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4. 준비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2-26 조회수570 추천수8 반대(0) 신고
 
 

 

준 비

   바오로 사도가 1차 예루살렘 방문 이후,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기까지는 ‘십사 년’이 걸렸다(갈라 1,18-2,1). 먼저도 말했듯이 그동안 사도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재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십사 년’이란 기간이 언급되는 곳이 또 한 곳 있어 사도의 행적을 추정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은 열네 해 전에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졌던 일이 있습니다”(2코린 12,2). 사도는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고 있지만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자신의 체험을 조심스럽게 들려주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이 서간을 쓴 연대(대략 54년 경)에서 십사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초기 선교활동에서 장벽을 느끼고 일선에서 물러선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임을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다마스쿠스 탈출 사건(39년 이전)을 언급한 바로 아래 대목에 주님께서 환시와 계시를 보여주셨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가 그저 낙담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내밀한 친교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오랫동안 사도는 여기에도(유다교인들의 모임) 저기에도(그리스도교인 공동체)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국외자의 서러움을 톡톡히 맛보았을 것이다.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얻은 첫아들의 이름에 ‘게르솜’(이방인)이라는 나그네의 설움을 새겨 넣었듯이, 바오로 사도는 광야에 서 있는 것 같은 소외감과 고독을 뼛속 깊이 새겨 넣었으리라.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모세의 광야살이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낼 준비과정이었듯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복음을 선포할 준비를 마치셨듯이, 바오로 사도도 고독한 내면의 광야에서 기도에 열중하며 이후의 과정을 충실히 준비했던 것이다.

 

   마침내 바르나바가 기도로 재무장한 바오로를 안티오키아 교회로 이끌기 위해 찾아온다. 거기에서 사도는 일 년 동안 공동체 생활을 익히고 교사의 일을 맡게 된다(사도 11,25-26). 드디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그의 설 자리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 사도는 이제 혼자 일하는 방랑 선교사가 아니라,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된, 안티오키아 교회에 속한 일꾼이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혼자 일하시지 않고 제자들과 공동체를 이뤄 일하신 것처럼, 사도 역시 교회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일하는 것을 배우는 준비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기도에 충실하고 교회 공동체에 밀접하게 연결되기까지의 십여 년, 이런 오래고 철저한 준비 과정이 있었기에 사도의 선교가 가는 곳마다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명감에 넘쳐 혼자 앞으로 뛰쳐나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하느님과 함께 동행하며, 공동체와 같이 일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두르지 않고 준비과정을 받아들이는, 인내와 기다림의 자세가 필요하다. 혼자 할 줄 안다고 교만하지 않고 더불어 함께 하는 겸손이 참으로 필요하다.

 

 

푸생作 ┖바오로의 환시┖

 

이인옥(체칠리아) 말씀봉사자

 

 

-사순 제 1주일, 수원교구 주보 3면, 기획특집, '바오로 사도에게서 배운다' 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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