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14-17
14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16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17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유다인들의 단식은 율법의 규정입니다. 율법의 명에 따라 음식을 끊었습니다. 이후 단식은 조상들의 전통이 되어 누구나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식의 이유’에 앞서 단식 자체에 매달리는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단식은 음식을 먹지 않는 행위입니다. 목적 없는 단식은 ‘이유 없이’ 육체를 괴롭히는 고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단식의 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라고 하셨습니다. 신랑은 예수님입니다. 당신과 함께 있을 때는 ‘당신의 일’을 하자는 말씀입니다. 단식은 하느님께로 가는 수단입니다. 음식을 절제함으로 주님께로 마음을 향하게 하는 ‘보조 수단’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니 단식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께서 함께 계시는 날은 잔칫날입니다. 우리 인생의 많은 날을, 우리는 성체를 모심으로써 ‘잔칫날’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삶은 늘 축제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흔들리고 신앙생활이 힘겨워질 때는 사순절이 아니더라도 단식할 수 있습니다. 단식을 통해 내 감정과 욕망의 절제를 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다시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과 연관된 단식은 언제라도 은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