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염려 마세요. 이런 신자도 계시니까요>
작성자송영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2 조회수594 추천수3 반대(0) 신고
 
인간답게 살거나 인간답게 죽어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밀어진 아주 작은 손
[사람 안에 스며있는 하느님]
 
2009년 11월 18일 (수) 14:45:42 김정식 kimrogerio@hanmail.net
 

 

명동성당 앞 거리공연은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기 위한 노래공연’이다. 1985년 겨울부터 박준 토마스 형제가 시작했고, 1987년 겨울부터 그를 돕는 마음으로 내가 함께해 왔다. 처음에는 주말을 뺀 주5일을 하다가 월, 수, 금요일 격일제로 바뀌었고, 다시 수, 금요일로 바뀌었다가 요즘엔 월요일 저녁에만 한다. 매일 밤 5시간을 두 사람이 맞교대하던 힘든 시절도 있었고, 길거나 짧게 그 자리를 지켜내고 스쳐 지나간 사람들도 많았다. 이젠 참여하는 노래패가 많아져서 나는 가끔씩 찾아가 격려해 주는 정도이지만, 아직도 그곳은 내 젊은 날의 노래들이 스며있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으며,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어왔다. 민주화 투쟁을 시작으로 노점상들의 단식투쟁, 대정부 투쟁에서 노조 투쟁 및 장애우 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의 권익보호 투쟁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살아온 모든 종류의 문제들을 직접 간접으로 겪거나 함께 해 왔다. 우리가 노래하는 곳은 데모 전용장소가 되어버린 명동성당 들머리와 지척이어서, 그곳에서 벌어지는 데모나 시위를 지원하는 노래를 부르다가 함께 최루탄을 맞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나 그런 거친 일만이 아니라 참으로 따스한 일도 많다. 매일 행상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그날 수입에 따라 천 원 혹은 이천 원씩 꼬박꼬박 모금함에 넣고 가는 분도 있고, 돼지저금통을 안고 부모와 함께 온 고사리 손도 있었다. 또한 결혼을 앞두고 퇴직금 전액을 통장, 도장, 비밀번호와 함께 넣고 간 아가씨도 있었고, 기타 한 대 사라고 상여금을 몽땅 주신 이도 있었다. 많이 모이면 급한 수혈환자에게 현금 대신 사용할 수 있는 헌혈증은 기본이고, 시계나 반지 혹은 외화나 귀금속에서 회수권(버스승차용)까지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모였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모금함으로 다가오는 이웃들의 손들을 행복한 눈길로 바라보게 된다.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이렇게 모인 돈은 심장병이나 백혈병에 걸렸지만 돈이 없어서 수술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고맙게 쓰여 왔다. 돈으로만 돕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무한신뢰를 담보로 병원 사회사업과와 긴밀하게 협조하고 동반하여 병원에서도 자체적으로 치료비 보조를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한다. 또한 치료비 외에도 환아를 돌보느라고 엉망이 되어버린 모든 가족들이 어려움을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일처리가 있으면 전문가들과 연계하여 돕는 일 까지, 이른바 버림받고 소외된 한 가정의 일상적인 어려움에 가능한 한 깊이 동참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세상이 좋아졌는지 심장병 백혈병에 걸린 15세 미만의 가난한 어린이들은 필요한 서류를 잘 갖춰 등록하면, 지금은 <한국심장재단>으로 명칭이 바뀐 <새세대심장재단>에서 치료비 전액을 보조해 준다. 하지만 등록이나 접수에 꼭 필요한 서류를 만들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이른바 사각지대는 어디에나 있다. 이런 어린이들과 탄광지역 어린이들 그리고 소년소녀 가장들을 비롯하여 외국인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이 땅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이웃들의 곁을 지켜내는 일을 박준 토마스는 일상처럼 해내고 있다. 그를 돕기로 나선 나 또한 기회가 주어질 때 마다 노래만이 아니라 명동거리공연과 인연이 된 일들에 기쁘게 동참해 왔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다 기쁠 수만은 없다. 거리에서 모금된 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치료비 앞에서 좌절하거나, 병원사정상 치료비 도움을 줄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을 만날 때 마다 가슴이 아픈 것은 그래도 견딜만하다. 가장 힘든 일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는데도 끝내 소생하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을 때이다. 이런 일을 매번 겪을 때마다 깊이 절망한다. 종종 장례식이나 때로는 장지에까지 동행하여 남은 가족들을 위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결심을 한다. 다시는 죽어가는 사람 곁에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그런 결심을 한지 두 시간 만에 다시 병원으로 달려간 적도 있다.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는 것처럼 사람답게 죽을 권리도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가끔씩 더 이상 살아날 희망이 없는 환자에게는 단가가 높다는 이유로 투약중지 권유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런 때에도 사정만 허락되면 우리는 끝까지 투약을 멈추지 않게 하고 싶었다. 어차피 살아날 수 없기 때문에 투약을 포기한 채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보살핌을 받으면서 죽어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절망을 바라보는 것과 희망을 바라보는 것에 비교해 볼 수 있다. 우리가 후자 쪽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도 죽어갈 때 그렇게 죽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고마운 마음을 눈물에 담아 유언처럼 남기고 떠나는 평안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우리 또한 이렇게 죽어갈 수 있다는 소망과 신뢰를 가슴에 간직한다.

   
 

그러나 세상의 인심이란 우리의 마음을 다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여유가 있어서 나눔의 손길에 동참하는 이들도 대부분 살아날 희망이 있는 쪽을 돕고 싶어 한다. 그런 희망이 없다고 정직하게 얘기했을 때 손길도 대부분 끊어지게 된다. 이런 때조차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신뢰 때문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눔을 해주신 거룩한 사람들을 나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살아날 희망이 거의 없지만 사람답게 죽어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고 싶은 것이다. 성직자 수도자들도 있었고 평범한 소시민도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도 있었지만 동대문시장 양말장수들의 계모임도 있었다.

결코 그러고 싶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 곁을 떠난 이웃들이 남긴 고마움 서린 눈물도 아픈 사랑이 되어 가슴에 남아 있다. 또한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삶의 막바지에서 고난을 맞이한 이웃들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거나 사람답게 죽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크건 작건 간에 가진 바를 쪼개어 나눈 이웃들의 맑고 아름다운 미소도 사랑으로 남아있다. 이 모든 이웃들의 사랑을 기억하며 우리는 그 자리에서 노래를 한다. 노래하면서 모금함으로 다가오는 수많은 손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 손 또한 그런 손이기를 소망해본다.

손 자그마한 손. 손 아름다운 손.
손 슬기로운 손. 손 사랑스런 손.
손 꽃잎 같은 손. 손 향기로운 손.
손 웃고 있는 손. 손 행복한 손.

가난한 형제에게 내밀어진 손.
누구의 선물인가? 고운 단풍잎인가?

손 용기 있는 손. 손 정의로운 손.
손 하늘 닮은 손. 손 아주 작은 손.

소외당한 이웃 위해 열려있는 손.
누구의 선물인가? 고운 단풍잎인가?

손 지혜로운 손. 손 은혜로운 손.
손 하늘 닮은 손. 손 아주 작은 손.
(김정식 사/곡 「아주 작은 손」전문)



*모금함으로 다가오는 손들을 바라보다가 떠 오른 노래를 오선지에 옮기고 나서
놀라운 일을 만났다.
선율을 표시하는 음표들로 이루어진 십자가 모양.
드러난 십자가 모양의 오른 쪽 끝,
귀퉁이 아랫부분을 채워 주기위한 ‘아름다운 손’들은
이 순간에도 온 세상 곳곳에서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 이 글은 격월간 <공동선> 2009년 11/12월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우리신학연구소>의 연구위원이며, 가톨릭뉴스<지금여기>의 편집위원이다.

아주 작은 손」- 김정식 사/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