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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복음서의 키워드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3-31 조회수777 추천수7 반대(0) 신고
 
 
 

요한복음서의 키워드 - 윤경재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당신이 누구요?”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요한 8,21-30)

 

 우리가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감상할 때 ‘다 다 다 다-’ 하고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네 음표의 소리로 제1주제를 삼아 전곡을 떠올리듯 요한복음서에서도 제1주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서의 비밀을 이해하는 이 키워드를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복음서 저자의 의도를 올바로 이해하기 쉽겠습니다.

  그 제1주제는 바로 8,24절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에 나오는 어구 ‘에고 에이미(ego eimi)’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I am’입니다.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부득이하게 그리스어 본문을 조금 언급해야 합니다. “ean gar me pisteusete hoti ego eimi ” 여기서 hoti 는 접속사입니다. 즉 내가 ‘ego eimi’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ego eimi’는 탈출기 3,14절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질문에 하느님께서 “나는 '있는 나'다.” 라고 대답하신 구절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어구입니다. 즉 하느님의 이름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요한복음서 안에 이 ‘ego eimi’는 마치 관용어처럼 쓰였습니다. ‘~이다’라는 빈사가 연결된 것까지 세면 약 28회나 나옵니다. 예를 들면 18장에서 체포당하실 때 성전 경비병들의 질문에 “나다.”라고 3회나 반복해서 언급하셨습니다. 또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할 때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4,26)라는 구절에서도 썼습니다. 6,20절 물위를 걸으실 때도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당신의 신적 정체성을 밝히셨습니다.

  요한복음서는 처음 서문에서부터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장엄하게 밝히고 시작합니다. 네 복음서 중에서 요한만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고 직접 언표합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정체를 비밀로 하라고 자주 요청하였지만, 요한복음서는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1,18)라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라고 당당히 밝힙니다. 끝 부분에 가서는 토마스의 입을 통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0,28)이라고 결론처럼 재차 언급합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외아들이자 하느님이시라고 믿으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면 생명을 얻을 것이고 만약 믿지 않으면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예수님의 입으로 선언하셨다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ego eimi’임을 믿고 고백하면 아브라함 전부터 계셨다는 말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빛이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시라는 선언도 확연하게 보이게 됩니다. 더는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됩니다. 또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는 6,51절 말씀이 우리의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를 것입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느님을 뵈었듯이 성체성사 안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모세는 “나는 '있는 나'다.”라는 말씀을 듣고는 다시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선언을 듣고도 “당신이 누구요?”라고 재차 반문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이신 분을 십자가에 매달아 올렸습니다. 전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빠진 죄는 “내가 나다.”라는 한 소식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였다면 자신 안에서 사시는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자기 선언은 곧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선언이었습니다.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영원히 죽지 않는 성령이 사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연줄이 끊어지면 바람에 날려 버려지는 연처럼 하느님과 연결이 끊어집니다. 결국 자기 소외에 빠져 스스로 심판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죄’가 자신을 죽이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빙산이 겉으로 드러난 부분과 감추어진 부분으로 이루어졌고 감추어진 부분이 바다 속에서 하나로 연결되듯이 개개인도 아버지와 연결된 생명의 성령을 지녔으며 이를 믿으면 영원히 산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삶의 모습이 어떠하든 간에 주님의 은총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들어 올리신 분과 연결되어 있음을 믿고, 성체성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보면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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