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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지막 사랑의 표현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20 조회수480 추천수8 반대(0) 신고
 
 

마지막 사랑의 표현 - 윤경재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요한16,12-14)

 

  마지막 유언을 남기시는 예수께서 할 말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아쉬워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아직은 그 말씀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음을 예수께서는 잘 알고 계셨습니다. 사실 공생활 중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감추시고 하지 않은 말씀은 없었습니다. 이미 모든 비밀을 다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만 아직은 제자들이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실행할 만큼 믿음이 깊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이신 분께서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지셔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내용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권능을 지니신 분께서 인간에게 수모를 당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실은 정말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초기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역설적 믿음이 정착되기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성령강림이 오십 일 지나서 이루어졌다는 내용도 따지고 보면 그동안에 나름대로 이견 조율이 있었다는 방증입니다. 사도 바오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나서 아라비아 사막에 들어가 3년간 묵상을 통해 이 십자가의 역설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뛰어난 율법학자인 가말리엘 문하에서 성경 내용을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단번에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런 사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사야 예언서 등에서 예수님을 예표한 기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것을 보여 주시고 나서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평생 고심한 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중 예레미야 예언자가 특히 더 고민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언자의 소명을 받았으나 당시 유다 백성이 생각하고 듣고 싶어 하던 주님의 말씀을 전해줄 수 없었습니다. 외세에 저항하여 독립국의 명맥을 유지하려 드는 왕과 지도자들 그리고 일반 백성은 모두 한마음이 되어 신흥세력 바빌론 왕국에 대항하고자 했습니다. 당시 유다인과 그 밖의 예언자들은 하나같이 하느님께서 다윗 왕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국을 굳세게 믿었습니다. 유다 히즈키아 왕 시절에 이사야 예언자는 도저히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침공을 물리칠 것이라고 예언했고 또 주님의 도움으로 극적인 승리를 체험했습니다. 유다인은 그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겨우 100여 년 전 사실이었습니다. 왕실 예언자들은 모두 바빌론 왕국의 침공을 물리칠 수 있다고 예언했는데 유독 예레미야만이 나서 신흥 세력인 바빌론 왕국에 항복하자고 나섰습니다. 항복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선언했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예언이라고 철저하게 무시당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민족의 배반자요 미친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아 마땅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을 적은 두루마리를 여호야킴 왕이 듣고서 화롯불에 던져버렸을 정도입니다.

  예레미야는 일생을 철저하게 고립되어 지냈습니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신탁을 수도 없이 외쳐야 했으며 주님께서는 기괴한 행동을 하게 시키셨습니다. 심지어 가족마저도 그를 외면하였습니다. 친지들 혼인 잔치에도 장례식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저를 가득 채운 당신의 분노 때문에 당신 손에 눌려 홀로 앉아 있습니다.”(15,17)라고 철저한 고독을 토로했습니다.

  그렇다고 예레미야의 예언이 참되다는 진정성을 보장하는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철저하게 침묵 속에 계셨습니다. 그는 정신적 갈등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신탁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고통과 불행의 연속일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하느님께 여쭈어도 보증을 해 주시기보다 질책만 하실 뿐이었습니다. “네가 사람들과 달리기를 하다가 먼저 지쳤다면 어찌 말들과 겨루겠느냐? 네가 안전한 땅에만 의지한다면 요르단의 울창한 숲 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12,5)

  그는 감내하기 힘든 엄청난 갈등을 솔직히 고백하면서도 결코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의 고백’이라 부르는 5개의 부분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인간의 한계와 고심이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참 예언자는 자신의 의지에서 예언을 이끌어 내지 않고, 예측 불가능한 하느님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예언자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니에서 드린 기도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14,36)는 예레미야의 정신에 꼭 들어맞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고통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제자들에게 전할 마지막 말씀을 파라클레토스 성령께 위탁하셨습니다.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성부의 침묵에 고통받을 제자들을 헤아려 사랑이신 성령을 보내시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말씀과 사랑으로 오셨던 성자 예수는 인간에게 보여주시는 마지막이고도 결정적인 하느님의 자기 증여입니다. 다시는 증거가 필요 없을 만큼 확실한 사건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으라고 주님께서는 지금도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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