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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99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3 조회수391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인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연중 제32주일 복음(마르 12,38-42)으로 선정되어 불과 보름 전에 묵상하였으므로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며 불가에서 말하는 빈자일등(貧者一燈)으로 묵상하였습니다. 이러지 못한 제 자신을 반성하는 것으로 오늘 묵상은 그만 끝내고 싶습니다.

성경의 여러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돌봐야 할 가장 불쌍한 사람은 과부와 고아 그리고 나그네입니다. 오늘은 그러한 과부 중에서도 가난한 과부이므로 우리가 돌봐야할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기준에서는 하느님의 축복을 가장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하느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있으므로 더 이상 무슨 염치로 묵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개신교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비 종교인들이 이 땅의 종교를 비난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바치는 예물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그동안 따로 주제를 정하여 묵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루카 20,20-26)에 대한 말씀을 잠시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하는 물음에 대하여 예수님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하셨습니다. 이 답변을 세금을 내야한다는 뜻으로 단순하게 묵상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단순히 세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라면 이 말씀은 사족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로마 당국이 세금을 빙자하여 민중들을 착취하는 것에 대하여 절대 찬성하실 분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씀의 참뜻은 세금납부에 대하여 답을 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봉헌한 예물은 하느님의 것이므로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함에도 유대교 지도자들이 자신들 임의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질타하신 말씀입니다. 이처럼 수준이하의 질문에는 동문서답을 통하여 새로운 가르침을 주고 계시지만 그들 수준에서는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께서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오해하며 칭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 말씀은 단순히 생각할 수 없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말씀이 많이 있음에도 질문했던 사람처럼 전혀 다르게 해석하거나 특히 너무 교리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도 자기 생활비의 전부를 지극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예물을 바쳤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그 예물을 유대교 지도자들 뜻대로 사용하라고 바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바친 예물을 일부 잘못된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들 뜻대로 사용하려고 오늘 복음을 인용하며 헌금을 독려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비단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에도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자 교회를 도와야 한다고 독려하는 몰염치한 경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바친 예물은 하느님의 것이므로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 예물에는 궁핍한 가운데서도 자기 생활비의 전부를 바친 가난한 과부의 예물도 있습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 교회도 예물을 하느님께 직접 드릴 방법이 없으므로 예수님은 그 방법을 '최후의 심판'에서 알려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하셨으며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마태 25, 45)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조께서는 '人乃天' 세 글자로 풀이하셨으므로 참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알려주신 방법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교이며 그렇지 않다면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교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바친 예물은 우리보다 못한 불우한 사람을 위해 사용해야하며 이와 다르게 사용한다면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스스로 저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 교회가 가진 재산은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축적된 것이므로 우리는 물론 우리 교회도 가난한 과부의 모습을 보며 반성해야 하며 이런 반성을 통해서만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읶히 알고 있는 " 회개하여라,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신 말씀에서 '회개하여라'하신 말씀은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질 수 없는 절대명령이므로 어느 누구도, 우리 교회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으며 이런 회개를 통해서만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여 하신 말씀은 하느님을 잘못 섬기고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의 잘못에 대하여 질타하고 계신 말씀이 대부분이므로 우리 교회도 잘못된 유대교의 전철을 밟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시정해야 합니다. 이천년 동안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렸지만 오시지 않으셨으며, 금년 한 해가 다 가도록 아직 오시지 않으신 것은 어쩜 이천년 전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재림하여도 또다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할 우리의 모습을 보며 오시지 않으시나 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날은, 오늘 가난한 과부가 지극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듯 우리 또한 지극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하느님을 섬길 때에만 우리 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물론 우리 교회도 예수님이 알려주신 방법대로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우리 뜻대로, 우리 교회 뜻대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으므로 예수님은 오시지 않고 있음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가지고 있던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은 가난한 과부를 칭찬하였습니다.
이처럼 칭찬받은 과부를 닮아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 교인이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다른 것으로 그리스도 교인임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희가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은 하느님의 것이므로
우리 교회는 주님께서 알려주신 가르침에 따라 하느님께 바쳐야 하지만
주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방법으로 하느님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 때문에 주님께서 아직 재림하지 않고 계신 듯하옵니다.
주님의 재림을 위해서는 이제는 이천년 동안의 기다림에서 그만 벗어나
우리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반성하여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깨우침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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