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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36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22 조회수454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부활 제2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6-21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 성경에 의하면 오늘 복음은 요한 3장 10절부터 오늘복음까지 계속 이어지는 예수님 말씀의 끝부분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할 때에는 그 말씀이 누구의 말씀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인지, 제자들의 얘기인지, 아니면 복음서 기자의 해설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홈피의 매일미사에서 펌하여 올린 위 복음에는 말씀임을 표시하는 “  ” 가 누락되었으며, 매일미사 책에 등재된 복음에도 말씀임을 뜻하는 “  ” 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또 교구 홈피에 저장된 성경에도 말씀 표시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표시가 누락되면 예수님의 말씀을 기자의 생각으로 오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인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이 말씀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신화가 생각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면서 오른 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일곱 발짝을 걸으며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을 통틀어서 ‘나보다 더 존귀한 이는 없다.’는 이 말은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완전한 깨달음에 이른 사람은 내가 유일하다.’는 그런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이 말씀에서 외아들인 獨生子는 唯我獨尊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완전히 깨달은 사람은 예수님이 유일하다는 그런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외아들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불교의 三身佛 사상을 다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은 첫 서문에서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요한1,1)는 사실을 제일 먼저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영원불변의 절대 진리를 뜻하고 있으며 이런 절대 진리를 불가에서는 法이라 합니다.

法은 우주 만유의 실체로서 현세적이며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 진리이고 영원불멸하게 존재하며 줄거나 늘어나지 않고 시작과 끝이 없는 존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런 法을 인격화하여 法身佛이라 합니다. 요한복음서에서는 말씀을 하느님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불가에서는 法을 인격화하여 法身佛이라 하므로 우리의 하느님과 같은 개념입니다.

法이 인간을 구제하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분을 化身佛이라 하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고백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저희 가운데 계시나이다.’ 같은 의미이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와도 같은 이유입니다. 화신불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즉 성불하면 報身佛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서 완전한 부활에 이른다면 우리도 불가에서 말하는 報身佛이 되는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이를 불교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를 실제로 믿어야 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신앙에서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실제로 믿지 않으면 중세 같으면 화형을 당해야합니다. 제게 영세를 주신 신부님께서도 제게 하신 말씀은 중세 같으면 화형을 당하였을 것이라 하시며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오늘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시며 전혀 다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당신을 믿지 않으면 이미 심판을 받았으므로 더는 심판을 받을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서 천당가고, 소원을 빌면 들어주시어 복도받고, 빌어도 소원을 들어 주시지 않으면 믿음이 부족하여 그런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또 믿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가고, 또 벌을 내려주실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에도 심판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고 예수님을 믿고 영세 받은 이후에는 심판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한 죄책감에 더 시달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더 불편하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가는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어떤 당위성을 찾아야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 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교세확장과 잿밥에만 눈이 먼 종교지도자가 아닌 올바른 종교지도자라면 이런 고민을 오히려 신자들에게 주문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법정 스님께서 성북동에 소재한 길상사의 봄 법회에서 이에 대한 말씀을 하신 내용을 언론 기사를 통해 읽어 봤습니다. 그 법문중에는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왜 절에 가는가, 왜 교회에 가는가. 그걸 스스로 물어야죠. 그게 없으면 타성에 젖고 맙니다. 그럼 신앙이 없는 사람보다 더 어리석게 살 수도 있습니다. 절이나 교회를 습관적으로 다니지 마세요. 그게 절의 재정을 보태는 데는 도움이 되겠죠. 그러나 신앙의 알맹이는 빠지고 맙니다. 부처님 당시를 보세요. 절이 생기기 전에 수행이 있었습니다. 먼저 수행을 통해 개인의 삶이 맑아지고, 그 파장과 메아리로 사회가 향기로워 지는 것. 그게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는 진정한 뜻입니다.”

우리는 왜 교회에 가는가에 대한 우리의 고민에 대하여 오늘 복음은 어둠보다 빛을 더 사랑하기 위해서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어둠은 악이며 빛은 진리라 하였습니다. 이렇듯 요한복음서는 우리 모두가 진리의 삶을 살아서 광명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법정스님 말씀처럼 개인의 삶이 맑아지고, 그 파장과 메아리로 사회가 향기로워 지는 것. 그게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는 진정한 뜻이라는 말씀으로 대신할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매일 복음을 묵상하는 것도 진리의 삶을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더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성경해석이 어려운 것은 우리의 정서로 기록된 우리의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이천 여 년 전 그 시대의 정서에 맞게 그들의 언어로 기록한 것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성경은 반드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올바르게 재해석되어진 토대위에서 그 가르침을 따라야 현 시대를 살아가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당신을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였습니다.
더 이상 심판받을 것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믿지 않는다하여 죽어서 지옥 가는 것도 아니고
믿는다하여 소원 들어주고 죽어 천당 가는 것도 아니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것은 오직 진리의 삶을 살아서
후회 없는 생을 마감하고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저희 모두를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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