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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06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7 조회수429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간 제17주간 월요일]

<겨자씨는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31-35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32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

33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34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35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를 알려주신 여섯 가지 비유 중의 하나이므로 하늘 나라를 설명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작은 겨자씨가 새들이 깃든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누룩으로 반죽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것처럼 효용이 극대화되어 우리 모두가 안식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그런 나라라는 것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그간의 잘못을 회개하고 반성하여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면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늘 나라는 우리 모두가 꿈꾸는 그런 나라이므로 그 꿈을 결코 버리지 마라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것은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하듯이 하루아침에 이루어 질 수 없으므로 인내를 가지고 실천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하늘 나라가 아무리 좋은 나라라 할지라도 이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없으면 한낮 꿈에 불과하므로 그 꿈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신앙을 대부분 종교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전적인 의미로는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굳건한 신념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스스로 자신의 신앙심을 의심하거나 교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신앙심을 의심받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신앙심이 아주 미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제게 제 신앙심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야 그 사람의 신앙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고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굳건한 신념을 갖는 것이며 이런 신념이 없는 사람은 그 누구를 불문하고 신앙심을 의심하여야 합니다. 이런 뜻으로 제게 신앙심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존경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다른 어떤 것으로 신앙의 기준을 삼는다면 그 사람은 하늘 나라를 건설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을 믿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하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입니다. 따라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 그리스도 교인이 아님은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혁명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국가인 하늘 나라를 건설하려고 하였지만 그 방법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기에 우리 그리스도인과 다른 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 대하여는 뜻이 확실하므로 따로 묵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에 대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라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으므로 이 말씀의 의미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이 땅에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어려운 일을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뜻에서 오늘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로 말씀하고 계시지만 우리 선조들께서는 강물에 비유하여 많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강물에 관한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강물은 결코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씀 하나만이라도 우리가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모든 고난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비유는 거의 자연현상으로 비유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자연현상은 절대적인 진리이고 누구나 눈으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우리에게 가장 큰 스승님은 자연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는  이 말씀은 비유로 설명한 자연현상 속에는 자연의 신비 즉 '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들이 전부 담겨있다는 뜻으로도 묵상하고 있습니다.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우리는 자연의 이치 또는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삶이 곧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이며 모두가 이런 삶을 살게 될 때에 비로소 이 땅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을 가장 확실히 느끼는 것은 자연을 통해서 입니다. 저는 자연이 따로 있고 하느님이 따로 계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연이 곧 하느님이고 하느님이 곧 자연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죽어서 흙으로 가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곧 하느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 동양의 자연사상과 우리 신앙의 하느님과 무엇이 다른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하느님의 섭리를 자연의 섭리로 설명하여도 설명되지 않는 것이 없고, 자연의 섭리를 하느님의 섭리로 설명하여도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동양인은 자연을 인격으로 보지 않았을 뿐이며 유대민족은 인격화하여 우주만물의 창조주로서 지배자로 생각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차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며 그 본질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자연 재해를 두려워하고 하늘을 두려워했던 우리 민족과 하느님을 두려워 했던 유대민족의 생각이 결코 다를 수 없습니다.

자연은 우리를 낳고 길러준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며, 하느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였기에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절대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지배자로 보지 않으시고 아버지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동양적 사고인 자연의 관점에서 하느님을 바라보신 것 같습니다. 하느님이 곧 자연이고 자연이 곧 하느님이라는 하나의 사실을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 하는 차이만 있으므로 이는 관점의 차이며, 정서의 차이며, 언어의 차이일 뿐 실체와 실존에 대하여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차이가 실제에 있어서는 엄청난 차이로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의 관점에서 바라본 신관은 상생과 공존이라는 생명, 평화사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며, 절대자로 보는 신관은 주종관계의 지배논리를 심어줄 수 있으므로 나와 다르면 배척하고 지배하려는 배타적 지배사상으로, 기복신앙으로 발전해 나갈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 할 것입니다. 이런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 없이 종교 간에 화합을 말하는 것은 그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고 모두가 하나라는 일체사상만이 모든 종교는 하나의 길을 같이 걸어가는 동반자관계로 발전하여 서로 소통할 수 있으므로 생명, 평화 사상을 가진 모든 종교는 우리 사회에 모두 다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하신 성경 말씀처럼 하느님의 뜻인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한 방울의 물이 모여서 실개천을 이루고 실개천이 모여서 강물을 이뤄 바다로 나아가듯이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로 나아가야 하지만 남북통일을 향한 첫 걸음에 불과한 남북 경협을 퍼주기라 비난하며 긴장관계를 조성하지 못해서 안달이고, 국민 통합을 위하여 봉사하여야 할 위정자들은 국론을 분열시켜서 지지 세력을 확보하려고 안달이고, 가진 자가 조금 양보하여야 함에도 더 가지려고 안달이므로 우리 교회의 사명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함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여 알려 주셨습니다.
강물이 바다로 향하는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듯이
저희 또한 성령님의 인도로 하늘 나라로 한걸음씩 나아가는 길을
포기 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주시옵기를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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