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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 30일 야곱의 우물- 마르 7,1-8.14-15.21-23/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8-30 조회수453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예루살렘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와, 그분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따져 묻습니다. 신약성경 형성 시기에 바리사이들은 하나의 조직화된 단체 또는 종교 분파였는데, 그들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에 참여하기 위해 조상들의 율법에 충실하며 모든 계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뿐만 아니라 율법을 해석하고 적용함으로써 발전시킨 많은 규정을 지켰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오늘 이야기에서 말하는 ‘조상들의 전통’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제자들이 왜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순수한 물음이 아니라 비난이 담긴 도전적인 지적입니다. 여기에서 그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은 청결이나 위생을 고려한 것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규정이나 관습에 관련된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에 그들이 지켜야 했던 당시의 몇 가지 규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마르 7, 3‐4)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적인 규정들에 얽매인 그들을 ‘위선자’라고 하시며 이사야서(29, 13)를 인용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6‐7절).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행위는 예수님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단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8절) 사람이 정해 놓은 규정을 하느님의 것처럼 지키면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첫째로 보시는 하느님의 법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은 종종 외적인 것만을 존중하는 신앙을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입술로만 하느님을 섬기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하느님을 가까이 하고, 사람의 규정을 따르지 말고 하느님의 계명을 따를 것을 촉구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의 충돌이 있은 뒤에, 이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불러 가르치십니다(14절). ‘깨끗함’과 ‘더러움’의 참된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한 가르침으로, 수수께끼 같은 비유 형태의 말씀입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15절) 이번에도 쉽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것이지요? 제자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따로 비유가 뜻하는 것을 풀어 설명해 주십니다.

밖으로부터 사람 안으로 들어가 자연적인 과정을 거쳐 나가는 음식의 순환과정이 당신 비유의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음식의 소화와 배설은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의미에서 ‘정결’과는 무관한 하나의 자연현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동물과 음식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땅 위에 사는 모든 짐승 가운데 너희가 먹을 수 있는 동물은 이런 것들이다. … 너희는 이런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도 안 되고, 그 주검에 몸이 닿아서도 안 된다. 그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한 것이다. …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 먹을 수 있는 동물과 먹을 수 없는 동물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레위 11, 2.8.47)

이는 본디 그들의 생활환경에 적합한 음식물과 부적합한 음식물을 구별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규정이 나오게 된 기본정신을 잊고, 규정 자체에 집착하고 더욱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정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본디 음식물 자체는 모두 깨끗하다고 말씀하시며, 중요한 문제는 ‘사람에게서 나와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과 욕구가 나오고, 그것이 사람들을 오염시킨다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모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의 참된 모습이 내면의 오염으로 인해 일그러지고 뒤틀리게 되는 것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열거하신 나쁜 생각은, 불륜과 도둑질과 살인에서부터 시작하여, 간음과 탐욕과 악의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악한 눈길’을 뜻하는 ‘시기’에는 질투와 탐욕이 담겨 있습니다. ‘중상’은 자기 동료에 대해 의도적으로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공동체에서 한 사람을 고립시키는 비열한 행위입니다. “사악한 사람은 싸움을 일으키고 중상꾼은 친구들을 갈라놓는다.”(잠언 16, 28) 이어지는 ‘교만’과 ‘어리석음’은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리석음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 자신의 교만으로 하느님을 경멸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이 콧대를 높여 ‘하느님은 벌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없다!’하니 이것이 그의 생각 전부입니다.”(시편 10, 4).

‘깨끗함’과 ‘더러움’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날마다 들여다볼 일입니다. 날마다 닦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 더렵혀진 것이 있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닦아내야 할지….

사도 야고보의 권고가 들려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야고 1, 21)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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