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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메트◆ 인쇄

원어명 Mahomet, Mohammed(Muhammad)
[관련단어] 이슬람교 

   Mahomet, Mohammed(Muhammad)(570?-632). 이슬람교(Islam)의 창시자이며 아랍 제국의 창건자. ‘마호메트’란 ‘찬양받는 자’, ‘뛰어난 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인류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중요성을 지닌 종교적 · 사회적 · 문화적 발전을 주도한 그의 생애는 대략 3기로 나눌 수 있다. ① 예언자의 소명을 받기까지의 약 40년간에 걸친 초기의 종교적 활동, ② 610년 아라비아의 예언자로서 선언하고 순례자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하여, 622년 7월 15일 메카에서의 박해가 심해져서 메디나로 떠난 ‘히즈라’(hijrah) 즉 ‘이주’ 시대, ③ 622년부터 그가 숨을 거둔 632년 사이에 메디나에서 이슬람교를 통하여 종교와 국가를 창시하는데 성공한 시대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마호메트는 메카에서 가난한 과부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명족 쿠라이시의 출신이며 할아버지는 하심(Hashim)족의 우두머리였으나 메카 정계의 지도적인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호메트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할아버지 압드 알 무탈립의 보호 아래 있다가, 여덟 살 때는 할아버지도 여의어서, 삼촌 아부 탈립의 돌봄을 받으며 시리아 등지로 삼촌과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대상(隊商)의 심부름꾼이므로 생활정도도 낮았고, 양과 염소를 키우며 그는 스스로 “하느님은 목자 가운데서 예언자를 불렀다. 모세와 다윗을 보라”고 하였다. 595년께 25세인 그는 아사드족의 카디자(Khadijah)라는 약 40세 난 부자 과부의 상업을 책임맡았는데, 이 때 청혼을 받고 결혼하였다. 아들 셋, 딸 넷 모두 7남매를 낳았으나 아들은 어려서 죽었으며, 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이 마호메트의 사촌 알리의 부인인 파티마였다. 마호메트가 알리를 양자로 삼았으므로 알리와 파티마가 낳은 아들들이 마호메트의 후계자가 되었다.

   마호메트는 초년기에 겪은 가난과 고아 신세나 다름없던 불행 탓인지 때때로 메카 근처에 있는 한 언덕의 동굴 안에서 밤을 지새는 습관을 가진 사려 깊고 고결한 사람이었다. 상업중심지 메카의 거상들이 대상에 의한 교역 거래의 독점권을 획득하고 번영하고 있지만, 상인들은 개인적인 이익 추구로 쏠려,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자신들의 전통적인 의무에 대하여는 소홀하였다. 마호메트는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명상하면서, 610년 그의 나이 40세 때, 히라산 동굴에서 알라(Allah)의 신탁에 접하여, 뒤에 천사 가브리엘과 동일시되는 위엄 있는 존재의 환상을 보았으며, “너는 신의 사자(rasul Allah)이다”라는 음성을 들었다. 이때부터 그는 예언자되기를 결심하여, 알라 중심의 유일신교인 이슬람교를 창립하고, 공공연히 설교를 시작하였으며, 추종자들은 ‘무슬림’(Muslimun) 즉 모슬렘(Moslems)이라고 호칭되었다. 알라는 전능자, 창조주, 심판자이며 이슬람이란 신에 대한 ‘복종’의 뜻이다.

   교도가 불어나고 우상 숭배를 공격하여 반대파와 토론하며 기적도 행하게 되는 동안에 박해가 심해져서 약 80명이 아비시니아로 피난하였고, 그도 622년 메디나로 이주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히즈라’인데, 이 이주가 일어났던 아랍력의 첫날, 즉 622년 7월 16일부터 이슬람교기원(AH, Anno Hegirae)이 시작되었다.

   메디나에서의 정착 기반을 다지며, 마호메트 자신은 623년에 시리아로 가는 메카 대상들을 상대로 세 번에 걸친 ‘약탈’(ghazawat)을 주도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듬해 그는 자신이 예언자임을 인정받기 위하여 유태인들에게 양보하던 태도를 버린 뒤 “유태인들과의 관계를 끊는다”는 결정을 내리고 이슬람교의 아랍적인 성격을 특별히 주장하였다. 625년 메카의 세력을 강력하게 활성화시키고 있던 아부 수피안이 메디나의 오아시스로 쳐들어오자 마호메트와 그의 무슬림들은 이를 극복해 내는데 힘썼다. 627년에도 수피안이 이끄는 1만 명의 동맹군은 사막에서 하룻밤의 비바람을 만나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하였다.

   이러는 동안에 마호메트는 ‘메디나의 헌장’으로 알려져 보존되어 오는 한 문서에 나타난 합의 조항에 따르면, 여덟 아랍씨족들과 메카로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을 합친 아홉 파의 집단들 사이에 전통적인 아랍혈통들의 한 동맹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이슬람교단의 예언자일 뿐만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긴 안목을 가진 지도자이며 군사 사령탑이기도 하였다. 자신의 국가의 확장을 위해 유태교그리스도교, 기타 종족을 정복하고, 628년에는 메카로 진격하여 카바와 그 인근 몇몇 신당들 안에 있는 다신교(多神敎)의 우상들을 무너뜨렸다.

   추종자들 가운데 가장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 그는 부유한 메카인들로부터 대부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아라비아에서 군사적으로 막강해진 그는 동맹 맺기를 원하는 경우의 조건으로 무슬림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내세워 아라비아 전역의 통일을 이룩하고, 632년 3월(이슬람曆 10년) 메카신전을 순례하고 나서, 메디나에 돌아와 그해 6월 8일 열병으로 숨졌다. 그가 신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이라고 믿었던 제자들과 관련되는 사건들은 650년째에 수집·기록되어 이슬람교경전인 ‘코란’(Koran)에 남겨졌다. (⇒) 이슬람교

   [참고문헌] R. Bell, The Origin of Islam in its christian Environment, 1926 / A.J. Wensinck, Mohammad en de Joden te Modina, Leiden 1928 / W. Montgomery Watt, Muhammad at Mecca, New York 1953 / M. Ibn Ishaq, Sirat Rasul Allah(The Life of Muhammad), tr. A. Guillaume, London 1955 / W.M. Watt, Muhammad at medina, New York 1956 / M. Hamidulah, Le Prophete de l'Islam, 2권, Paris 1959 / New Catholic Encyclopedia, McGraw-Hill Book Company, 1969 / John Bagol Glubb, The Life and Times of Muhammad, 1970.
출처 : [가톨릭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