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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14일 야곱의 우물- 요한 3,13-17 묵상/ 새순이 돋는다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4 조회수532 추천수3 반대(0) 신고
새순이 돋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어느 날 한 아이가 경찰과 함께 쉼터에 왔다. 거리에서 지낸 십대 청소년들이 겪는 그리고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과정을 치룬 아이의 모습은 그만한 때의 어리고 앳된 소녀의 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아이의 친엄마는 아이가 두 살 때 친아빠의 오토바이 운전미숙으로 죽었고, 아이는 친척집에 보내졌다가 이미 재혼하여 동생을 둔 친아빠와 계모에게 다시 보내졌다. 계모는 건강이 약하다며 동생과 살림을 돌보는 것은 아이의 몫이었고, 집안일이 다 끝나야 학교에 갔다. 영리한 아이여서 그 상황에서도 공부를 따라가고 성적도 잘 나왔다. 친아빠와 계모는 주중 그리고 주말에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십일조는 물론 찬양대에서 봉사하며 교회 생활에 헌신적이며 매우 활동적으로 참여한다.

친아빠는 특히 계모의 ‘예민한 신경과 건강’을 위해서도 매우 헌신적이어서 그 세 식구의 모든 뒷바라지는 아이에게 맡기고 버젓한 직장에,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중학교를 마치자 친아빠와 계모는 그동안 아이를 ‘충분히’ 보살폈다며,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 아이를 ‘산업체 특별학교’로 보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몇 시간씩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며 공장기숙사에서 지냈다. 월급은 계모가 모아준다고 가져갔다. 아이는 중학교 담임교사도 말렸던 이곳에서 반년을 견뎌낸 뒤, 좌절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학교를 나와 새로 만난 언니 오빠들과 거리 생활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경찰에 의해 쉼터로 오게 되었고, 건강검진에서 임신 초기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자기가 임신한 사실도 몰랐다. 학교는 자퇴처리되었고, 휴대전화 요금이 밀려 있었다. 여러 각도의 상담과 숙고 끝에 아기를 낳아, 입양시키기로 어려운 결정을 한 후 아이는 스스로 담배를 끊었다. 시간제 일을 하며 휴대전화 연체료 갚을 돈을 모으고, 대입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아이는 무섭게 집중하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 갔다. 아이의 친아빠와 연락을 하여 가족상담도 시작했다. 친아빠는 중산층 보통 가장의 모습으로 나타나 아이의 결정을 매우 기뻐했다. 자신은 ‘아이를 위해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정신적 지지자로 남겠다.’며 아이의 어떤 재정적 지원이나 함께 사는 데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에겐 돌보아야 할 ‘예민한’ 부인과 딸, 장모, 장모의 모친이 있다고 했다.

친아빠의 넉넉한 재산과 고정수입으로 인해 아이는 학업지원·의료지원 등 당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회복지 지원을 하나도 받을 수 없었다. 친아빠는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충분히 양육했으며, ‘산업체학교를 자퇴한 것은 아이의 선택’이었고 그 이후도 아이의 선택으로 사는 것이니 부모로서 책임을 다한 것이라 했다. 그리고 자신은 ‘언제나 아이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아이는 연체료를 다 갚고, 대입검정고시를 치르고, 열흘 뒤 아기를 낳아 입양시켰다. 아이는 아기를 보내며 “아가, 미안하다. 네가 미워서 너를 보내는 것이 아니고, 엄마가 지금은 너를 돌볼 수 없기 때문이야.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기를 보내고 아이는 우울증과 탈모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목표로 한 대학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이번에는 대학입학 준비를 위해 몇 달간 전일제 일자리를 찾았으나 어린 나이에, 시설에 살며, 검정고시 출신자로 전일제 자리는 어려웠다. 삶의 고비를 만날 때마다 아이는 그동안의 삶의 경험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무기력과 우울로 빠지려해서 아이에게 또 다른 목표와 동기가 필요했다.

아이는 ‘어떤 시기에는 엎어지고, 어떤 시기에는 다시 일어나 걸으며’ 자신의 삶의 조건을 끊임없이 개척하고 극복해 나가야 했다. 이는 아이의 친아빠가 ‘그것은 아이의 선택이고, 아이의 책임이다. 나는 정신적 지지자로 아이를 위해 언제나 기도한다.’는 말로 어린아이에게 지울 당연한 대가나 처벌은 아니다. 도리어 아이는 친아빠와 그 가족의 짐을 대신 고스란히 홀로 지고 걷는 것이다.
아이는 지금 시간급이 좀 더 높은 야간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이번 학기에 다시 복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그 아이한테서 나는, 죽은 십자나무에서 새순이 돋는 생명을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본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김정미 수녀(성심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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