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마지막과 시작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4 조회수575 추천수4 반대(0) 신고
그때에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루카 21:5-11)
 
작가를 알 수 없는 『토마 복음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 종말에 관한 질문이 나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쭈었다 ‘세상 마지막이 어떻게 올지 말씀해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들이 마지막 날을 알고자 하는데 시작은 아느냐?
너희가 알다시피 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있다.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나니 그는 마지막을 알 것이요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 시작과 끝을 묻는 질문은 같은 질문이며 우리들의 능력으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우리들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끝이 아닐지 모른다. 죽음도 있을 법 하지 않다.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무섭다는 말이 아니라 언제 죽을지 왜 죽는지 알 수가 없다는 말이다. 우리들이 어떤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존재하고 있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는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은 죽지 않을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이 그 예이다. 시작도 알 수가 없다. 선사(禪師)들이 우리에게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우리들의 얼굴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때에는 실제로 우리가 그것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묻는다. 선사들은 우리들이 끊임없이 명상하여 존재이유를 알고 조상의 업(業)도 생각해 보라고 그런 요구를 한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성전의 파괴는 교회 건물을 파괴하시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지금은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당시에는 성전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 성전을 파괴한다는 것은 유다인들의 정체성(正體性)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은 유다인들이 감히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새로운 일을 하시고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새로운 시작을 아실 수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들 안에서도 새로운 일이 일어나도록 하시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2코린토 5:17)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하고 바오로 사도가 말했던 것이다.
부활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영원한 생명을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구원의 필요충분 조건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례는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시작일 뿐이다.
 
금주(今週)는 전례력(典禮曆)의 마지막 주일이며 다음 주부터는 대림절(待臨節)이 시작된다. 이 번 주까지 모든 것을 회개하고 즉 잘못되어 있는 정체성을 허물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되어 대림절을 맞으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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