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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28 조회수879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3월 28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The Christ will not come from Galilee, will he?
(Jn.7.41)
 
 
제1독서 예레미야 11,18-20
복음 요한 7,40-53
 
 
이제 몇 주만 지나면 우리 신앙인들에게 가장 큰 축제인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부활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위해 모두들 부활 판공성사를 봅니다. 그리고 모든 신부님들께서는 부활을 모두 깨끗이 맞이할 수 있도록 열심히 고해성사를 주시고 계시지요.

특별히 많은 교우들이 빠르고 편하게 판공성사를 볼 수 있도록, 저의 본당이 소속되어 있는 지구에서는 지구 내의 모든 신부님들이 모여서 본당을 돌아다니면서 성사를 줍니다. 그런데 며칠 전 어느 본당에서 고해성사를 주다가 있었던 일입니다. 오후 시간에 성사를 주기 위해서 저의 자리인 지하 교리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제가 있는 곳으로 신자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하다. 나한테 성사 보시는 것이 싫어서 그런가?’

결국 몇 사람 주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아서 밖으로 나왔지요. 그런데 성당 안에 마련된 고해소에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지요. 왜 지하 교리실에 마련된 고해소에 보내지 않았냐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씀하세요.

“신부님, 오후 시간에는 주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신데 무릎이 아프셔서 지하에 내려갈 수가 없다고 하네요.”

이제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하 교리실에 마련된 고해소에도 꽤 많은 신자들이 오시더군요. 왜냐하면 성당의 고해소보다 줄이 짧기 때문이지요. 즉, 젊은 사람들이 저녁 시간에는 많이 오셨는데, 빨리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서 줄이 짧은 지하 고해소로 오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세 드신 분들은 편한 것을 찾으시고, 젊은 사람들은 빠른 것을 찾더군요. 그런데 문득 너무나 자기 좋은 것만을 찾는 우리들이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자기 좋은 것만을 찾다보니, 어떤 것이든 자기의 기준과 판단에 맞추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어떻습니까? 그들 역시 자기 기준과 판단에 모든 것을 맞추라고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심지어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에 대한 저주까지도 감히 퍼붓습니다.

우리도 나에게만 기준을 맞추고 내 판단만 옳다고 주장한다면, 과거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을 향해서 칼을 든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와 같은 잘못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이렇게 강압의 칼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대신 사랑의 손으로 따뜻하게 품에 안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사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고통으로 변할 가능성이 없는 즐거움은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다. 다칠까 봐 방어막을 치는 사람은 기쁨을 맛볼 수 없기 때문이다.(몽테뉴)




교만과 겸손('좋은 글' 중에서)

광주에서의 일입니다. 말로는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말빨이 아주 센 초로의 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똑똑한 며느리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 며느리는 이제 죽었다’라며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시어머니가 조용했습니다. 그럴 분이 아닌데 이상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올 때 시어머니는 벼르고 별렀습니다. 며느리를 처음에 꽉 잡아 놓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집살이를 시켰습니다. 생으로 트집을 잡고 일부러 모욕도 주었습니다. 그러나 며느리는 전혀 잡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며느리는 그때마다 시어머니의 발밑으로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시어머니가 느닷없이 “친정에서 그런 것도 안 배워 왔냐?”하고 트집을 잡았지만 며느리는 공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친정에서 배워 온다고 했어도 시집와서 어머니께 배우는 것이 더 많아요. 모르는 것은 자꾸 나무라시고 가르쳐 주세요.”하고 머리를 조아리니 시어머니는 할 말이 없습니다.

또 한 번은 “그런 것도 모르면서 대학 나왔다고 하느냐?”라고 시어머니는 공연히 며느리에게 모욕을 줬습니다. 그렇지만 며느리는 도리어 웃으며 “요즘 대학 나왔다고 해봐야 옛날 초등학교 나온 것만도 못해요, 어머니.”

매사에 이런 식이니 시어머니가 아무리 찔러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무슨 말대꾸라도 해야 큰소리를 치며 나무라겠는데 이건 어떻게 된 것인지 뭐라고 한마디 하면 그저 시어머니 발밑으로 기어 들어가니 불안하고 피곤한 것은 오히려 시어머니 쪽이었습니다.

사람이 그렇습니다. 저쪽에서 내려가면 이쪽에서 불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쪽에서 내려가면 반대로 저쪽에서 불안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먼저 내려가는 사람이 결국 이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먼저 올라가려고 하니까 서로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

좌우간 나중에 시어머니가 그랬답니다. “너에게 졌으니 집안 모든 일은 네가 알아서 해라.” 시어머니는 권위와 힘으로 며느리를 잡으려고 했지만 며느리가 겸손으로 내려가니 아무리 어른이라해도 겸손에는 이길 수 없었습니다.

내려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죽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겸손보다 더 큰 덕은 없습니다. 내려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올라간 것입니다. 아니, 내려가는 것이 바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려갈 수 있는 마음은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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