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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마르코14,1-72)/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7 조회수71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마르코복음14장
 
 
마르코복음 14,15,16장은
예수님께서 천국과 구원을 완성하시는 성경인데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 인류를 극진히 사랑하시어
예수님 자신의 목숨까지 내 놓으시고 죽으심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부활하시어 영원히 살아계신 하느님으로써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죗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구원의 길을 만들어 놓으신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사랑도 예수님의 사랑 즉 하느님의 사랑을 '아가페 사랑'이라 하고
우리 인간끼리 국민들끼리 사랑하는 사랑을 '필로' 라고 말하며
남자와 여자간의 연인의 사랑을 '에로스' 사랑이라고 하며
혈연간의 사랑을 '스톨케'라고 말하는데
 
필로 사랑과 에로스 사랑과 스톨케 사랑도 필요하지만
아가페 사랑이 없으면 다른 사랑들은 오래가질 못하고 변화되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랑인 아가페사랑이 와야 사랑으로 일치가 되며 하나가 되고
코린토 전서 13장은 사랑이 아가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 하셨으며
예수님께서 천국가는 길을 예비해 놓으시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데
베타니아의 마리아처럼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예수님을 영접하는 믿는 사람들의 대표로 예화를 들어 주며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대표로 가리웃 유다를 말씀하시고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반을 하였지만 회개하고 다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대표로 말씀하시는데
우리 인간들은 베드로 사도처럼 매일매일 죄를 지을 수 있지만
회개하는 한 마리 양처럼 회개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구원 받는다는 예화를 들어서 설명하시는데,
 
우리들은 어차피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지만
공의의 하느님이시며 사랑의 하느님이신 예수님께 매일매일 회개하는 삶으로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너희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과 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야서 1,18)
"나는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의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리라."(히브 10,17)
 
우리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여 믿고 신앙생활하면서
베타니아 마리아처럼 하는가? 가리옷 유다처럼 생활하고 있는가?
 
초대 교황님이 된 베드로 사도처럼 늘 죄를 짓지만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받은 성도로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묵상 합시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 사순시기만은 멸망할 잃은 한 마리 양처럼 회개하는 성도로서 사순절을 지낼 수 있도록 주님께 두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죽이려고 하며,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영적인 죄를 지적하기 때문에 죽일 음모를 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심령 안에 있는 사탄 마귀가 사람들을 조정하여
예수님인 하느님을 죽이려 하고 선동하여 죽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다시 부활하시어 부활 승리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성경을 모르면 죄를 짓게 되고
예수님께 못을 박는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2000년 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율법에 매여 있으면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선악으로 살아갈 때
'잘한다.못한다'.라고 판단하며 살아 가는 것이
세례 때 원죄는 사함 받았다고 하지만
선악의 열매의 여독으로 살아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남을 심판할 때 그 심판한 말로 내가 심판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 말씀으로 살아갈 때 말씀화가 되면
말씀의 열매인 아가페 사랑이 와서
미운 사람도 부족한 사람도 병든 환자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과 복음을 믿어
사랑으로 변화되어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죽음이고 죄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모두에게는 아가페 사랑이 없고 선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복음 말씀으로 살아갈 때,
예수님과 한 몸이 되고 한 영이 되어
예수님을  닮은 성도들의 삶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1 파스카와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속임수를 써서 예수님을 붙잡아 죽일까 궁리하고 있었다.
2 그러면서 “백성이 소동을 일으킬지 모르니 축제 기간에는 안 된다.” 하고 말하였다.

어떤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다
 
베타니아 마리아가 예수님께 값비싼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행위는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시켜 예수님을 축성하시는 과정을 계시해 주시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구약에서는 제사장이나 예언자가 왕을 기름을 부어 축성하는 과정들이 나오는데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멜기세덱의 번차를 따른 영원한 대사제라는 것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 자신이 대사제가 되시며,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의 거룩한 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의 피흘린 제사를 통하여 새 계약을 이루시고,
오늘날에는 미사성제 때 피흘림 없는 제사를 통하여
매일매일 미사 드릴 때마다 반복해서 새 계약이 이루어지시는 것입니다.
 
새 계약은 사랑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은
마리아 자신을 예수님께 봉헌하여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상징하며
우리들도 우리들 안에 가장 귀중한 것
즉 시기 질투 미움 판단 등(갈라 5,19)을 예수님께 바치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랑의 삶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가 가장 버리기 아까워 하는 것은,
화 잘내는것 시기 질투 미움 싸움 등입니다.
우리들도 세례 받을 때 이마에 기름을 발라 축성하여
평신도 사제직과 평신도 예언직과 평신도 왕직을 받게 되기 때문에
구약의 율법하에서는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느님께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기도할 수가 있었지만
 
신약에 와서는 세례받을 때 평신도 사제직 평신도 예언직 평신도 왕직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직접 하느님 이름을 부를 수 있고 기도도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타니아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분인데
예수님께서도 이 일은 복음이 전해진 곳에 전해져야 한다고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식탁에 앉아 계시는데, 어떤 여자가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그분 머리에
향유(예수님의 장례를 상징함)를 부었다.
4 몇 사람이 불쾌해하며 저희끼리 말하였다. “왜 저렇게 향유를 허투루 쓰는가?
5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 그러면서 그 여자를 나무랐다.
6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가만 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7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으니, 너희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잘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8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다 (마태 26,14-16 ; 루카 22,3-6)
 
유다는 예수님을 모시면서 돈 주머니를 간직했던 사도로써 유다는
예수님 안에 있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통하여
세상의 왕과 같이 힘으로 육적인 나라를 세울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우실 하느님 나라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은전 30전에 대제사장에게
예수님을 팔아 넘겨서 예수님을 죽게 하는 분인데 
 
그래서 사순시기의 첫째 수요일 날을
사순절의 처음 시작하는 날로 정하고 죄의 수요일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날이기 때문에 수난과 고통의 시작인 것입니다.
 
가리옷 유다 안에 있는 선악이 가리옷 유다를 조정하여 예수님을
죽이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가리옷 유다 안에 있는 선악을 통하여
예수님이 수난 받고 죽고 부활하여
하늘나라를 세우는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풍성하다 말씀하시고
아우구스티노스성인은 "복 된 죄여 "라고 말씀하시고
아담 하와가 죄가 짓지 않았다면
예수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성경을 모르고 하느님 말씀을 모르면 가리옷 유다처럼
죄를 짓고 십자가 상에 계신 예수님께 못 박는 일을
오늘날에도 반복될 수 있는 것입니다.
 
10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수석 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11 그들은 그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다 (마태 26,17-19 ; 루카 22,7-13)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교회에다 계속 구원 받을수 있는 길을 마련해 놓고 가시기 위하여
성만찬을 준비해 놓으시는데,성만찬이 미사 전례 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에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들 안에 오시고 예수님의 몸인 성체와
성혈로 우리 안에 오시기 때문에
미사 때마다 예수님을 모셔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구원의 완성 입니다.
성체와 성혈은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예수님이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의 살과 말씀의 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신부님이 빵을 들고 성령으로 "이는 내 몸이다.이는 내 피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이 신부님들의 입을 통해서
하신 하느님의 말씀 성취가 이루어지는 것이 성사입니다.
 
12 무교절 첫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가서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3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가거라. 그러면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를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14 그리고 그가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스승님께서 ′내가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음식을 먹을 내 방이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하여라.
15 그러면 그 사람이 이미 자리를 깔아 준비된 큰 이층 방을 보여 줄 것이다. 거기에다 차려라.”
16 제자들이 떠나 도성 안으로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일러 주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제자가 배신할 것을 예고하시다
 
육의 속성은 환난이나 고통이 오면 육의 본능상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말씀화가 되어 사랑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순간 순간
거짓말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사람들하고
생활할 때는 말 따로 행동 따로
즉 언행의 일치되는 생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우리 마음이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영혼으로 부활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고 자기도 모르게 죄를
지은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며
우리들의 죄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시기 때문에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달아 우리 삶에서 실천에
옮겨지도록 해야 하며 우리가 성경 말씀대로 살았으면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말씀에 따라 살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구원의 말씀이며 천국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17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셨다.
18 그들이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19 그러자 그들은 근심하며 차례로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는 열둘 가운데 하나로서 나와 함께 같은 대접에 빵을 적시는 사람이다.
21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성찬례를 제정하시다 (마태 26,26-30 ; 루카 22,14-20)
 
22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23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니 모두 그것을 마셨다.
24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새 포도주(복음말씀)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율법=육의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설명:
난해의 절인데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즉 새 계약이 이루어지고
성체가 된 성도들과 새 포도주(복음)를 마시겠다는 뜻입니다.
 
새 포도주(복음)는 복음을 상징하고
포도주는 육과 율법을 상징하기 때문에 율법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복음을 영접하여 새 포도주인 복음 말씀으로
새로 태어난 하느님의 자녀들인 성도들과 함께 마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물(말씀)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예수님과 함께 성체와 새 포도주를 마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미사때 빵과 포도주도 세례를 받은 하느님의 자녀들인 성도들과
마시겠다는 뜻이므로 세례를 받고
은총지위에 있는 교우들이 성체를 모실수 있는 것입니다.
 
묵시록 1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난 포도로 빚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하시는 말씀도
땅에서 난 포도 열매는 육의 열매인 죄악을 상징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마시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갈라5,19)
 
26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설명:
공관복음인 마태,마르코,루카복음에서는 찬미가를 부르면서
올리브산으로 갔다고만 나오는데
요한복음에서는 구원에 대한 계시를 구체적으로 해주시는데
요한복음13장에서
예수님께서 세족례를 통하여 예수님과 관계를 맺어 하나가 되며
 
요한복음 14장에서는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예수님과 관계를 맺어 예수님이
천국가는 길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하여 천국가는데
 
요한복음 15장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참 포도나무인 예수님과 가지인 사도들이 하나가
되어 많은 열매인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된다고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16장에서는
여인이 아기를 낳을 때 심한 산고를 통하여 자녀를 낳는 것처럼
말씀을 잉태하여 말씀의 자녀와 말씀의 열매인
성령의 열매를 맺는데도 고통과 고난이 오지만 참고 견디면
참 평화와 아가페 사랑이 온다고 말하고
 
요한복음 17,21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저 또한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 또한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
예수그리스도와 우리들이 하나가 되어 성령의 열매를 맺어 사랑으로
일치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구원이고 천국 완성 입니다.
 

베드로가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을 예고하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삼년 반이나 따라 다녔지만
성령을 받기 전에는 육에 있기 때문에 육에서 하는 말은
아무리 맹세을 해도 말로는 하면서
육의 마음은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세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던 약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말로는 잘하지만
실제 행동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네가 나를 배반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번이나 배반할 것이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에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닭은 예수님을 상징하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교회의 지붕위에
닭을 조각상을 장식하는 교회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현재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무슨 무슨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21,15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번이나 물어 봤을 때 베드로는 울면서 세번이나 배반했던
사실을 생각하면서"네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느냐고 물어 볼 때
아가페 사랑으로 물어보는데 베드로는 필로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대답하는데 베드로 사도는
아가페 사랑이 없기 때문에 필로 사랑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가 성령을 받은 다음은
아가페 사랑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베드로 사도처럼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란 말도 들었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배반했지만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베드로에게 "나를 세번이나 사랑하느냐?"고
물으시고 양들을 먹이고 양들을 돌보고 이끌어 가라고 하시고
교회의 지도자로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의 죄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 죄인들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죄의 문제는 예수님과 복음 말씀을 떠나는 것이며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 죄이고 이 죄의 벌로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2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28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29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모두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3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1 그러자 베드로가 더욱 힘주어 장담하였다.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이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다 (마태 26,36-46 ; 루카 22,39-46)
 
마르코복음 9장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다볼산에 올라 가셔서
부활영광인 거룩한 변모를 보여 주셨던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아 동산에 올라 가셔서 역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올라 가셔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기도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육신을 강조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이 고난의 잔을 제에게서 피할수 있으면 피하게
해달라고 하시지만,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라고
하느님 뜻에 순종하시는 모습이 나오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영의 복음이니까 육신의 고난에 대한 것보다는
심령에 고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과 수난은 대단히 큰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고난이 닥칠 때는 반드시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하여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과월절의 어린양처럼 희생양이 되어 십자가의 제물이 되기 위하여
고난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처럼 우리 생활에서 많은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을때 늘 깨어 기도해야겠습니다.
주님의 고난의 잔을 바라볼 때 내가 가지고 있는 고난의 잔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가? 빈 잔인가? 조금 있는가? 가득 차 있는가?
묵상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고난의 잔을 잘 받아 들일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영광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죽음 후에 부활이 있기 때문에 죽음도 사랑 합시다.
 
32 그들은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공포와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34 그래서 그들에게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런 다음 앞으로 조금 나아가 땅에 엎드리시어, 하실 수만 있으면 그 시간이 당신을 비켜 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시며,
36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37 그러고 나서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38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하시고,
39 다시 가셔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40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내리 감겨 자고 있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분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다.
41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되었다. 시간이 되어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42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43 그러자 곧,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다가왔다. 그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44 그분을 팔아넘길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아 잘 끌고 가시오.” 하고 그들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두었다.
45 그가 와서는 곧바로 예수님께 다가가 “스승님!” 하고 나서 입을 맞추었다.
46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47 그때 곁에 서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사제의 종을 내리쳐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
48 예수님께서 나서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단 말이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지만 너희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리된 것이다.”
50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알몸으로 달아난 젊은이
 
어떤 젊은이라고 나오는데
이 어떤 젊은이는 마르코 복음사가 자신을 말하는데
아마포라는 좋은 옷을 벗어 버리고
알몸으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육적으로 보면 옷을 벗었다는 것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는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하였을 때
말씀으로 짜진 그리스도의 옷인 예복을 입지 못하면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나타났을 때
영적으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곁을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 나라이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과 분리되는
것이 죄이고 죽음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느님 말씀과 관계를 맺어야 하며 교회를 떠나는 것이
예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는 옷을 벗어도 부끄럽지 않는 것처럼
영적으로는 예수님과 우리가 한 몸이 될때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사가도 옷을 벗고 알몸으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도망갔다고 말하고 베드로 사도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배반했다고 말하고 바오로 사도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을
박해하고 죽였다고 고백을 하는데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자기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며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은 점점 커져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51
어떤 젊은이가 알몸에 아마포만 두른 채 그분을 따라갔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52 그는 아마포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최고 의회에서 신문을 받으시다
(마태 26,57-66 ; 루카 22,54- ;
 
산해드린 이란 최고회의에서 주로 율법으로 재판을 하지만
사형선고는 로마 총독이 할수 있기 때문에 대제사장과 사제들이
예수님께 죄를 씌워 죽이기 위하여 심문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대사제와 사제들은 율법에 매여있기 때문에
영적인 소경들이므로
구세주 메시아인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한 분이신 참 하느님을 알고 그 분이 파견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요한17,3) 
 
53 그들은 예수님을 대사제에게 끌고 갔다. 그러자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이 모두 모여 왔다.
54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의 저택 안뜰까지 들어가, 시종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55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그분에 대한 증언을 찾았으나 찾아내지 못하였다.
56 사실 많은 사람이 그분께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하였지만, 그 증언들이 서로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57 더러는 나서서 이렇게 거짓 증언을 하기도 하였다.
58 “우리는 저자가, ‘나는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59 그러나 그들의 증언도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60 그러자 대사제가 한가운데로 나서서 예수님께, “당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소? 이자들이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어찌 된 일이오?” 하고 물었다.
6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입을 다무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대사제는 다시 “당신이 찬양받으실 분의 아들 메시아요?” 하고 물었다.
62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63 그러자 대사제가 자기 옷을 찢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합니까?
64 여러분도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모두 예수님께서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단죄하였다.

예수님을 조롱하다 (마태 26,67-68 ; 루카 22,63-65)
65 어떤 자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고 그분의 얼굴을 가린 다음, 주먹으로 치면서 “알아맞혀 보아라.” 하며 놀려 대기 시작하였다. 시종들도 예수님의 뺨을 때렸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다 (마태 26,69-75 ; 루카 22,55-62
 
66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는데 대사제의 하녀 하나가 와서,
67 불을 쬐고 있는 베드로를 보고 그를 찬찬히 살피면서 말하였다. “당신도 저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던 사람이지요?”
68 그러자 베드로는,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그가 바깥뜰로 나가자 닭이 울었다.
69 그 하녀가 베드로를 보면서 곁에 서 있는 이들에게 다시, “이 사람은 그들과 한패예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70 그러나 베드로는 또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던 이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당신은 갈릴래아 사람이니 그들과 한패임에 틀림없소.” 하고 말하였다.
71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72 그러자 곧 닭(예수님 상징)이 두 번째 울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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