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랑은 파격
작성자김열우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3 조회수722 추천수0 반대(0) 신고

아버지 생존 시,

둘째 아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상속재산을 챙겨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경험이 없고, 세상물정을 몰랐던 둘째 아들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마침,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주려 죽게 될 지경에 이르자, 다른 사람의 돼지를 치게 되었습니다.

배가 고파 돼지에게 먹이는 쥐엄 열매를 얻어 먹으려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되자, 먹을 것이 얼마든지 풍부한 아버지 집의 종들이 부러워졌습니다.

아버지에게 불효 막심한 잘못을 저질렀으니, 아들로 다시 받아 주시라 하기는 어려워도, 종으로는 받아 주실 것이라 생각하여,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종이 되기로 하였습니다.

 

한 편, 아버지는 혹 아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여, 매일 동구밖에 나가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아직 가깝지도 않은 저 먼 곳에서 걸어오는 남루한 옷차림의 아들을 알아보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 안고, 다만 아들이 건강하게 다시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감격하였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갈아 입히고, 아들로 다시 맞아들인다는 인정의,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하인들을 시켜, 살진 송아지를 잡고, 동네 사람들을 부르라 하여, 잔치를 벌였습니다.

모여든 동네 사람들에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자신의 아들이라며, 아버지는 기뻐하였습니다.

  

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큰 아들은 집에서 들려오는 풍악소리가 자신의 동생이 건강히 돌아온 것을 축하하여 아버지가 마련한 잔치라는 것을 알고,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그 동안 아버지를 모시며, 아버지의 뜻을 어긴 적이 없던 자신에게는,

염소 새끼 한 마리라도 주어 친구들과 즐기라고 하신 적이 없으셨던 아버지가,

자신의 몫을 챙겨 타국에서 창기와 더불어 모두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아, 풍류를 울리며 동네 사람 모아 잔치를 벌이는 것이 매우 못마땅하였던 것입니다.

  

사실, 첫째 아들의 분노는 당연하고, 그럴만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너는 나와 함께 있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고,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것과 같으니, 이처럼 환영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예수님의 예화입니다.

사랑은 이치나 논리에 맞는 것이 아닌, 파격입니다.

이치나 논리, 이성적 판단, 이해 타산적인 것이 아닌, 무조건, 계산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밀밭사이를 지나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시장기로 인해, 밀 이삭을 비벼 먹었습니다.

이것을 본 유다 인들은 안식일에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

그들은 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 소경 바르티메오의 눈을 다시 볼 수 있도록 고치신 것을 트집 잡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고 트집 잡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사랑과 자비, 긍휼히 여기는 것이라 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람들은 잘못 인식하여, 혹은 타성에 빠져, 하느님의 진정한 뜻을 헤아리기보다, 율법을 자신들 스스로의 규례로 삼아, 내용보다 형식을 중히 여기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틀을 깨뜨리셨습니다.

사랑은 이런 형식과 외식의 틀을 과감히 깨뜨리는 파격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인류의 죄를 매달고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하느님은 이를 묵묵히 보고만 계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다른 사람은 구했으나, 자신은 구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비웃을 때도 하느님은 아무런 기척도 없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삼일동안 땅속에 묻히셨습니다.

그 때까지도, 하느님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셨습니다.

제자들은  절망 속에서 뿔뿔이 흐터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기상천외의 하느님만의 방법-

부활 이라는 방법으로 죽음에서 당신의 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정의의 승리를,

믿음과 순종의 승리를,

사랑의 승리를,

지금까지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죽은 자에게 새로운 생명이 부여되는 부활 이라는 파격의 방법을 통하여,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의라고 세운 법조차도 무색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을 막아 설 방법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의조차도 사랑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무력하여집니다.

아무것도 말리거나, 막아 설 수 없는 것, 사랑입니다.

사랑을 말릴 수 있는 법은 없습니다.

 

파격은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을 찾는 사람들의 용기입니다.

누구나 하느님의 말씀이나 뜻보다, 주어진 현재의 환경에 아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그리고 그를 다시 부활시키신 하느님-

파격의 주인공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일 점 일 획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은 완벽하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2009년 11월 19일 오전 11시 44분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