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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월 30일 야곱의 우물- 마태 13,47-52 묵상/ 소피아의 성경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30 조회수425 추천수4 반대(0) 신고
소피아의 성경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 동서 소피아의 성경이 군데군데 뜯겨 있었다. 웬일이냐니까 어머님이 뜯어 잡쉈다고 한다. 이어 그는 성경을 뜯어 잡숫고 돌아가신 어머님은 더 바랄 게 없을 거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는 또 뜯겨진 대로 그냥 두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집오던 날부터 어머님이 타계하시기까지 줄곧 맏며느리인 나 대신 어머님을 모셨다. 어머님의 마지막 십 년 가까이는 치매로 진종일 밥과 엄마 두 단어만 뇌며 닥치는 대로 씹어 삼키고 배설하는 생물에 지나지 않았다. 동서는 그분의 밥이요 엄마였다.

그동안 동서는 천주교에 입교했다. 입교 전에도 그는 엄마만큼 대범하고 힘찼다. 어머님은 타계하기 이틀 전에야 잠깐 맑은 정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어머님은 성하셨을 때의 차분한 표정과 나직한 목소리를 되찾고 무섭게 탐하던 밥그릇을 밀어내셨다고 한다. 의아해하는 동서에게 밥그릇을 밀면서 “엄마, 밥 많이 먹어. 그리고 아프지 말어.” 성하실 때의 그 어투 그 음성으로 천연덕스럽게 말씀하셨단다.
나는 단박 동서의 어설픈 구어체 흉내에서 어머님의 목소리, 어머님의 유언을 읽었다! 그것은 당신 생애 마지막으로 반짝하는 순간을 틈타 혼신으로 당신의 ‘엄마’에게 드린 기원이요 덕담이었다. 동서는 혼이 빠져나간 어머니의 빈 몸을 갓난아이처럼 먹이고 씻기고 안았던 사람이다. 혼이 뜬 ‘몸’의 허망함을 십 년 가까이 묵상했던 사람이다. 말 그대로 예수님을 따라 산 사람이다.

나는 동서 앞에서 늘 할 말을 잃는다. 짧은 순간이나마 어머님께 맑은 말미를 허락하신 분에게 성호를 긋는다. 문득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시었으나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님의 고독을 이해할 것 같다. 나는 동서 몰래 눈물을 훔쳤다.
이난호(서울대교구 구로1동천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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