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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9 조회수1,008 추천수4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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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


기도는 전능하신 하느님과 우리를 맺어주는 기적적인 도구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이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묵상해보고 믿어보십시오.
그 사실을 진정 믿는다면 삶에는 뿌리까지 뒤흔드는 지각변동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생명력 있는 기도보다 더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없습니다. 죽어야 할 우리가 전능하신 하느님과 기도로 맺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어떤 분은 "기도는 하늘과 땅이 서로 입맞추는 것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진실로 기도를 중시하고, 하늘과 땅의 중심에 서 있는 기분으로 기도를 해 보십시오. 그처럼 기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에게 기도는 진실로 능력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어떤 분은 기도하면서 하느님께 요구부터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다급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하느님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가 어떤 유력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당장 "저에게 사업 자금 좀 빌려주세요"라고 하면 됩니까? 먼저 그를 알고 그에게 나를 알게 해서 친해지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많은 기도가 "사업 자금 빌려주세요"라는 기도 수준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분이 사업자금을 빌려주지 않으면 자기 혼자 실망했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하느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과의 깊은 교제의 기쁨을 나누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어느 성직자는 아침마다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아버지 하느님! 오늘도 아버지의 소원이 저의 소원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처럼 기도는 하느님의 소원을 가진 기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여야 하고 또한 모든 기도응답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역사를 찬미하는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기도자를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기는 기도자의 변화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파워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기도를 통해 야곱이 변화될 때에 야곱의 형도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기도하고 난 후에도 사람에 대한 미움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기도에 하느님이 응답하시겠습니까? 때로 사람에 대해 실망할 수도 있고, 인간관계로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간절히 기도하고 난 후에도 아직 그 미움의 앙금이 남아 있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기도 전에는 미움이 있어도, 기도 후에는 그것이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실한 기도를 한 셈이 되고, 그런 기도에 하느님이 기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로 하느님과 사귀는데 우수한 사람은 사람과 사귀는데도 우수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지 않습니까? 때로 갈등의 순간, 싫은 순간이 있어 참기 힘들지만 기도하면 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하게 기도하며 나의 부족함에 대해 하느님께 울부짖고 난 다음에는 신기하게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을 얻는 것은 기도함으로 얻는 가장 큰 축복의 열매가 아닙니까?

이제 우리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처럼 영혼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기도여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한 후에는 하나됨을 회복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시는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입니다.

(이한규님 참조)




[11월 20일, 금요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19,45-48>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묵상]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려 합니다. 율법과 성전을 모독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없애려 듭니다. 놀랄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역사 안에서 수없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에도 재연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율법과 성전이 예수님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술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친절했고, 술맛도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잘 팔리지가 않았습니다. 그가 이웃집 노인에게 원인을 묻자, 노인이 물었습니다.
“혹시 사나운 개를 키우는 것은 아닌가?”
그가 대답합니다.
“무서운 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술이 잘 팔리지 않는 것과 상관이 있을까요?”
노인이 다시 답합니다.
“누구나 개를 두려워하지. 술을 사러 갔는데, 가게 앞에 사나운 개가 버티고 있다면 쉽게 들어가겠나? 그 개가 원인일세.”
중국의 고전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율법은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인간에게 유익한 길을 안내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서운 판관이 되어 ‘겁을 주고’ 있습니다. 성전 역시 편안한 곳입니다. 누구나 가서 위안을 받는 곳입니다. 하지만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무서운’ 조건들입니다. 주님께서 계신 곳을 사람이 막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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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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