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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톨릭음악◆ 인쇄

한자 韓國~音樂

   한국에 있어서의 가톨릭 성가(聖歌)는 1784년 명례방(明禮坊)에서 천주교 집회가 시작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의 가톨릭적인 성가, 즉 세계 보편적인 교회음악인 그레고리오 성가와 그 밖의 가톨릭 성가들은 1886년의 한불조약(韓佛條約) 이후 어느 정도 종교의 자유가 주어진 뒤에 시작되었다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회의(1962~1965년) 이후 모국어(母國語)로서의 전례(典禮)가 가능해진 다음 한국 내에 있어서의 가톨릭 성가도 다양해지기 시작했고, 오늘날에는 통일된 성가사용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1. 박해시대에 있어서의 가톨릭 성가 : 1784년 창설된 한국 천주교회는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曺摘發事件)을 시작으로 하여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까지 크고 작은 많은 박해를 겪으면서 대외적인 발전을 할 수 없었고, 따라서 교회음악도 대외적인 발전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박해 속에서도 계속된 신앙생활은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천주가사(天主歌辭)를 만들어 냈다. 이를 천주교성가가사(天主敎聖歌歌詞) 혹은 천주찬가(天主讚歌)라고도 한다. 이 천주가사는 조선조 후기의 대중가사인, 주로 4 · 4조 형식으로 된 천주교 신앙가사로서 엄밀히 말하자면 가톨릭 성가라고 할 수는 없다. 아울러 교회의 성음악은,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거나 일치를 초래하며, 혹은 거룩한 의식을 더 성대하게 감싸 주면서, 전례행위와 밀접히 결합하면 할수록 더욱 거룩해질 것(전례헌장 제6장 112항)이라는 것과 같이 천주가사는 결코 전례적인 목적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교화(敎化)와 수도(修道)의 목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가톨릭 성가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거나 일치를 초래한다는 측면을 갖고 있으므로 가톨릭 성가의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할 수도 없다. 천주가사의 시작 연도에 대해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1777년 ‘천진암 · 주어사강학회’(天眞庵 · 走魚寺講學會)에서부터 시작되어 1930년 박제원(朴齊元)의 <소경자판가>로써 천주가사의 최종연대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천주가사 시대의 초기에는 주로 호교론적(護敎論的)이고 윤리적인 내용을 포함한 기초적인 교리를 그 가사로 했고, 비교적 박해가 완화되어 목판본 신심서적들이 발간된 1850년대 후반부터 1860년대 초반까지는 주로 성사(聖事)교육을 중심으로 한 성사가(聖事歌)와 신심수도를 중심으로 한 교훈가(敎訓歌)들이 많았고, 1876년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 이후에는 창가조(唱歌調)의 영향을 다소 받으면서 개인 영성(靈性)이 심화된 자탄가(自歎歌) 등이 상당수를 이루면서 <경향신문>(1906년)과 그의 부록인 <보감>(寶鑑, 1909년)을 통해서 많이 발표되었다. 이들 천주가사 가사들의 중요한 특징들은, 모두 각 시대에 맞춰 그 시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교리신심서적의 내용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절대 생소한 내용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영향을 준 서적은 ≪사후묵상≫(死後默想)과 ≪성교절요≫(聖敎切要)이다. 당시 신자들의 영성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후묵상≫은 머리말, 사심판(私審判), 지옥(地獄), 연옥(煉獄), 천당(天堂), 공심판(公審判)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 내용으로부터 선종가(善終歌), 사심판가, 지옥가, 천당가, 공심판가가 이루어졌고, ≪성교절요≫로부터 신덕가(信德歌), 제경가(諸經歌), 선행가(善行歌) 등이 이루어졌다.

   현재 전해 내려오고 있는 천주가사는 모두 186종에 이르고 있으나 전해져 온 가사 내용이 모두 원문과 같다고 볼 수는 없는데 이는 구전(口傳)에서 발생되는 잘못과 필사전승(筆寫傳承)에서 발생되는 잘못, 자료보관의 잘못 등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전해져 온 가사의 작가 중 최양업(崔良業) 신부가 가장 많은 곡을 만들었다고 하나 많은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여려 문제점들 속에서도 천주가사박해시대에 있어서의 천주교회를 전승해 온 한국천주교회의 맥인 동시에 한국인의 신앙을 일치시킨 한국 가톨릭 성가의 모태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

   2. 성가집의 발간 시작 : 일반 신도들이 모두 노래할 수 있는 가톨릭성가집의 발간은 우선 오선악보(五線樂譜)를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음악교육과 성가집을 발간할 수 있는 인쇄시설이 가능했어야 하였다. 결국 이들 조건이 가능해질 수 있는 때는 1920년대로서 1922년 해주(海州)에서 프린트로 발간된 성가집이 있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고, 1924년 뮈텔(Mutel, 한국명 閔德孝) 주교의 감준으로 종현(鐘峴, 현 명동) 성서인쇄소에서 발간된 ≪죠션어셩가집≫이 그 처음이다. 그런데 이 ≪죠션어셩가집≫이 발간되기 훨씬 전인 1911년부터 용산신학교에서는 사선(四線)악보로 된 그레고리오 성가의 성극(聖劇)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1911년에는 라틴어로 프린트한 인쇄물로 성극을 했고, 1912년에는 사선악보에 우리말가사로 된 악보를 프린트하여 성극을 하였다. 그리고 1920년에는 사선악보와 라틴어 가사에 합창으로 된 악보를 프린트하여 김대건(金大建) 신부 성극을 하였다.

   그러나 이들 그레고리오 성가가 가능했던 것은 1887년 용산신학교가 설립되어 전례 음악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며, 신학생들에게 한정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가톨릭 성가집의 발간은 1924년의 ≪죠션어셩가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성가집은 12㎝×18㎝ 크기의 책으로서 대림절, 성탄절, 사순절(四旬節), 부활절전례시기별 성가성모, 성심, 성체 등 각 주제별 성가 등 모두 68곡이 수록되어있다. 오선악보와 1절 가사는 손으로 그리고, 쓴 것이며, 가사만 되어 있는 2, 3, 4절은 5호 활자 크기의 활판인쇄로 되어 있다. 이 성가집의 68곡 중 12곡의 가사는 천주가사의 <사향가>와 <삼계대의>에서 찾아볼 수 있고, 멜로디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1896년 9월 14일 프랑스어로 처음 출판된 ≪청년성가≫(Cantiques de la Jeunesse)와 1911년 역시 프랑스어로 출판된 ≪성가집≫(Recueil de Cantique), 1927년 홍콩에서 발행된 ≪시편과 노래≫(Hymni et Cantiones) 등에서 16곡의 같은 곡을 찾을 수 있다. 당시 발행인이 프랑스 선교사들이었고 그 밖의 곡도 8분의 6 혹은 4분의 3박자의 곡으로서 프랑스 성가와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거의 프랑스성가의 멜로디를 사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1932년에는 재판이 나왔지만 내용은 거의 같고 순서만 바뀌어 있다.

   한편 1911년 설정된 대구교구에서는 1928년 대구 남산동 성당에서 ≪공교셩가집≫(公敎聖歌集)이라는 프린트로 된 성가집을 처음 발간하였다. 1927년 12월 성탄 행사의 하나로 당시 해성(海星) 보통학교 학생들이 그레고리오 미사곡과 우리말 성탄성가를 하기 위해 프린트한 것을 1928년 남산동 주임 델랑드(Deslandes, 한국명 南大榮) 신부가 책으로 만들었다. 이 성가집에는 서울에서 발행한 ≪죠션어셩가집≫에서 25곡을 수록했고, 그레고리오 성가라틴어 발음을 우리말로 옮긴 것과 우리말로 번역한 그레고리오 성가도 수록하였다. 그 뒤 1936년 대구 남산동 성당에서 인쇄한 ≪조선어성가집≫이 간행되었는데 총 80곡으로서 서울에서 발간된 성가집에서 16곡이 수록되어 있고, 몇몇 곡은 서정도(徐廷道) 신부가 작사. 작곡 · 편곡한 곡도 있고, 그 외에 아직 출처를 알 수 없는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1938년에 재판이 되었지만 내용은 동일하다. 같은 해 원산교구의 덕원(德源)신학교에서도 가톨릭 성가집이 원산교구사우어(Bonifatius Sauer) 주교의 감준으로 발간되었는데 197곡의 우리말로 된 성가와 그레고리오 성가가 수록되어 있다. 197곡 중 우리말로 된 성가는 주로 독일성가책인 ≪Orgelbuch zum Cantate≫(1884), ≪Orgelbegleitung Katholischen Gesangbuch≫(1904), ≪Orgelbegleitung zu den Melodien des Gesangbuches≫(1911) 등에서 번역된 곡으로 그 출처가 확인된 곡은 45곡에 지나지 않으며, 독일성가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공헌을 한 사람은 당시 원산 해성보통학교 교장이던 오병주로서 독일 민요의 번역도 많이 했었다. 이와 같은 3교구에서 간행된 초기의 성가집들은 모두 프랑스 계통의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독일 계통의 성 베네딕토수도회 신부들이 편집한 것들로서 각각 프랑스독일성가곡들을 주로 수록하였고, 서울교구에서는 천주가사의 가사내용이, 대구교구에서는 서정도 신부의 소수의 작곡 편곡만이 첨부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전례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는 주로 신학생들과 수녀들에 의해 불려졌는데 이와 같이 한국말로 된 가톨릭 성가가 정착되기도 전에 그레고리오 성가가 불려졌던 것은, 당시 교황청에서 가톨릭의 모든 전례에 그레고리오 성가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그 외에 지방 고유성가를 사용토록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서정도 신부의 경우 한국사람으로서는 처음 오선악보에 의한 곡을 작곡한 사람으로서 홍난파(洪蘭坡)의 1920년 작품인 <봉선화>보다 전에 작곡된 곡이 대구에 있는 성 유스티노신학교에서 불려진 것을 알 수 있다.

   3. 광복 이후의 가톨릭 성가집 : 오르간 반주용과 혼성 4성부의 합창곡으로 된 ≪가톨릭성가집≫이 1948년과 1951년 서울과 대구에서 각각 발간되었다. 물론 전혀 새로운 성가집은 아니었지만 오르간반주용과 혼성 4성부 합창곡으로 되어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1948년 서울에서 발간된 성가집에는 그레고리오 성가에도 오르간 4성 반주가 첨부되어 있으며, 이문근(李文根)신부의 자작곡인 <복자찬가>가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1951년 대구에서 발간된 성가집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그레고리오 성가는 아직 4선 악보로 되어 있었다. 특히 서울에서 발간된 ≪가톨릭성가집≫은 한국 가톨릭 성가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정선가톨릭성가집≫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데, 이 ≪정선가톨릭성가집≫은 1956년에 전국적으로 구성된 ‘통일가톨릭성가집발간위원회’에서 결의되어 발간된 ‘전국통일가톨릭성가집’으로서 그 역사적인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1948년 서울에서 발간된 ≪가톨릭성가집≫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므로 ≪가톨릭성가집≫을 엮은 이문근 신부의 업적은 다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정선가톨릭성가집≫에는 라틴어발음이 한국말로 옮겨지고 오선악보로 표기된 전례용 그레고리오 성가곡 외에 128곡의 한국말 성가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신원식(申元植), 최민순(崔玟順) 신부가 작사하고 이문근 신부가 작곡한 <복자찬가>, <데레사의 노래>, <복자 안드레아신부의 노래>, <혼배미사곡> 등 한국 특유의 곡들이 첨부되어 있다. 그 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각국의 모국어로 가톨릭 전례를 행할 수 있게 되고, 1973년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에서 ‘성가의 대중화 보급’을 추진하자 각 수도원, 성당, 신학교 등에서 고유한 성가집들을 발간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1975년 3월 개신교의 찬송가, 팝(Pop), 재즈(Zass), 가스펠(Gospel), 흑인영가 등이 수록된 ≪가톨릭공동체의 성가집≫이 발간되었고, 1975년 5월 ≪정선가톨릭성가집≫과 가톨릭 공동체성가집에서 선곡된 곡 외에 새로운 곡들을 수록한 ≪새전례가톨릭성가집≫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1975년 11월 이문근 신부가 작곡한 3가지 형태의 창미사곡이 ≪정선가톨릭성가집≫에 첨부되었다. 이와 같이 1962년 이후 한국 내에서는 한국 가톨릭 성가토착화를 위해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등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 반면 가톨릭 성가의 고유성과 예술성을 상실해 가는 듯하다. 그리고 좀 늦은 듯하지만 1980년 5월 이후 현재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에서는 ‘성음악분과위원회’를 설치하여 가톨릭 성가의 전통성 보존과 한국 가톨릭 성가토착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車仁鉉)

   [참고문헌] 그레고리오 성가 이론,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서울 1981 / 이문근. 교회와 음악, 가톨릭청년 1956. 4~1958. 4 / 경향잡지, 제330 · 332호, 1915; 제348 · 358 · 362호, 1916; 제 551호, 1924; 제660호, 1929 / 오숙영, 천주교성가가사고(天主敎聖歌歌詞考),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석사학위청구논문, 1971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9 / 가톨릭시보, 제555 · 562 · 579호, 1967 / 교회사연구, 제3집, 한국교회사연구소, 서울 1981.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