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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 종류의 거지--루미의 <마드나위> 중에서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6 조회수468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지는 자비를 좋아하며 조건 없이 베푸는 사람을 좋아한다
조건 없이 자비를 베푸는 것은 거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거지가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으면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으면 
거지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러나 거지가 참는 것은 미덕(美德)이지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주저하는 것은 악덕(惡德)이다. 
즉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 문 앞에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너그럽지 못한 탓이며, 
부자가 베풀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비를 찾아가는 가난한 사람은 참을 성이 없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탓이다. 
마치 살결이 희고 잘생긴 사람이 깨끗한 거울을 자주 찾는 것처럼 
거지와 가난한 사람은 끊임없이 자비를 구한다. 
잘 생긴 사람의 얼굴이 거울 덕분으로 아름답게 보이게 되듯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얼굴은 거지 때문에 돋보이게 된다. 
 
즉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얼굴에 너그러움이 쓰여 있기 때문에
 
거지가 구걸을 하게 만들지만 거지가 구걸을 하지 않으면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거지가 구걸하는 이상으로 더 많이 베푼다.
 
거지는 하느님의 자비의 거울이 되며
 
하느님과 함께 있는 거지와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거지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구걸이 필요할 때마다 하느님께서 아낌 없이 주시는 것 같이
 
아낌 없이 주는 사람을 찾아나서는 거지이며
 
또 하나는 하느님을 믿고 애써 찾아 나서지 않고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종류의 거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죽은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은 하느님을 찾지도 않기 때문에 그림 안에 있는 개와 같이
 
생명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사람과 하느님을 목말라하는 사람은 다르며
 
하느님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을 목말라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자(聖者)를 닮으려고 하지 않고
 
마음 속에 그리고만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생명의 빵을 구걸할 자격이 없다.
 
개가 그려져 있는 그림에 뼈다귀를 던져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개는 뼈다귀만 입에 물려고 하지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명이 없는 그림 속의 개 앞에 개밥그릇을 놓지 말아야 한다.
 
빵만을 바라는 가난한 사람은 민물 고기와 같아서
 
짜디짠 대양(大洋)과 같은 하느님 품속으로 안기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은 닭에 불과하며 결코 하늘의 불사조(不死鳥)가 되지 못한다.
 
그는 탐욕에 빠져 하느님이 주시는 만나를 먹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의 영혼은 하느님의 착함과 훌륭함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으려 하지 않고
 
하느님의 이름만 부르고 하느님의 깊은 뜻을 모른다.
 
이들의 생각은 무지(無知)에서 태어났지만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몸을 빌어 스스로 태어나셨다.
 
무지에 빠져 있는 사람은 결코 온유와 영광의 주님을 사랑하지 못한다.
 
그러나 진심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이 말은 부연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부족하여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거나 소견(所見)이 좁으면 생각 속에 수많은 악(惡)을 만들게 된다.
 
이 세상에는 제대로 듣는 사람이 드문 것 같다.
 
모든 작은 새가 무화과를 먹이로 하지는 않는다.
 
무화과의 맛을 아는 새들만 무화과를 먹듯이
 
하느님의 맛을 아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죽어 있는 새와 쓸데없는 생각으로 가득 찬 새와 눈 먼 새는 무화과를 먹지 못한다.
 
민물고기와 바다 고기가 왜 다른가?
 
 힌두 인의 검은 얼굴에 비누나 검은 기름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종이에 슬픔의 그림만 그리게 되면 슬픔과 기쁨의 차이를 모르게 된다.
 
슬프다고만 생각하면 슬퍼지게 되고 웃음만 생각하면 웃기만 하게 된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겨진 슬픔과 기쁨은 그림에 불과하다.
 
자신의 잣대로 슬픔과 기쁨을 분별한 것에 불과하다.
 
하늘의 진정한 슬픔과 진정한 기쁨을 모르고 자신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웃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진정한 기쁨을 마음 속에 새기도록 해야 한다.
 
목욕탕 안을 상상하는 것은 탈의실 밖에서 옷을 보는 것과 같다.
 
바깥에 있으면 옷을 보지 못하게 된다.
 
오, 사랑하는 친구여!
 
탈의실에 들어가서 옷을 벗으시오.
 
옷을 입고 목욕탕으로 들어갈 수는 없잖소.
 
옷이 몸을 모르듯이 몸은 영혼을 모른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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