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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마리애◆ 인쇄

라틴어 Legio Mariae
영어 Legion of Mary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하나로 회원은 적어도 일주일에 2시간 사목활동을 도와 봉사한다. 이 단체는 1921년 9월 7일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시에서 20대의 젊은 여성 15명이 빈민원의 환자 방문 계획을 세우기 위해 모인 데서 시작되었다. 레지오 마리애의 모체가 되었던 이 모임의 명칭이 ‘자비의 모후’이었던 관계로 이 조직은 처음 ‘자비의 모후회’로 불려졌으나 1925년 11월 간부회의에서 옛 로마군대를 본뜬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마리아의 군대)라는 명칭을 채택하였다. 이 단체의 조직명칭도 자립지부(自立支部)를 프레시디움(praesidium), 두 개 이상 지부로 된 지방본부(地方本部)를 쿠리아(curia), 전국본부(全國本部)를 세나투스(senatus), 더블린에 있는 세계본부를 콘칠리움(concilium)이라고 부르는 등 로마군대 용어를 쓰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는 그 후 아일랜드 내에서 점차 조직이 확대되어 1928년부터는 해외로 뻗어 나갔다. 현재 이 단체는 전 세계 1,500개 이상의 교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가 진출한 것은 1953년 5월의 일로서 광주교구장 헨리(Henry) 주교 지도 아래 목포시 산정동 본당에 ‘치명자의 모후’와 ‘평화의 모후’ 프레시디움, 경동본당에 ‘죄인의 의탁’ 프레시디움이 각각 처음 탄생하였다. 이후 이 운동은 전국 각 본당으로 급속히 확장되어 나갔다. 서울에는 1955년 8월, 명수대(현 흑석동) 본당에 ‘평화의 모후’ 프레시디움이 설립됨으로써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초대 지도신부는 이경재(李庚宰, 알렉산데르) 신부였고, 단장은 신태민(申泰旼, 토마스) 형제였다. 이어 1957년 1월 29일에는 서울에 생겨난 기존 프레시디움을 모아 혜화동 본당에 ‘상지의 좌’ 쿠리아가 설립되고(지도신부 : 정원진 신부, 단장 : 이해남), 1959년 3월 15일에는 명수대 본당에 ‘평화의 모후’ 쿠리아가 설립되어 점차 조직을 굳혀 나갔다. 당시 프레시디움은 모두 11개에 달했고 행동단원이 128명, 협조단원이 658명이었다. 이리하여 1960년 3월 30일에는 서울 세나투스의 전신인 서울 무염시태 코미시움이 설립되었고 1974년 9월 25일 레지아로 승격을 거쳐 1979년 12월 23일 마침내 서울 대교구에서 국가 단위 평의회인 세나투스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레지오 마리애 운동이 정착, 발전되기까지에는 많은 논란과 문제점도 적지 않았는데 이의 해결에는 노기남(盧基南) 대주교헨리 대주교의 적극적인 지도 격려가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노 대주교는 매월 코미시움 월례회의에 참석하여 직접 훈화도 하고 레지오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세나투스 발족 당시의 조직현황을 보면 5개 코미시움, 45개 쿠리아, 705개 프레시디움, 1만 598명의 행동단원, 1만 7,478명의 협조단원이었고 전국 총 222개 본당 중 187개 본당에 레지오가 설립되었다. 서울 대교구만도 1개 코미시움, 25개 쿠리아, 426개 프레시디움, 6,077명의 행동단원이 있고 협조단원은 1만 1,787명, 100개 본당 중 97개 본당이 조직을 완료하였다. 그 후 1980년 10월에는 지역적 여건을 고려하여 청주, 대전이 서울로 흡수됨에 따라 세나투스로 승격된 서울 대교구 레지오 마리애는 7개 교구를 관할하게 되고 세포조직이라 할 수 있는 프레시디움은 계속 확장되어 갔다.

   그 동안 주요 행사로는 1980년 11월 22일의 제1차 민족복음화대회와 1981년 5월 5일에 열린 제2차 민족복음화대회를 들 수가 있는데 1차 대회는 레지오 서울 도입 25주년을 겸해 서울에서, 2차 대회는 레지오 마리애 창설 60주년과 수원 레지아 승격을 기념해 수원에서 각각 열려 단원을 모두가 민족복음화의 기수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1차에는 1,500여 단원이, 2차에는 3만 5,000여 단원들이 모인 대회에서 서울 세나투스 총재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강론을 통해 “참다운 민족의 복음화신자수와 성당수의 증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이 많을 때 가능하다”고 강조하였다.

   현재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전국적으로 행동단원 4만 3,303명, 협조단원 5만 1,738명, 계 9만 5,041명의 단원을 가지고 있으며 서울만도 5만 7,955명(행동단원 2만 4,574명, 협조단원 3만 3,381명)의 단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아시아 협의체 설립문제, 각국과의 교류 협력문제, 해외교포 사목 협력방안 등도 앞으로의 과제로서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편, 서울대교구 교구總覽, 가톨릭出版社, 1984.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