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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선거◆ 인쇄

한자 敎皇選擧
라틴어 electio papalis
영어 papal election

   교황은 추기경단의 콘클라베(conclave)에 의하여 선출된다. 모든 추기경은 임명된 날로부터 교황의 선거권을 갖는다. 그러나 최초의 교황인 성 베드로사도들에 의해 선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교황으로 간택되었다. 그 후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을 선출하는 데 있어서 교회인간이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최선의 선거방법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교황선거라고 하면 오늘날 으레 추기경단을 연상하지만 이 제도가 확정되기까지 1천년의 세월이 걸렸다. 3세기의 자료에 의하면 로마주교, 즉 교황의 선거도 다른 주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지방의 성직자신자들에 의해 선출되었다. 그러나 교황이 로마주교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교회 전체의 머리이며 서구의 총대주교이자 이탈리아의 수석 주교라는 권위로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교황선거에 외부 세력이 간섭을 하게 되었다. 4세기부터 시작된 이러한 간섭은 로마황제 · 로마귀족 · 독일왕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비잔틴 황제들은 교황선거에 승인권을 요구하였고, 6~8세기의 교황들은 그들의 당선을 황제에게 보고하고, 그 승인을 얻어야 했다. 9세기부터 11세기까지는 로마귀족과 독일왕들이 교황을 해임하고 임명하는 등 교황선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독일왕 하인리히 3세는 교황문제로 로마귀족들의 당파싸움이 그 절정에 도달했던 1046년에 3명의 교황을 해임하고, 독일 사람을 새 교황으로 임명하여, 그 후에도 한동안 독일인들이 교황좌를 차지한 때도 있었다. 황제는 말하자면 교황의 상전이었던 것이다.

   황제의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곧 교회 안에 반동이 일어났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속인의 간섭으로부터 교회자유를 지키고 되찾으려는 교회개혁에서 나타났고, 그 일환으로 니콜라오 2세 교황은 마침내 1059년 이후에 교황선거를 추기경 주교들에게 국한시키는 교황선거법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교황선거에서 속인의 간섭을 완전히 배제한 점에서 교황선거사에 있어 전기를 마련한 획기적인 조치였다. 추기경교회가 만든 제도이고 교황이 임명한다. 그래서 추기경은 처음에는 로마에만 약 50명이 있었는데, 교황선거가 추기경단에 맡겨짐으로써 추기경의 지위는 크게 격상(格上)되었다. 교황선거가 추기경단에 유보된 데 이어 1179년 제3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3분의 2의 다수결 선출방식이 결정되었다. 이 결정은 교황 알렉산데르 3세의 교황령 에 의해 성문화되었다. 그러나 3분의 2의 다수결은 그 후 불행히도 선거의 지연과 아울러 교황의 공석(空席) 시기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교황선거의 안정성을 위해 추기경단과 3분의 2의 다수결 외에 또 하나의 요소가 첨가되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바로 콘클라베인 것이다. 이 말은 월래 열쇠로 잠근다는 뜻에서 유폐(幽閉)당한 교황선거장을 말한다. 최초의 콘클라베는 1241년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어쨌든 오늘날의 콘클라베는 그 후에 있는 비테르보(Viterbo)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이 선거는 1268년 말에 시작되어 1271년까지 거의 3년이 걸렸다. 5년째 되던 해에 비테르보의 시당국과 시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좀 더 지혜롭고 신속한 결정을 자극하기 위해 추기경들을 감금하고 그들에게 빵과 물밖에 공급하지 않았다. 새 교황(복자 그레고리오 10세)은 그 방법이 훌륭했음을 인정하고, 1274년 그것을 제도화하였다. 그 규정에 따르면 8일 지나도 새 교황을 선출하지 못하면 그 때부터 선거가 성공되기까지 추기경단은 빵과 포도주와 물 밖에 공급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 후에도 교황선거법은 계속 수정 보완되었지만 핵심의 세 요소, 즉 추기경단 3분의 2의 다수결, 콘클라베를 제외하면 세칙에 불과하다. 식스토 5세는 1586년 추기경수를 70명이 넘지 못하게 하였으나 요한 23세는 그 수를 증가시켰다. 비오 12세는 3분의 2표에 1표를 가하였고(자신의 표를 막기 위해), 요한 23세는 그것을 다시 3분의 2로 환원하였으며 바오로 6세는 다시 비오 12세의 결정으로 환원시켰다.

   콘클라베는 교황이 서거한 후, 15일(필요에 따라 사흘은 더 연장될 수 있음) 안에 열리도록 되어 있다. 오늘날 추기경들이 교황선거를 위해 유폐되는 장소는 바티칸 궁전 안의 시스틴 성당이다. 교황선거에는 전원 추천(만장일치) · 위임 등의 방법도 있으나 보통은 비밀투표로 결정된다. 오전 오후 두 번의 투표로 3분의 2의 다수결이 나올 때까지 콘클라베는 계속된다. 그동안 외부 세계와는 접촉이 일절 차단되고, 촬영이나 녹음이 금지되는 것은 물론이며 선거에 관련된 모든 기록은 교황청 고문서실(古文書室)에 보관된다. 새 교황이 선출되는 동안 베드로 광장에서는 로마시민들이 기쁨의 흰 연기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투표용지를 태운 연기에서 교황선거의 결과가 알려지게 되어 있다. 검은 연기이면 미결이라는 뜻이고, 흰 연기이면 새 교황이 탄생했다는 뜻이다. 새로 선출된 교황이 교황직을 수락하면 그 즉시로 그는 교황이 된다. 이어 새 교황의 이름이 발표되고 추기경들의 순명선서가 있은 후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로마시와 전 세계를 향한 교황의 강복이 내려진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