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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90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2 조회수393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 중에서 가장 큰 이유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이 부분은 누구나 동의하리라 믿지만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는 여러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신앙의 목적지는 하느님의 나라로 정해져 있는데 그 나라가 어디에 있고, 또 어떤 나라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는 언제 오느냐고 질문한 바리사이는 지금 우리보다는 그래도 똑똑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일부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나 가는 천당으로 알고 있으므로 언제 오느냐고 물어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어느 분은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톨릭 교회이므로 교리만 잘 지키면 하느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므로 언제 오느냐는 이런 질문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어느 분은 하느님께 빌고 소원하면 다른 사람의 소원은 들어주지 않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원은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소원은 하느님이 들어 주실 것으로 믿는 교우들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교우들은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 주셨다고 생각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분은 내 기도가 부족하여, 내 성의가 부족하여 하느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와 다르게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노력으로 하느님의 뜻이 지금 여기 이 땅에서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그런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로 생각하는 교우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사회 공동체를 중시하고 있으므로 불쌍한 이웃들을 돌보고, 잘못된 제도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없도록 각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이 한 지붕에 모였으므로 교회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런 여러 생각들에 대하여 우리 교회 성직자분들은 어느 것이 올바른 우리 신앙인지에 대하여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몰라서 답을 안 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답을 안 하는 것이 교회 이익에 도움이 되므로 답을 안 해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있으므로 저희가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성경을 마음대로 접할 수 있으므로 많은 의문들을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고 어느 얘기가 참이고 거짓인지를 분별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시켜주는 단비와 같은 말씀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으며,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며, 우리 가운데 있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의 아들'의 날이라는 뜻으로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네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야 하므로 오늘은 하느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하신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모습없는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 모습을 그릴 수 없지만 마음으로는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또‘보라, 여기에 있다.’또는‘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셨으므로 때와 장소를 불문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다" 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속에 또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등 모든 관계 속에 있다는 말씀이므로 이 또한 사랑과 자비가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나라는 '사람의 아들'의 날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셨으므로 예수님께서 바라고 원했던 그런 세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계명은 ‘서로 사랑하여라.’ 이 한 마디 계명 뿐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사랑과 자비가 넘치고 넘치는 그런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불우한 이웃들이 차고 넘침에도 이들을 돌보기보다는 교회 건물 짓는 일에 더 열중하고, 교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가차 없이 응징하였던 이런 우리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우리 교회를 어찌 사랑과 자비가 차고 넘치는 '하느님의 나라' 라고 그 누가 말 할 수 있으며, 사랑과 자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는 죽어서나 가는 천당으로 말 할 수 있으며, 사랑과 자비의 실천은 뒷전이고 개인적인 소망을 위해 기도하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을 하느님의 나라로 착각들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이런 분명한 사실을 그 많은 시간동안 신학을 공부하신 우리 교회 지도자분들이 모르실리 없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한 목숨 바치시겠다는 성직자분들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모르고 성직자의 길을 선택하셨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는 침묵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 신앙에 대하여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교회에서 말하는 소위 이단의 교설에 영향을 받은 때문도 아니고, 다른 종교의 영향을 받은 때문도 아니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제 믿음이 부족한 때문도 아니며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른 우리 교회의 모습 때문입니다. 제 자신을 반성하며 주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묵상하는 귀한 시간에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런 현실에 마냥 침묵만 할 수 없음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 알려주셨습니다.

이처럼 저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하느님의 나라를 잘못 알고 있사옵니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 지도자분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하여는 침묵하며

잘못된 신앙관을 심어주고 있사옵니다.

이런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하느님의 나라를 향한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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