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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핑계거리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30 조회수459 추천수4 반대(0) 신고
 
 

핑계거리 - 윤경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57-62)

 

루카복음서는 9,51절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시려고 마음을 굳히는 예수님을 그립니다. 이때 주님을 따르고자 여러 사람이 나섰습니다. 그중에는 마음가짐이 확고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루카저자는 대표적으로 세 사람을 보여줍니다. 또 그들을 이끄시는 스승 예수님의 말씀도 기록하였습니다.

그룹 성경 봉사를 하다보면 매년 중간에 탈락하시는 분들이 나옵니다. 급작스럽게 출장을 가거나 멀리 직장을 옮겨야 하는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때도 많습니다. 그분들 사정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 타당한 듯하지만, 결국 성경 공부가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입니다. 물론 사회생활에 꼭 필요한 경우나 가족 모임 등 어쩔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한두 번 정도 빠지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런 것까지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몇 번 빠지다 보니 미안하고 쑥스러워서 포기하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습 복습 등 공부를 소홀히 하고, 묵상 나누기가 부담되어 결석한다는 진심을 감추고 다른 핑계거리를 댑니다. 눈에 빤히 보이는데도 거짓말을 합니다.

사실 교회 모임은 눈에 보이는 어떤 이익을 위해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지식을 더 얻기 위해서 만나는 것도 아닙니다. 재미를 얻고자 함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신을 불러 주셨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그 모임을 통해서 남들은 어떻게 불러 주셨으며 어떻게 확신하고 사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서로 어떤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는지 느껴보고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방법으로 부르시고 계신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가톨릭 모임에는 늘 주님 체험 나누기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며 즐기며 우정을 나누는 것보다 상대방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도 주님을 체험한 이야기가 나와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정직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왜 주님의 교회에 발을 들였는지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어쩌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앞에 닥친 고통과 고난에서 위로를 받고자, 병의 치유를 위해, 그냥 세례 받았으므로, 친구 따라, 배우자의 권유로, 많은 사람이 교회에 다니니 왜 그런지 알아보려고, 죽음 뒤의 세상을 위해, 세상의 성공을 위해, 축복을 받으려고, 좀 더 행복하려고, 살다보니 죄를 많이 지어 용서를 빌려고, 원망에 가득 찬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단을 찾으려고, 아무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으니, 무엇인가 있을 것 같아서, 예수라는 성인을 알아보려고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개인 삶의 모습만큼이나 가지각색일 것입니다. 

아주 당연합니다. 비록 우습게 보여도 옳지 못하다고 비난 받을 거리가 아닙니다. 처음에 왜 입교했는지 그 의미와 정당성에 가치를 두는 일은 어리석습니다. 그냥 알기만 하면 됩니다. 입교하고 난 뒤의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교회에 나오는 이유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특히 남들이 어떻다고 말하니 ‘나도 그래요.’하고 묻어가려는 무심함이 그렇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교회에 들어와서 주님의 손길을 뿌리치지 않는 길입니다. 교회에 입교하고 나면 누구나 마귀의 유혹을 당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40일을 악마와 대적하면서 싸우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같은 어리석은 이야 더 말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더욱 기승을 부리는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 주님께 머무는 일이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 사람은 주님을 따르겠다는 입교의지를 표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의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다고 간파하셨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더 높은 지식을 얻겠다는 생각과 자신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덤벼들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사회생활에서 남들의 평가와 손가락질 당하는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옛 습관에 젖어 익숙하고 편한 것을 찾는 마음을 지녔습니다. 이런 자세를 갖고 예수님을 따르면 조만간 닥칠 위기 상황에서 금세 다른 마음을 먹고 중도 탈락할 뿐입니다.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교회 활동에서 예수님의 이런 지적은 유효합니다. 처음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며 결실을 맺는 일이 더욱 가치가 있습니다. 완성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발걸음에 의미가 담겼습니다. 비록 힘들고 부담스럽지만 주님께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한다면 어떤 교회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여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다른 이를 위해서 필요한 태도입니다. 그 과정 중에 기쁨이 저절로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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