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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번지수가 틀린 죄 인식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7 조회수449 추천수3 반대(0) 신고
 
 

번지수가 틀린 죄 인식 - 윤경재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루카 7,37-50)

 

 

창세기 3장을 읽으면 구약 성경 저자가 얼마나 인간의 진면목을 깊이 성찰했는지 드러납니다. 사람과 여자(아담과 이브)가 뱀에게 유혹당하여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벌인 행동을 눈여겨보면 인간의 죄 인식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창세3,7-10) 

사실 인간이 죄를 지은 위치는 손이며, 입입니다. 조금 깊이 따지면 ‘이럴 것이다.’라고 추측한 생각이 죄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조상은 엉뚱하게도 두렁이를 지어 몸의 일부분을 가렸습니다. 두렁이로 가린 데는 죄 지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입니다. 그냥 몸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면 숫제 머리를 가리고 손과 입과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무엇이 죄가 되었는지 정확하게 파악도 못했다는 뜻입니다. 참으로 죄를 지은 데는 그냥 놓아두고 애먼 곳만 죄를 뒤집어썼습니다. 그러니 죄는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어찌 보면 원죄는 죄의 근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데에 화풀이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고 7번이나 감탄하신 피조물인 자신의 몸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고, 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러고는 하느님을 피해 숨고 도망쳤습니다. 떳떳이 드러내야 마땅한데 숨고 감추었습니다. 그것도 엉뚱한 곳을 말입니다.

우리도 생활 속에서 얼마나 엉뚱한 데다 죄를 덮어씌우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행동을 성격 때문이라고 핑계를 붙이고서 반성하기는커녕 합리화 정당화하기에 급급합니다. 성격이라는 용어는 페르소나라고 말에서 나왔습니다. 이 말의 원뜻은 배우가 가면을 쓰고 연기한다는 뜻입니다. 즉, 성격은 자기 본래 모습을 감추고자 가면을 쓰고 연기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도 제 행동을 살펴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꼭 이렇게 해야 했었나 하는 의구심을 버린 채 성격이라고 치부하였습니다. 저는 강의 중에 제 강의가 유익했고 재미있었느냐고 질문을 자주 했습니다. 그것이 인정받고 싶고 자랑하고픈 제 성격 탓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어쩌면 열등감의 발로일 거라는 자각에 미치자 참으로 낯이 화끈거렸습니다. 각자 한 번쯤 에니어그램이니 MBTI니 하는 성격 유형 분석 프로그램을 해보아야 하겠다고 권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깊이 죄에 물들었는지 반성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바리사이 시몬은 자신의 의로움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자였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를 집에 모실 정도로 성격도 아량이 있고 넉넉하다는 자긍심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의 태도를 뜯어보면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소홀했고 무시하는 교만함이 가득한 자였습니다. 또 그가 지은 제일 큰 죄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바리사이 시몬은 누구보다 죄가 가벼우니 자신은 떳떳하다는 논리를 지닌 것입니다. 실상 그 죄가 제일 큰데도 말입니다. 죄 인식 방향이 그릇되었습니다.

가톨릭 성인들은 자신의 죄를 무척 크게 인식한 분들입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라고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을 다른 이에게 똑같이 주었다면 나만큼 못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네. 난 정말 얼마나 큰 죄인인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인들처럼 살 수 없는 지푸라기보다 못한 존재입니다. 우선 그 점만이라도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차차 내 죄가 어디서 비롯하였으며, 남의 죄를 탓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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