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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야생화 같은 나의 이모 조민자 마리아>
작성자송영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6 조회수470 추천수4 반대(0) 신고
경향집지 '아름다운 사람들' 난에 실은 글입니다. 

 

 

 

<지천으로 피어나는 야생화 같은

나의 이모 조 민자 마리아>


 봉헌 차례가 오자 사람들이 두 줄로 나와 헌금 상자에 돈을 넣고 있었다. 오천 원을 넣는 사람, 만 원을 넣는 사람, 삼만 원을 넣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런데 홀로된 어떤 할머니가 몇 겹으로 접은 천 원짜리 한 장을 넣고 있었다.

 우연찮게 헌금 상자 옆에 앉게 된 나이배기 총각 예수라는 사나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평소 그 할머니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지 옆 사람에게 들릴락말락한 작은 소리로 이렇게 소근거리는 것이었다. “저 과부 할머니가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구먼, 이제 오늘 반찬값도 없겠네. 돈을 많이 낸 사람들 가운데는 쓰고 난 나머지에서 선심 쓰듯 조금 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지.”

 예수 눈에, 그 과부 할머니는 자기 마음을 통째로 하느님께 바치고,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을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별로 없게만 비친다. 그 할머니 같은 사람은 괜찮겠지만, 자기 살 궁리만 하고 주위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할까 적이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요즈음 예수가 그 과부 할머니 같은 고단한 사람들과는 친하게 지내면서도 옛날 사두가이・바리사이・율법학자들처럼 불의한 체제에 더부살이하는 종교지도자들과 줄곧 맞서는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위태롭고 안쓰러워서일 게다.  

 10년 전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무척 가깝게 지내시던 사촌 이모가 계신다. 그 이모부가 몇 년 전 별세했는데, 출상 때 가보니 이모와 아들딸 말고는 우리 어머니와 나와 내 동생이 문상객 전부였다. 그토록 초라한 장례식은 여태 본 적이 없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이모는 일생 그 이모부 술주정에 시달리고 건듯하면 뭇매를 맞고 사셨다. 자녀도 딸 하나에 아들 둘을 두셨는데, 하나도 성한 자식이 없어, 사고를 저지르고, 감방을 들락거렸다. 정신력이 좀 부족한 아들 하나는 아직도 이모에게 빌붙어 있다. 손자 하나까지 그 어미가 도망친 바람에 핏덩이 때부터 스무 살 장성하도록 이모가 거두었다.

 칠순을 넘긴 꼬마 이모는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폐지를 주워다 팔아서 생계를 잇는다. 국가에서 보조금이 조금 나오고 주변 사람들이 가끔 도와주기도 한다. 도움을 받으면 여유가 생길 때 반드시 그 이상으로 갚고야 마는 성미다.

 골목길 쪽방에 사는 이모는 돈을 모으는 법이 없다. 자녀들이 뺏어가기도 하지만,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있는 돈 몽땅 주어버리고 만다. 명절이면 이모도 모르게 누군가가 선물들을 꾀 놓고 간다. 그 선물마저도 다른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린다.

 폐지 줍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병자들을 찾아다닌다. 몸을 못 쓰는 사람들 목욕도 시켜주고 음식도 만들어준다. 죽어가는 사람들 옆을 지키면서 위로를 해준다. 가난한 사람들 상가(喪家)에 가서 일을 거든다.

 학교라고는 들어가 보지 못한 이모는 겨우 철자를 깨우쳐 성서는 읽는 정도가 된다. 시간이 나는 대로 종일 기도를 바치고 성서를 묵상한다. 나는 이모만큼 정성스레 기도를 바치는 모습을 별로 보지 못했다.      

 학력이 전무한 이모는 말은 또 그렇게 잘 할 수가 없다. 사소한 일상사도 이모 입술에 오르면 곧 바로 소설이 된다. 나 같으면 1분이면 끝날 이야기도 이모는 족히 한 시간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당신 느낌과 감정까지 곁들인다.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보아서인지 국내외 시사문제도 정곡을 찔러 비판하곤 한다. 국가보안법은 결사반대다. 노무현 정권도 좋아졌다 싫어졌다 오락가락한다. 

 그런 이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이모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지금은 죽고 없지만, 먼 친척뻘인 통장이 20년 넘게 이모를 못살게 굴고 때리곤 했다. 그 뒤를 이어서 현재 거주하는 쪽방 뒤 한옥에 사는 늙은 부부가 심심하면 이모를 구타한다. 엊그제는 이모 눈동자를 손톱으로 할퀴어서 실명할 뻔한 것을 친한 신자 하나가 안수로 낫게 해 주어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늘상 이모를 대하면서 감탄하는 것은 그 평화로운 표정과 미소다. 살갑고 정겨운 몸짓이다. 그렇듯 힘겨운 형편에 그런 깨끗하고 평온하고 넉넉한 마음이 어디서 우러나오는지 너저분한 나로서는 도무지 짐작할 도리가 없다.

 아무래도 이모는 예수라는 젊은 총각과 애인 사이인 듯싶다. 예수가 뻔질나게 이모를 쫓아다녀 그런 짐작이 간다. 예수도 속이 없지, 늙은 할머니를 애인으로 삼다니 쯧쯧. 하긴 전에도 예수는 영등포 역 부근에서 몸 파는 처녀한테 빠져서 애달아 어쩔 줄 모르긴 했지. 하긴, 한심한 이모에 한심한 예수가 어울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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