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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의 이스라엘 요르단 성지순례(상)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6 조회수2,18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상)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아침 8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도시가 너무나 복잡합니다. 분명히 주일인데, 주일이면 조금 한산할 줄 알았는데 너무나 차가 많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이슬람 사람들의 휴일은 금요일과 토요일이기 때문에, 일요일이 가장 복잡하답니다. 우리나라의 월요일처럼.... 사실 여기서는 도저히 운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도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기본입니다.

 

어제 저녁 현지 가이드와 함께 밖으로 무엇을 사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차들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길을 건너는 것입니다. 저는 도저히 건널 수 없었습니다. 결국 가이드가 다시 저 있는 곳으로 와서 저를 끌고 길을 건넜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여기는 원래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럼 신호등은 왜 있는지... 하긴 저 역시 신호등을 어겼을 때가 종종 있기는 했습니다. 반성이 많이 됩니다.

 

데카폴리스 연맹 중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했고, 또한 메카로 성지순례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려야 했던 ‘암만’. 그러나 8세기경의 대지진과 당시 다스렸던 우마이아 왕조의 붕괴로 한 1000년간 방치되었던 도시였습니다. 이제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이 도시를 뒤로 하고 저희는 오늘의 순례 장소로 떠납니다.

 

 


내가 묵었던 방 앞에서 촬영

 

 


우리가 묵은 호텔 앞에서 윤하용 신부와 함께.

 

 먼저 들렸던 곳은 ‘Sea Level''. 해수면과 같은 지역에서 사진 한 방 찍었습니다. 여기부터 아래는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하긴 갈릴래아 호수 역시 해저 200미터 지역에 위치하고 있지요.

 

 


송태일, 이성만, 윤하용 신부. 마치 일광욕을 하는 듯...

 

 


이춘택, 송태일, 빙상섭 신부. 해가 참 좋았지요. 역시 일광욕?

 

가이드가 사막과 광야의 차이점을 이야기해줍니다. 사막은 물이 지나가도 땅의 변화가 없지만, 광야는 물이 지나가면 식물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아주 살 수 없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베두인들이 광야를 떠돌며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베두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는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네스북에 등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민등록증이 없고, 또 생일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생일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네요. 하긴 생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루하루 의미를 찾는다면 생일보다 더 뜻 깊은 나날일 텐데…….

 

이제 요르단에서의 가톨릭 5대 성지 중의 하나인 베타니아에 도착했습니다. 에리코의 반대쪽으로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지역입니다. 그리고 엘리야 예언자의 승천지역으로도 알려져 있지요. 참, 죽은 나자로를 다시 살린 지역도 베타니아로 나오는데, 그 베타니아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가서 방문하게 됩니다).

 

 


교황청의 지원으로 지은 요르단 예수님 세례 성당입니다.

 

요르단강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강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지역은 요르단 강 중에서도 가장 낮은 부분이라고 하네요. 가장 낮은 자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공생활을 시작하는 출발점에서도 가장 낮은 곳에 계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왜 이렇게 교만하고 높은 자리만을 좋아했는지……. 예수님 뜻을 제대로 못 따르고 있음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요르단 강임이 분명하죠?

 

 


요르단 강입니다. 건너편은 이스라엘. 참 신기하죠?

 

지금 이곳에는 물이 말라서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전에 발견된 성서지도를 보면 요르단강에 배도 다닌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지금보다는 상당히 넓은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사진 찍느라 조금 늦게 가고 있는데, 수로 비슷한 것을 이춘택 신부가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현지 가이드에게 물으니, 우리가 사진 찍고 물을 만졌던 곳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은 지역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말을 해줍니다. 즉, 8세기경의 대형 지진으로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4-5세기 비잔틴 시대 때의 성당이 예수님 세례 받은 지역에 세워졌다고 저희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빨리 가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여기서 주모경 봉헌했습니다.

 

 


원래의 세례터라는 곳에서 정광웅 신부와 이춘택 신부.

 

 


원래 세례터에 성당을 지었었다는 흔적.

 

 


역사적 사실임을 가이드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세의 느보산입니다. 해발 835m의 느보산은 출애굽 여정의 마지막 도착지입니다. 40년 동안의 광야에서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셨던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모세는 이곳에서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숨을 거두게 되지요(신명기 34장). 또한 하느님께 대한 불신으로 인해서 불 뱀에게 물려 죽게 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느님의 명을 받아 구리 뱀을 기둥 위에 달아서 이를 본 사람만이 살아날 수 있었지요.(민수 21장)

 

 


느보산 가는 길. 광야의 모습. 인상적이었습니다.

 

느보산은 성경의 ‘예리코 맞은편 비스가산''과 동일한 장소로 히브리어로 ‘비스가''란 ‘꼭대기''라는 의미입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으로 진군해 들어오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모리 족속의 온 지역을 점령하고 이 지역에 머물러 살기를 원했던 르우벤 지파와 가드 지파에게 요르단 동편 지역을 분배해 주게 되는데 느보는 르우벤 지파에 분배되었습니다(민수32,3.38;1역대5,8).

 

기원전 9세기의 모압왕 메사의 비문에 의하면 느보 읍은 그때까지도 이스라엘의 도시였다. 그러가 하면 성경은 느보가 모압의 도시였다는 보도를 남기고 있기도 합니다(이사15,2;예레48,1.22).

 

전설에 의하면 모세의 무덤이 이곳에 있었다고도 하며(성경에 모세는 120세에 죽었다고 하며 어디에 묻혔는지 모른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곳을 순례하거나 수도원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느보산 또는 비스가산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이 산맥의 한 지점이 아닐까요?

 

 


느보산 입구의 대형 비석

 

지금은 다 부서져 있는 황량한 곳, 이곳을 현재 프란치스코회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회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윤자면 신부의 주례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특별히 평신도 주일을 맞이해서 모든 평신도들을 위한 지향을 담고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윤자면 신부 주례로 봉헌한 미사

 

이곳 느보산 모세 기념 성당 마당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의 작품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시나이 광야에서 뱀에 물린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만들었다는 구리뱀과 인류구원을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복합시킨 의미 깊은 작품으로, 모세를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로 인하여 불뱀에 물려 죽은 사건의 상징물입니다.

 

 


옛 성전의 흔적.

 

 


느보산 정상에서 바라본 정경. 끝내줘요.

 

 


구리뱀. 지오바니 판토니의 작품

 

 


윤자면, 이성만 신부.

 

 

Mikhail Glinka
Nocturne In E Flat Maj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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