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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수사님의 성소 이야기]나를 이끄신 하느님 4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1 조회수835 추천수4 반대(0) 신고
 

[요셉 수사님의 성소 이야기]나를 이끄신 하느님 4

                       

   그들 중 한두 명은 나한테 <오빠> 라고 호칭하며, 친근하고 상냥하게 대하며 접근했는데, 나는 그들에게 아무런 특별한 감정을 갖지 못해 모든 자매들에게 똑같이 대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두고 어떤 자매는 드러나게 내게 불평을 터뜨리곤 했습니다.


   한편 수녀님들은 내 나이 또래의 젊은 분들에서부터 삼십 대 사십 대, 오십 대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었는데, 모두가 친절하고 따뜻하게 주님 안에서 형제적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대해 주었습니다. 그 분들 중의 몇몇은 나를 두고 <돈암동 수사님> 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직 내 입에서 수도원에 가겠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내가 풍기는 분위기에서 수도자 냄새가 난다면서, 나의 소속 본당에 수사님이라는 호칭을 붙여 준 것입니다.


   또한 내가 친하게 지내던 어떤 회 수사님들, 그들 대부분이 내 나이 또래라서 우리는 친구처럼 서로 그냥 이름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내가 그들의 수도원에 몇 번 따라가서 놀다 왔을 뿐인데, 그들은 마치 내가 자기네 수도회의 지원자라도 되는 듯이 나에게 종종 “언제 보따리 싸서 들어 올 거냐?”고 묻곤 하였는데, 그때 마다 “나는 수도원에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다.” 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1학년 2학기가 끝나고 기나긴 겨울방학에 들어갔습니다.


   겨울방학 중에 심한 독감을 앓은 끝에 기관지에 염증이 생겨  미아리에 있는 큰 병원에 통원 치료를 하러 갔다가, 거기서 같은 반 수녀님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수녀님의 말이 몇 주일 후 즉, 2월 어느 날 자기와 동료 수녀 8명이 첫서원을 하게 되었다고 시간이 있으면 구경하러 와도 된다고 해서, 나는 수녀원을 구경할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여, 그날 꼭 가서 예식에 참례하고 축하해 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그날이 되어 나는 일찌감치 출발하여, 반 시간 정도 걸어서 정릉에 있는 그 수녀원에 도착했습니다. 처음으로 들어가 보는 커다란 수녀원의 엄숙하고 거룩하고 정갈한 분위기에 압도 되었지만, 예식에 참석하러 온 많은 신자들로 인하여 무슨 큰 축제가 열린 분위기였습니다.


   드디어 예정된 시간이 되어 첫서원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꽃 같은 동정녀들이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너무나 감동하여 숨이 멎는 듯 했습니다.


   예식이 끝나고, 서원자들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축하하기 위하여 연회장으로 가는 것을 보고, 나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는데, 서원자 대부분이 내가 잘 아는 같은 반의 수녀님들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한테도 축하인사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것은 예식의 분위기에 너무 압도되어 있었고, 또 타고난 내성적인 성격 탓으로 거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혼자서 우물쭈물 하기가 싫어서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그 감동은 계속 식지 않아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러다가 결국 일어나 앉아 밤을 세워가며 가르멜 수도원의 성소 담당자에게 내가 느끼는 성소에 대해서 몇 장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편지를 보내려고 하였지만, 주소도 전화번호도 알지 못해서, 나는 수도원의 문 앞에 가서 문패를 보고 주소를 적어가지고, 우체국에 가서 등기우편으로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가르멜 수도원의 성소 담당 신부님한테서 그 편지에 대한 답장이 왔는데, 언제든지 시간 있는 대로 와서 면담을 하자고 했습니다. 나는 그날 바로 전화를 걸어 시간을 약속하고 다음 날 수도원을 정식으로 방문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번 그 수도원에 가 본 적은 있지만, 그냥 학교의 친구처럼 그 청원자 수사님을 만나러 갔었기에 아직까지 수도원의 다른 분들과는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는데, 이제 막상 자신의 성소를 상담하기 위해 책임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적지 않게 긴장이 되었습니다.


   성소 담당 신부님은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입회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고 하시면서 수도생활에 대한 여러 가지를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에 신부님은 다른 신부님께 나를 소개시켜 주셨는데, 그분은 내가 다니는 신학원에 강의를 하러 오시는 분이라, 나로서는 잘 아는 분이셨지만, 그분은 당신의 수강생인 나를 개별적으로 알고 계시지 못하는 사이였습니다.


   그분은 내가 당신께 먼저 인사드리지 않은 것에 대해 약간 섭섭해 하시는 눈치였는데, 그분의 외적 분위기나 말씀하시는 모습이 엄하고 무서운 인상을 풍겨서 제가 쉽게 접근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분은 내게 겁을 주려는 듯이 가르멜 수도생활의 엄격한 규칙과 희생 고행 극기의 관습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그런 말씀을 듣고 겁나거나 용기가 꺾이기는커녕, 오히려 그 면이 제게 끌리고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성소 면담 중에 지금 다니고 있는 신학원의 수업 과목 중에, 나중에 수도원에 들어와서 별로 필요가 없을 것 같은 몇몇 과목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신부님께서는 비록 지금 그렇게 보이는 것들도 나중에 필요할지 모르니까 다른 생각하지 말고 다 배워 두라고 해서, 내 마음 속으로는 싫었지만 순명하기로 하였습니다.


   2학년이 되어 새로 시작된 학교생활은 내가 학생회에서 맡게 된 어떤 직책 때문에 매우 바쁘게 진행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매년 며칠간 성대하게 열리는 축제의 준비를 위한 실제적인 책임을 맡았기에 나는 누구보다 먼저 학교에 갔고, 수업이 끝난 뒤에도 서너 시간 더 일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그 당시 유신 말기의 독재 정치에 대항하는 학생 시위와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우리는 가톨릭 대학교 신학생들과 연대하여 학생 시위에 여러 번 참여하였고, 명동 성당에서 열리는 <민주화 염원 미사> 에 적극적으로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본당에서는 작년부터 주일학교 교사를 하느라고, 철저히 준비를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끝난 뒤에 교사들과 어울려 다니느라고 주일에도 항상 바빴습니다.


   그해 사순절, 그러니까 1976년 성주간은 나에게 특별히 은총이 풍성히 내린 나날이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성주간의 모든 예식과 행사를 실제적으로 예행연습을 하고 나서, 오후에 본당에서 하는 성주간 예절과 행사를 다시 반복했는데, 그렇게 하여 예식의 심오한 의미를 이해하고, 나의 신앙생활에 반영시키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여 뜻 깊게 맞이한 부활 대축일에 이은 8부 축제 동안, 부활절 방학을 이용하여 나는 가르멜 수도원에서 개인적으로 피정을 할 허락을 받았습니다.


   본당에서 부활절 낮 미사가 끝나고 곧 바로 나는 간단히 준비를 하여 수도원으로 갔습니다.


   그날 수도원에는 성소 담당 신부님도, 신학원 교수 신부님도 안 계셨고, 다만 원장이신 외국인 신부님과 내가 처음 보는 청원자 수사님이 나를 맞이하셨는데, 외국인 신부님은 한국 말이 서툴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청원자 수사님은 아주 간단하고 아무 표정도 없는 작은 소리로 나를 맞이하고, 안내를 하셨는데, 그 태도가 어찌나 엄숙하고 깊은 침묵 속에서 다만 간단한 손짓으로 여러 가지를 지시하고 알려 주었는지, 미리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갔지만, 나는 처음부터 그 무거운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거기서 있었던 5일 동안 나는 수도원의 일과표에 따라서 일어나고, 기도하고, 식사하고 잠을 자면서 내 발걸음은 수방에서 성당과 식당으로만 오가면서 누구와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지냈습니다.


   따뜻한 집에서 지내던 것만 생각하고, 나는 별로 준비도 없이 얇은 봄옷 차림으로 갔었는데, 수도원 내부는 난방을 하지 않아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듯하였고, 모든 수사님들이 두꺼운 겨울 수도복을 입고 있었고,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씩 하는 묵상기도 때는 수도복 위에 담요같이 생긴 망토까지 둘러쓰고 있었습니다. 나는 몹시 춥고 떨렸지만, 이것이 진정 수도생활이려니 하고 생각하며 누구한테 외투 좀 빌려 달라고 청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묵상하는 동안 성당의 차가운 돌바닥에 한 시간 내내 장궤를 하며 버텼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지내던 5일 동안, 나는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하는 것을 도와드릴 생각도 못하고, 곧 바로 내 방으로 들어왔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것은 눈치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수도원의 분위기에 눌려 그렇게 해야 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예정했던 5일간의 피정이 끝나고, 그날 저녁 식사가 끝나고 짐을 꾸려 집에 가겠다고 하니까, 수사님들은 의아스럽게 생각하며 왜 갑자기 가겠다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예정된 대로 피정이 끝나고 가는 것이며, 그리고 집이 가깝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때 외국인 원장 신부님이 서툰 한국말로 “다음에 또 오십시오.”하며 나를 포옹을 하셨는데, 나는 그분이 진심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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