별치않고 무분별하게 다루었다는 사실 때문에 이 작품이 출간되자 아우구스티노는 곧 비판을 가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 작품에는 많은 오류가 있고 또 저자 자신의 편향성이 두드러지게 엿보인다. 어쨌든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닌 가치와 권위는 조금도 감소되 않는다. 사실 미누치오 펠릭스(Minucius Felix, +2세기말?), 테르툴리아노(Tertullianus, +220 이후), 치프리아노(Cyprianus, +258), 노바시아노(Novatianus, +252 이후) 등 몇 명의 인물에 대한 기술 내용은 이 작품만이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자료이며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명인록≫은 1천년 이상이나 교회 문학사에서 그 자리를 확보해 왔고 영향력을 미쳤으며 후대의 저자들은 이 부문에서 거의 모두 그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명인록≫에 종속되었다. 이와 같이 그것은 모형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

   4. 시대구분 및 언어

   ① 시대구분 : 교부학에서 연구대상이 되는 시기는 초기 7~8세기까지이다. 학자들에 따라 구분기준의 연대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3시기로 구분한다. 초기 = 사도시대부터 니체아 공의회(325년)까지; 전성기 = 니체아 공의회(325년)부터 칼체돈 공의회(451년)까지; 말기 = 서방 : 세빌랴의 이시도로(Isidorus, +636)까지, 동방 : 다마스코의 요한(Johannes, +749)까지.

   ② 언어 : 초세기 로마제국 문화권의 통용어는 그리스 대중어인 코이네(Koine)였다. 따라서 이 언어가 바로 교부들의 언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150년 경부터 지역에 따라 차츰 라틴어, 시리아어, 콥틱어, 아르메니아어 등이 사용되면서 다양한 언어권이 형성된다. 이 때부터 서방을 중심으로 라틴어 우위권의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교부들의 중요한 언어이다.

   5. 교부 전집 및 비판본(批判本)

   초대교회의 작품은 필사본(筆寫本)으로 전해왔기때문에 비판본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원본이 유실되었기 때문에 이 필사본은 중요한 가치를 지니며 바로 원전(textus originalis)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인문주의시대에 언어학자들의 수집 공헌으로 초대교회의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으며 특히 1618년에 세위진 생 모르(St Maur)의 분도회 수사들에 의한 문집(文集, folia)이 가장 오래된 전집류로서 17~18세기에 이르러 이들은 그리스어 원문과 함께 라틴어역 및 색인목록까지 수록하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광범위한 전집류는 프랑스 학자 미녜(J.P. Migne, +1875)의 ≪라틴 교부집≫ (Patrologia latina)과 ≪그리스 교부집≫(Patrologia graeca)으로서 비록 오기(誤記)된 부분과 오식(誤植)이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작품이다. 그 뒤에 비판본으로 빈과 베를린 그리고 투른홀트에서 동서 교부에 대한 비판본이 계속 연구 출판되었다. (咸世雄)

   [참고문헌] H. Ledercq, DACL 13.22:2513-24 / P. Molinari, I Santi e il loro culto, Rome 1962 / J.M. Senaveratna, Partron Saints, New York 1958 / D. Attwater, comp., A Dictionary of Saints, New York 1938.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